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성화재 레오(왼쪽)와 대한항공 산체스는 5라운드 맞대결 때 코트에서 신경전을 벌였다. 이로 인해 경기 뒤 관중석에서 나오다 마주 친 두 선수의 가족이 설전을 벌이는 해프닝까지 연출됐다. 스포츠동아DB
블로킹 신경전이 가족 싸움으로 번져
언쟁 길어지자 에이전트 나서서 봉합
선수 긴장할까봐 밖에서 배회하는 감독
열성팬, 구하기 힘든 ‘H 버터칩’ 선물도
코트 혹은 그라운드에서 선수들이 화려한 경기를 펼치고 나면 조명이 꺼진 무대 뒤에서는 많은 일들이 일어난다. 몇 년 전에는 판정에 불만을 품은 어느 팀의 사무국장이 KOVO 사무총장에게 삿대질하는 일이 벌어졌다. 그 사무국장은 실무회의 때 상대팀을 면전에서 3류기업이라고 해 멱살잡이를 벌이게 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자신은 일류기업에 다니고 스펙도 뛰어나다는 자부심이 만든 해프닝이었다. V리그와 구성원을 존중하지 않는 태도로 일관했고 업무에도 열의를 보이지 않다가 조용히 배구계에서 사라졌다. 관중은 쉽게 알지 못하는 ‘코트 밖 V리그’엔 어떤 일들이 벌어질까.
● 산체스 아내와 레오 어머니는 왜 말다툼을 했나
대전에서 벌어진 삼성화재-대한항공 5라운드 때는 상대팀 선수 가족끼리 설전이 벌어졌다. 당시 3세트에서 레오가 산체스의 공격을 블로킹으로 잡아낸 뒤 바라본 것이 발단이었다. 다혈질의 산체스 아내는 이 장면에서 분노했다. 경기 뒤 관중석에서 나오다 레오의 어머니와 마주쳤다. 평소 데면데면한 사이였던지 두 사람은 말다툼을 했다. 마침 두 선수의 일을 돌보는 에이전트도 대전을 찾았다. 언쟁이 길어지자 에이전트가 부랴부랴 두 사람을 달래서 더 이상의 사고로는 이어지지 않았다.
● 경기 전 감독 홀로 선수단 버스에 죽치는 까닭
라커룸에서도 많은 일이 벌어진다. 경기 전 감독은 라커에 들어가지 않는다. 경기를 앞두고 긴장하는 선수들에게 편안한 상황을 만들어주기 위해서다. 감독을 위한 방이 따로 마련된 곳은 그나마 낫지만 그렇지 않은 곳에서는 갈 곳이 없다. 혼자 선수단 버스를 찾거나 경기장의 여러 곳을 배회한다.
예전에는 몇몇 감독들이 체벌의 공간으로 라커를 사용했다. 이제는 세상이 달라져 그런 일은 없다. 남자팀 보다는 여자팀이 라커에서의 대화나 분위기가 중요하다. 여자선수들의 마음을 열지 못한 채 질책만 하면 효과는 제로. 선수들의 반감만 살 뿐이다. 혼내더라도 선수 스스로 납득해야 효과가 크다. ‘밀당’과 대화의 기술이 필요한 이유다.
최악의 경우는 프런트가 라커에 들어갈 때다. 가뜩이나 경기에 져서 화난 선수들에게 프런트가 소리를 질러봐야 그 팀의 미래는 뻔하다. 감독 위에 프런트가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주는 것 외에는 아무런 소득이 없다. 이런 상황을 만든 감독을 어느 선수도 따르지 않는다.
● 선수단 버스 앞에선 무슨 일이 벌어질까
요즘 각 구단이나 경호요원, KOVO 직원들이 가장 신경 쓰는 순간은 경기 뒤 선수들이 버스로 이동할 때다. 경기장 부근에 주차된 선수단버스 앞으로 선수가족과 팬이 뒤엉킨다. 팬들은 선물도 주고 사인도 받고 사진도 함께 찍는다. 숙소생활로 오래 떨어져 지내야하는 가족들과 얼굴을 마주칠 기회도 이 때다. 아름다운 풍경이지만 혹시 모르는 사고를 걱정해 경호라인을 친다. 불법 도박사가 선수들에게 접근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외국인선수들이 V리그 팬에게 가장 감동받는 순간도 이 때다. 우리 팬은 유난히 선수들에게 선물을 많이 준다. 선물 대부분은 사탕 과자 초콜릿 음료수 등이다. 간혹 생활용품도 있다. 어느 열성 팬은 구하기 힘들다는 H버터칩 한 박스를 주기도 했다. 고맙고 감사해야 할 일이지만 체중에 항상 주의해야 하는 선수들에게 팬의 달콤한 선물은 부담스럽기도 하다.
김종건 전문기자 marc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kimjongke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