설기현 “저니맨? 2년 후 지도자 길에 밑거름”

입력 2014-01-13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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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유나이티드 설기현이 10일 문학월드컵경기장에서 스포츠동아와 인터뷰를 했다. 설기현은 2년 재계약의 의미, 시민구단에서 3년째를 맞는 소회, ‘저니맨’(팀을 자주 옮겨 다니는 선수)이라는 이미지에 대한 심정 들을 솔직하게 털어놨다. 문학|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트위터 @bluemarine007

■ 설기현, 인천과 재계약 “2년 후 은퇴”

돈·트러블 때문에 계속 팀 옮긴 건 아냐
다양한 클럽·포지션 경험 돈 주고 못 사
시민구단은 하위권? 내 역할 있다 믿어

나태함 나무라던 김남일 형이 떠났지만
이젠 다들 알아서 해…상위스플릿 목표

설기현(35·인천 유나이티드)이 2년 후 현역은퇴를 선언했다.

9일 인천과 2년 재계약을 한 설기현을 10일 문학월드컵경기장에서 만났다. “연장계약하며 은퇴시점을 2년 후로 정했다”고 밝혔다. 설기현이 포항, 울산을 떠날 때 모범적인 자기관리에 많은 것을 배웠던 후배들이 아쉬워했던 게 기억난다. 오랜만에 만난 설기현은 변함없이 철저히 준비돼 있었고 진지했다.


-1979년 1월생이니 말띠다. 2002한일월드컵도 말의 해였고. 올해 각오가 남다를 듯한데.

“하하. 맞다. 2002년에 인웅이(큰 아들)도 태어났다. 원래 해가 바뀌는 것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데 올해는 조금 새롭다.”


-2년 재계약에 많은 의미가 담긴 듯 하다.

“은퇴를 생각할 나이다. 연장계약하며 시점을 2년 후로 정했다. 2년 동안은 선수로서 좋은 모습 보일 자신이 있다.(2년 후 은퇴를 미룰 생각은) 없다. 앞으로 지도자 길을 걸을 건데 2년은 내 꿈을 위해 차근차근 준비하는 기간이기도 하다.”


-몸 관리가 철저한 것으로 유명한데.

“처음 유럽에 나갔을 때 훈련도중 동료가 내 실수에 너무 뭐라 하더라. 늘 그 친구 차를 얻어 타던 친한 사이였다. 훈련만 하면 욕하고 훈련 끝나면 다정하게 어깨동무하고. 이런 놈이 다 있나 싶었다. 시간이 지나 깨달았다. 유럽에서는 스스로 준비가 안 돼 있으면 가만 두지 않는다. 살아남을 수 없다. 그 때부터 습관이 됐다.”


-후배들도 몸 관리에 대해 많은 조언을 구한다고 하던데.

“경기 전 적은 경쟁포지션 선수, 경기 중 적은 상대선수지만 그 전에 진짜 적은 우리 자신이다. 보강운동이 귀찮고 맥주 한 잔 하고 싶은 거 당연하다. 하지만 나 자신도 못 이기면서 어떻게 상대를 이기냐고 늘 말한다.”

인천은 설기현의 9번째 프로클럽이다. 그를 ‘저니맨’(팀을 자주 옮겨 다니는 선수)이라 부르기도 한다. 하지만 냉정하게 따져보자. 설기현은 벨기에와 잉글랜드 챔피언십을 거쳐 프리미어리그 유니폼까지 입었다. 히딩크라는 든든한 존재가 있었던 박지성, 이영표와 달리 설기현은 말 그대로 ‘맨 땅에 헤딩’하며 차근차근 올라왔다. 풀럼 이적 후 사우디 알 힐랄에 임대됐다가 다시 풀럼으로 돌아와 K리그에 입단한 뒤 포항, 울산에서 1년만 뛰고 인천으로 오며 저니맨 이미지가 강해졌다.


-저니맨 이미지가 있다.

“선수로서 여러 팀을 경험한 게 잘못인가? 선수로서 내 역할을 소홀히 해 이적한 적은 없다. 이 부분은 누구보다 자신 있다. 여러 경험을 하고 싶었다. 다양한 포지션의 클럽, 다양한 감독을 만난 것은 돈 주고 살 수 없는 값진 경험이었다.”


