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희관, 편견을 넘어 빅게임 피처로

입력 2016-11-02 05:30:00
카카오톡 공유하기
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두산 유희관. 스포츠동아DB

유희관(30)의 대학 시절 때 일화다. 불펜피칭을 하고 있는데 어느 야구인이 “프로에 보내서 배팅볼 던지면 딱 좋겠다”는 말을 했다. 이런 저평가 속엔 유희관이 제구력이 그 무렵부터 빼어났다는 역설의 의미도 담겨있다. 그러나 ‘스피드가 나오지 않는 투수는 도저히 살아남을 수 없다’는 통념을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두산은 유희관을 2009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2차 6순위로 지명했다. 전체 42번째였으니 그다지 눈여겨보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2009년 5월3일 사직 롯데전이 KBO 1군 데뷔전이었는데 0.1이닝만 던졌다. 그해 13.1이닝만 던지고 1군의 부름을 받지 못했다. 2011년 상무로 갔다. 두산 김태룡 단장은 “프로로 오면 직구 구속이 올라갈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방출을 고민했는데 김승영 사장님이 ‘조금만 더 보자’고 해서 뒀다”고 회고했다.

상무 제대 후 2013년부터 유희관은 4년 연속 10승 투수로 돌아왔다. 2013년 두산의 포스트시즌은 유희관을 스타덤으로 올려놓은 무대였다. 언젠가부터 유희관을 향해 세상은 ‘느림의 미학’이라는 찬사를 보냈으나 산꼭대기에 올려놓은 바위가 굴러 떨어지면 다시 끌어올리는 행위를 반복하는 시지프스처럼 계속 편견과 싸워야 했다. ‘저 구속, 저 체형으로는 한계가 올 수 있다’는 우려 속에 유희관은 2013년 10승을 시작으로 2014년 12승, 2015년 18승, 2016년 15승을 거뒀다. 두산 역사상 좌완투수 중 2년 연속 15승을 거둔 투수는 유희관이 유일하다. 최근 2년간 180이닝 이상을 투구했고, 잠실구장(9승1패 방어율 2.99)에 최적화된 투수의 위용을 보여줬다. 2016시즌을 앞두고 다이어트에 돌입하는 등, 세심하게 준비한 효과를 봤다.

이렇게 KBO리그를 대표하는 좌완투수로 자리매김했으나 국가대표를 뽑을 때마다 그의 이름은 늘 설왕설래에 그쳤다.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 2015년 프리미어12 대표팀에 승선하지 못한데 이어 2017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예비 엔트리에도 빠진 상태다. 이젠 초탈한 듯하지만 마음이 편치만은 않을 것이다.

KBO 사상 최초로 4인 선발이 모두 15승 이상을 달성한 두산은 NC와 맞붙는 한국시리즈(KS)에서 유희관을 4차전 선발로 정했다. 잠실이 아닌 마산에서 출격시킨 것이다. KS가 6차전 이상의 장기전으로 흘러가면 잠실구장에서 유희관의 불펜 투입을 고려할 수 있다는 복선이 깔려있다. 유희관은 2013년 준PO에서 지금의 NC 나테이박 타선 이상으로 강력했던 넥센 판타스틱4 타선(서건창~박병호~강정호~유한준)을 완벽히 틀어막았다. 그것도 가장 타자친화적인 목동구장에서 이뤄낸 성과였다. 삼성을 꺾고 14년만의 우승을 결정지었던 2015년 KS 5차전 승리투수도 유희관이었다. 그리고 두산 판타스틱4 선발의 마지막 주자로서 유희관의 ‘예술구’가 2016년 KS 4차전을 수놓는다.

마산 | 김영준 기자 gatzby@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뉴스스탠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