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호의 생생인터뷰] 최희섭 “강정호처럼, 팀의 일원이 돼라”

입력 2016-01-15 05: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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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야구선수 최희섭. 스포츠동아DB

■ 한국인 메이저리그 타자 1호 최희섭이 후배들에게 전하는 조언

강정호의 성공, 팀을 위한 헌신도 한몫
단장이 뽑은 그들…3번의 기회는 온다
경쟁자에 6:4 아닌 8:2로 앞서야 주전

최희섭(37·사진)에게 연락한 이유는 한국선수들의 메이저리그 도전에서 최근에는 투수들보다 타자들의 약진이 도드라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최희섭이 털어놓은 메이저리그의 민낯은 차가우면서도 달콤해 보였다. 강정호(피츠버그)가 얼마나 대단하고, 박병호(미네소타)와 김현수(볼티모어)는 얼마나 위대하고 험난한 도전을 앞두고 있는지 생생하게 느껴졌다.

1994년 박찬호의 LA 다저스 입단으로 시작된 고교·대학 졸업생들의 메이저리그 도전사는 절대 다수가 투수였다. 마운드에서 투수가 던진 공의 속도는 스피드건으로 측정이 가능하다. 그들이 던진 시속 150km 이상의 빠른 공은 동양인의 어깨가 미국인과 성능 면에서 큰 차이가 없음을 입증했다. 그러나 타자의 능력은 객관적으로 측정하기가 이보다는 어렵다. 그 편견을 무너트린 1세대 중 한명이 최희섭이다. 선수생활 전체를 보면 잦은 부상과 시련 등 아쉬움이 많은 여정이었지만, 미국에서 ‘빅초이’로 불렸던 그가 최초의 한국인 메이저리그 타자라는 사실은 앞으로도 결코 변할 수 없는 사실이다. 김현수와 박병호, 그리고 빅리그 진출을 위해 뛰고 있는 이대호를 생각하며 한국인 1호 메이저리그 타자와 마주했다. 지난 시즌을 끝으로 은퇴한 최희섭은 새 출발을 위해 메이저리그 구단으로 코치 연수를 앞두고 있다.


-시카고 컵스 입단 초 마이너리그에서 앨버트 푸홀스(현 LA 에인절스)를 능가하는 유망주로 꼽혔다. 그러나 컵스는 빅리그 데뷔 2시즌 만인 2003년 뇌진탕 부상을 당하자, 그 해 말 플로리다(현 마이애미)로 트레이드했다. 한국프로야구라면 1차지명 수준인, 거액의 계약금을 지급한 유망주는 어떻게든 꽃을 피울 때까지 장시간 기다렸다. 그 과정이 무척이나 힘들었을 텐데.

“메이저리그라는 곳은 철저히 비즈니스로 움직이는 곳이다. 그래도 난 핵심 유망주였기 때문에 기회가 있었던 것이다. 마이너리그에서부터 엄청난 경쟁이었다. 메이저리그 25인 로스터에 드는 순간, 팀원 전체가 얼마나 힘겹게 그 자리까지 왔는지 알기 때문에 동료로 인정해준다. 그러나 25명에도 3가지 부류가 있다. 경기를 매일 뛰는 주전, 백업 베테랑들, 그리고 유망주다. 팀의 방향은 크게 2가지로 나뉜다. 유망주들을 더 많이 키우는 팀, 아니면 FA(프리에이전트) 시장에서 즉시전력과 특급선수를 바로 바로 영입하는 팀이다. 유망주 중 상품성이 조금이라도 떨어진다고 판단되면 또 다른 상품성 높은 선수를 위해 트레이드된다. 그런 곳이다.”

피츠버그 강정호. 사진=ⓒGettyimages멀티비츠



-강정호는 잘 해냈다. 박병호와 김현수는 어떻게 보나. 연봉은 출전을 보장하는 초고액 수준이 아니다.

“강정호는 넥센을 상징하는 선수였지만, 미국에선 정말 신인처럼 자신을 낮추고 팀에 헌신하는 모습이 생생히 보였다. 그런 점이 굉장히 큰 플러스가 됐을 것이다. 한국과 미국을 비교하면, 선후배 관계는 미국 쪽이 훨씬 엄격하다. 개인주의 나라지만, 야구장 안에 들어서는 순간 25명은 한 팀이 되고 이기고자 똘똘 뭉친다. 그런 응집력은 미국이 더 강하다. 김현수와 박병호는 1000만달러, 2000만달러를 받는 초고액 연봉자는 아니다. 그러나 미국야구는 단장이 주도한다. 단장이 선발한 해외선수이기 때문에 분명히 기회는 있을 것이다. 냉혹한 메이저리그도 3번의 기회는 준다.”


미네소타 박병호-볼티모어 김현수(오른쪽). 스포츠동아DB



“박병호·김현수, 건강하게 포지션 차지하는게 관건’”


-빠른 적응을 위해 가장 필요한 부분은 무엇일까. 기술적인 측면도 대비해야 할 것 같다.