-일부 팬들은 돈 때문에 포항, 울산을 떠났거나 감독과 트러블 있었던 것 아니냐고 오해하는 것 같다.

“포항과 울산, 인천으로 오며 연봉은 계속 떨어졌다. 돈을 보고 옮긴 거면 계속 올라야지. 포항(2010)에서 1년 뛰고 그해 말 동계훈련도 갔는데 해결할 수 없는 이유가 있었다. 울산에서 첫해(2011) 초반 팀이 부진했지만 후반기 상승세를 타 준우승까지 했다. 울산을 떠나겠다는 생각은 한 번도 안 했다. 2011년 플레이오프 때 애들에게 ‘우리 올해 동계훈련은 더 잘 해서 내년에는 초반부터 치고나가 리그, 챔피언스리그를 다 잡자’고 말한 적도 있다. 그만큼 자신 있었고 분위기도 좋았다. 동료들과 매일 사우나하며 토론했고 1주일에 한 번 이상 밥 먹었다. 그런 내가 연봉 때문에 떠났겠나. 이런 부분을 하나하나 해명할 필요성을 못 느꼈다. 성격상 그러고 싶지도 않고.”


-포항, 울산 등 명문구단에 있다가 시민 구단에서 3년째다.

“궁금했다. K리그에서 시민구단은 왜 늘 하위권일까. 인천에서 내 역할이 있을 거라 믿었고 자신 있었다. 하지만 솔직히 인천 입단 직후 처음에 엄청 후회한 적이 있다.”


-무슨 일이 있었나.

“목포시청과 연습경기를 보는데 선수들이 열심히만 뛸 뿐 어떻게 뛰어야할지 모르더라. 전술을 이해하지 못했다. 속으로 큰 일 났다 싶었다. 며칠 후 애들을 처음 불러 ‘얘들아 경기는 열심히 하는데 효과적으로 못 한다. 앞으로 형이 이런 부분 많이 말해줄 테니 노력해 보자’고 했다.”


-후배들 반응은.

“기대에 찬 눈빛이었다. 사실 애들도 답답했던 거다. 뭔가 잘 못 됐는데 어떻게 고칠지 몰라서. 목포 도착 첫 날 방 열쇠를 받는데 안내한 후배가 ‘형. 와줘서 정말 고마워요. 저희는 형이 인천 올 줄 정말 몰랐어요’라고 하더라. 울컥했다.”


-작년 김남일과 함께 구심점 역할을 잘 했다.

“남일 형과 내 역할은 달랐다. 남일 형은 나태한 모습 보이면 직접 쏘아붙인다. 나는 성격상 그렇게 못한다. 하지만 경기 중 어떻게 움직일지 압박은 어떻게 할지 등은 누구보다 잘 안다고 자부 한다. 그런 이야기를 많이 해 줬다.”


-김남일이 전북으로 떠났는데.

“물론 아쉽다. 그러나 2년 뒤 내 생각이 있듯 남일 형도 나름 계획이 있고 그걸 존중한다. 사실 남일 형이 전북 갈 거 진작 알았다. 남일 형은 잘 할 것이다.”


-김남일 역할까지 해야 하는 데 어깨가 무겁지 않나.

“아니다. 남일 형과 내가 처음에 요구했던 것들 이제는 알아서 다 한다. 예전처럼 우리가 많은 역할 할 필요 없다. 틀어질 때 살짝살짝 잡아주기만 하면 된다.”


-올 시즌 팀과 개인 목표는.

“개인목표는 없다. 고참으로 팀이 잘 되는 게 중요하다. 팀은 상위스플릿 진출이 목표다. 코칭스태프가 할 수 없는 부분에서 내 역할이 분명 있다. 개인 종목과 축구가 다른 게 무엇이겠나. 개인기량은 뒤져도 팀으로 이길 수 있는 게 축구다. 이건 능력,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의지, 마음의 영역이다. 후배들에게 늘 그 부분을 강조한다.”

문학|윤태석 기자 sportic@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Bergkamp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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