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스볼 피플] ‘무명’의 SK 불펜포수 이석모, 주인공이 되다!

입력 2016-09-13 05: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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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 불펜포수 이석모는 스무 살이던 2009년 대학생활을 포기하고 선수들의 조력자인 불펜포수 일을 시작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엑스트라’로 일하던 그는 ‘연결의 힘’을 테마로 한 SK텔레콤 광고에서 ‘주인공’이 됐다. ‘1000경기 출장 기념식’에서 받은 황금색 미트를 낀 이석모. 사진제공 |SK 와이번스

매일 그라운드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선수들 뒤엔 수많은 이들의 땀과 희생이 존재한다.

묵묵히 선수들 마냥 굵은 땀방울을 흘리지만, 영원히 ‘무명(無名)’인 그들. 선수들과 똑같은 유니폼을 입고, 똑같은 장비를 차고. 수없이 앉았다 일어섰다를 반복하며 자신을 찾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가는 이들, 바로 불펜포수들이다. 6일 인천 SK행복드림구장. 5강 싸움에 한창인 KIA-SK전에 앞서 작은 행사 하나가 열렸다. SK 불펜포수 이석모(26)의 ‘1000경기 출장 기념식’이었다. 감독이나 선수, 그리고 심판위원 등은 공식적으로 출장경기가 집계돼 기념행사나 시상을 하곤 한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곳에서 매일 구슬땀을 흘리는 불펜포수들에겐 남의 일일 뿐이었다.


● 불펜포수 1000경기 출장, SK의 깜짝 이벤트

이날 행사는 본인만 모른 채 은밀하게 진행됐다. 구단 차원의 ‘깜짝 이벤트’였다. 사실 그는 이날 오전부터 모회사 광고모델로 발탁돼 촬영에 임했다. 불펜포수로 SK 선수단 사이에서 보이지 않는 연결고리 역할을 한 그가 광고 테마에 적합하다는 판단에 CF 촬영까지 하게 된 것이다.

보통 경기 준비 탓에 바쁜 시간이지만, 이날은 광고 촬영을 핑계로 경기 전 덕아웃에 앉아 전광판을 바라보라는 주문을 받았다. 그런데 이내 전광판에는 자신을 향한 특별영상, 그리고 선수들의 ‘축하 메시지’가 흘러 나왔다. 항상 “석모야”라며 찾던 선수들이 진심을 담아 그간의 고마움을 표현했다.

몰래 준비한 영상편지, 어리둥절해 하던 그는 이내 그라운드로 불려 나갔다. 경기 중에는 투수 교체 때 포수가 없으면 가끔씩 나가 공을 받았던 그곳, 이석모는 만 명이 넘는 관중 앞에 서서 축하를 받았다. 항상 살뜰히 챙겨주는 투수 윤희상이 선수단 대표로 기념 글러브를 전달했다.

마치 골든글러브를 연상시키는 황금색 포수 미트였다. 이 미트엔 한 줄의 자수가 정성스럽게 새겨져 있었다. ‘석모야 고마워.’

SK 불펜포수 이석모(오른쪽). 사진제공|SK 와이번스



● 대학 대신 선택한 불펜포수, 8년 장기근속의 비결

이석모는 남들은 프로 생활을 시작하거나, 대학 신입생이 되는 스무 살에 SK에서 불펜포수 일을 시작했다. 그게 2009년이었다. 연 단위로 계약이 이뤄지는 특성상 한 팀에서 4~5년간 머물기도 힘들지만, 이석모는 벌써 8년째 SK에서만 불펜포수 일을 하고 있다.

팀 내 불펜포수 중 최고참이자, 지금은 전력분석 지원 역할까지 하고 있다. SK 선수들이 “석모야”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 정도로 언제 어디서든 부르면 달려간다. 뭐가 고장 나서 잘 안 되도, 뭐가 부족해도 항상 그를 찾을 정도로 ‘만능맨’이다.

이석모는 “항상 변함없이 한 게 8년이나 오게 만들었다. 오래 했다고 바뀌거나 해이해지지 않은 것 같다. 선수들은 내가 못하는 게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래서 날 많이 찾아주는데 정말 고맙다”며 활짝 웃었다.


● 무산된 현역 포수 데뷔, 아쉬움 없다

사실 이석모는 일찍 가정을 꾸리면서 대학 생활을 포기하고 SK로 향했다. 인천 출신인 그는 고교 때 강원도 원주고등학교로 스카우트됐고, 프로 지명을 받지 못했지만 서울문화예술대학에 진학했다. 입학 전 몇 달 동안 훈련까지 했지만, 당장 생계를 위해 수입이 필요했다.

선수를 그만둔 것에 대한 아쉬움은 없을까. 그는 “처음 불펜포수로 들어왔을 땐 선수들을 보면서 ‘나도 나가서 뛰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긴 했다. 지금은 그런 게 없다. 선수들을 돕는 게 내 역할”이라며 손사래를 쳤다.

사실 ‘현역 선수’로 뛸 기회도 있었다. 2009년 6월, 박경완이 광주에서 아킬레스건이 파열되는 중상을 입었다. 당장 포수가 급해진 김성근 감독은 1년 전까지 선수로 뛰었던 이석모에게 주목했다. 당시 김 감독과 박철영 배터리코치는 이석모의 어깨를 보고 “조금만 하면 되겠다”며 1달 정도 다른 포수들과 함께 훈련을 시켰다. 급기야 ‘선수등록을 시키자’는 결정까지 내려졌다. 그러나 그해 초 대학에 입학했던 그는 당장 선수등록이 불가능했다. 이석모는 “선수로 뛰었어도 난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냥 때가 안 맞았던 것 같다. 그래도 아쉬움은 없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SK 불펜포수 이석모(오른쪽). 사진제공|SK 와이번스



● 스스로 챙겨야 하는 몸, 감기도 조심하는 불펜포수

선수는 아니지만, 선수만큼 몸 관리를 해야만 불펜포수로 장수할 수 있다. 사실 그는 선수생활을 하면서 무릎을 다쳐 군면제를 받았다. 무릎이 좋지 않음에도 끝없이 앉았다 일어섰다를 반복해야만 한다. 이석모는 “최대한 무리가 가지 않도록 안 아픈 무릎만 꿇고 받는 식으로 버티고 있다. 사실 불펜포수는 상상하는 것보다 공을 많이 받는다. 그러나 우린 선수처럼 트레이너들의 관리를 받을 수 없다. 선수들 스케줄대로 이리 뛰고 저리 뛰는 게 우리 일”이라며 “각자 몸 관리를 잘 해야만 한다. 선수들은 흔한 감기 하나에도 민감하지 않나. 우리도 선수들의 경기에 지장이 없도록 감기도 걸리지 않게 스스로 조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라운드 뒤 음지에서 일하는 ‘엑스트라’일 수도 있지만, 이석모는 이날 당당히 ‘주인공’이 됐다. 누군가의 100승, 누군가의 1000안타에 비하면 보잘 것 없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CF 촬영과 1000경기 출장 기념행사를 가진 그날, 누군가에겐 생애 최고의 하루였다.


●이석모

▲생년월일=1990년 9월 16일

▲출신교=인천 서림초~인천 동산중~원주고

▲키·몸무게=182㎝·105㎏(우투우타)

▲취미=독서

▲특기=요리

이명노 기자 nirvana@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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