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A 헥터. 사진제공|스포츠코리아
누가 이 숙제를 잘 푸는 투수일까. KIA 외국인투수 헥터 노에시(29)는 이름값에 걸맞게 성공적인 KBO리그 데뷔 시즌을 보내고 있다. 그가 에이스 노릇을 해내고 있는 건 ‘이닝이터’로서 가치를 보이기 때문이다. 144경기 장기레이스 체제에서 이닝이터의 가치는 그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눈에 띄는 성적도 훌륭하다. 26경기서 13승3패 방어율 3.55를 기록했고, 두 차례 완투에서 완투승과 완봉승을 거뒀다. 13승째를 거둔 지난달 31일 광주 SK전에선 그의 가치를 느낄 수 있었다. 이날 헥터는 7이닝 5실점했는데도 승리를 가져갔다. SK 타선에 8안타를 내줬고, 4회 집중타를 맞고 한 번에 4점을 내주는 등 패전 위기도 있었다. 그러나 볼넷과 사구를 1개씩 내줬고, 탈삼진 8개를 기록하며 7회까지 버텨내 승리를 가져갔다.
이날 헥터의 투구수는 121개였다. 1회 선취점을 내주는 과정에서 안타 2개와 볼넷, 사구를 내주면서 1회에만 투구수가 26개에 이르렀다. 4회 4실점하는 과정에서도 30개의 공을 던졌다.
단 2이닝에 한 경기 평균 투구수의 절반을 던져버린 셈이었다. 그러나 올 시즌 헥터는 실점 등으로 인해 투구수가 많아지는 이닝이 생겨도 다른 이닝을 통해 이를 극복해낸다. 다른 이닝을 통해 작심하고 투구수를 줄이는 식으로 경기를 최대한 길게 끌어간다. 이날도 헥터는 3회 상대 3~5번타자인 최정, 정의윤, 이재원을 삼자범퇴로 막으면서 단 9개의 공만을 던졌다. 7회는 2~4번 타순을 단 11개의 공으로 마무리했다.
자유자재로 완급조절을 하는 ‘능구렁이’ 같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 메이저리거의 노련함일까. 헥터는 2014년 시카고 화이트삭스에서 선발투수로 8승을 올린 경력을 갖고 있다. 힘을 들이지 않고도 가볍게 맞혀 잡는 능력이 탁월하다.
실제로 헥터는 1일까지 172.1이닝을 던져 투구이닝 1위에 올라있다. 경기당 평균 6.1이닝을 소화했다. 여기에 투구수도 2860개로 압도적 1위다. 경기당 투구수는 111개로 삼성 차우찬(111.2개)에 근소하게 뒤진 2위다. 그러나 이닝당 17.5개를 던진 차우찬보다 적은 16.6개로 관리에 능했다.
탁월한 투구수 관리능력과 함께 체력이 동반돼 엄청난 이닝이터가 탄생한 셈이다. 전체 탈삼진을 9이닝으로 환산한 K/9(경기당 탈삼진)은 5.95개로 평범하다. 규정이닝을 채운 투수 중 11위에 불과하다. 반면 BB/9(경기당 볼넷허용) 2.51개, KK/BB(볼넷 대비 삼진 비율) 2.38로 모두 최소 6위에 올라 있다. 탈삼진이 대신 적은 볼넷 허용과 맞혀 잡는 영리한 피칭을 펼치고 있다.
이명노 기자 nirvana@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