“워낙 좋은 선수들이다. 타격폼은 바꾸지 않으려 해도 자연스럽게 변화가 생길 수밖에 없다. 투수가 던지는 공의 평균 스피드가 훨씬 높기 때문에 타격 자세가 매우 간결해진다. 기술적 측면은 극복해낼 수 있다. 빠른 적응을 위해 통역과 에이전트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모든 정보와 감독, 코치, 구단의 통보가 1차로 에이전트와 통역에게 전달된다. ‘아’ 다르고 ‘어’ 다르다.오해가 없도록 해야 한다. 그 부분이 사실 굉장히 어렵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부분은 메이저리그 타자들은 1월 말에 이미 개인훈련으로 라이브 배팅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캠프 시작과 함께 사실상 바로 시범경기다.”


-긴 시즌, 먼 이동거리 등 국내리그와 다른 점이 많다.


“우승을 하기 위해선 220경기를 해야 한다고 말하며 훈련하더라. 시범경기와 시즌, 포스트시즌을 다 더하면 220경기 정도 된다. 미국에서 그래도 유망주 출신이라는 덕분에 3∼4년 뛰었지만, 단 하루도 ‘오늘은 좀 쉽게 했다’는 생각이 든 적은 없었다. 야구를 위해 태어난 최고의 투수들이 있다. 미국뿐 아니라 각 나라 최고 선수들이 모여 있다. 하루하루가 전쟁이다. 그러나 거기서 살아남으면 최고의 부와 명예가 따른다는 것을 다 알고 있다. 그래서 더 치열하다.”


-박병호와 김현수는 정글 같은 그 곳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강정호는 본인도 잘했지만, 포지션 경쟁 선수의 부상이라는 호재도 있었다. 김현수보다는 박병호의 부담이 더 큰 건 사실이다. 1루수와 지명타자는 25홈런, 30홈런에 100타점을 원하는 포지션이다. 그러나 두 선수가 못할 거라는 생각은 단 한번도 안 해봤다. 솔직하고 냉정한 전망이다. 타격은 정말 빼어난 선수들이다. 관건은 ‘에브리데이 플레이어’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경쟁 선수보다 6대4가 아닌 8대2로 잘해야 한다. 부상으로 아파도 자리를 빼앗길까봐 꾹 참고 뛰는 메이저리그 선수들도 많다. 한국은 작은 부상이어도 다 빼준다. 대체자원의 경쟁력차이다. 내가 한국에서 그랬던 것처럼 자주 아팠다면 미국에선 100번 방출됐다. 튼튼해야 하고 몸 관리가 굉장히 중요하다. 수백억원을 받는 슈퍼스타가 아니면 하루하루가 치열한 경쟁이다. 플래툰 시스템으로 고생한 기억이 난다. 완전히 포지션을 차지하는 것이 핵심이다.”

2007년 한 스포츠주간지는 2006년 제1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훈련 도중 최희섭(당시 다저스)이 조언을 하는 이승엽(현 삼성·당시 요리우리)에게 “형, 저 메이저리거에요”라고 말했다는 뒷이야기를 보도해 큰 파장을 낳았다. ‘형저메’는 수년간 최희섭에게 큰 상처였다. 진실은 다르다. 수비훈련 도중 파이팅 넘치게 소리를 지르자는 이승엽에게 한국프로야구 경험이 없는 최희섭이 “형, 미국에선 수비 때 소리를 지르지 않아서…”라며 미안스럽게 한 말이 와전됐다. 메이저리그는 최희섭에게 큰 명예를 선물했지만 그 영광은 짧았고, ‘형저메’가 상징하는 상처가 남았다.


-1997년 고교 최고 유망주였다. 해태에 입단해 올해까지 20년 가까이 뛰었다면 어땠을까. 다시 1999년으로 돌아가면 컵스 계약서에 사인을 찍을 건가.


“당연하다. 20년 동안 선수생활과 단 하루 메이저리그 경기 중 택한다면 망설임 없이 두 번째다. 그만큼 아무나 설 수 있는 곳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뛰어난 경력을 쌓은 박병호와 김현수는 세계 최고가 모여 있는 그 특별한 무대 데뷔를 앞두고 있다. 경험을 해봤지만 무척 부럽고 응원하고 싶다. 난 3년여뿐이었지만, 꼭 슈퍼스타의 길을 걸었으면 한다. 미국에 가면 꼬마 팬이 증조할아버지, 할아버지, 아버지와 함께 나와 응원하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100년 넘게 집안 대대로 한 팀을 응원하기도 한다. 매우 특별한 팬들이다. 매경기 수만명의 관중이 운집하는 그 경기장에서 세계 최고의 선수들과 함께 경기했던 그 순간이 떠오른다.”

이경호 기자 rush@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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