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발리볼] KB손해보험을 바꾼 권순찬 감독의 선택들

입력 2019-03-05 15:28:00
카카오톡 공유하기
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KB손해보험 권순찬 감독. 스포츠동아DB

KB손해보험 권순찬 감독. 스포츠동아DB

V리그 올스타 브레이크 이후 새롭게 달라진 팀이 있다. 바로 KB손해보험이다. 4라운드까지 7승17패를 기록하며 최하위 한국전력과 함께 봄 배구의 꿈이 사라진 팀이 어느 순간 갑자기 각성을 했다. 5라운드 이후 놀랍게도 9승2패다. 만일 지금 새로 시즌을 시작한다면 우승후보로 떠오를만한 결과다.

KB손해보험은 4일 의정부 실내체육관에서 벌어진 현대캐피탈과의 시즌 마지막 홈경기에서 풀세트 혈투 끝에 3-2로 이겼다. 그 패배로 현대캐피탈은 리그 우승 꿈을 접었다. 경기장을 찾은 홈팬들은 마치 챔피언결정전에서 우승한 느낌이었다. 0-2로 다 졌던 경기를 너무나 극적으로 뒤엎었기 때문이다.

● 영화 같은 경기를 만든 감독의 선택

최근 KB손해보험은 이런 영화 같은 경기를 자주 보여준다. V리그 출범 이후 KB손해보험이 단 한 번도 가져보지 못했던 끈끈한 수비와 안정된 리시브, 모두가 원할 때 점수를 내는 새로운 배구가 지금 펼쳐지고 있다. 권순찬 감독의 눈썰미와 선택이 이런 놀라운 결과를 만들어냈다.

달라진 KB손해보험을 상징하는 선수는 김정호다. 시즌 도중 삼성화재와의 트레이드를 통해 영입했다. 윙공격수 알렉스의 부상으로 외국인선수를 OPP 펠리페로 교체하면서 권순찬 감독은 변화를 택했다. 팀의 기둥 공격수이자 오랫동안 유망주였던 OPP 이강원을 과감히 포기하고 김정호를 택했다.

팬들의 반응은 좋지 않았다. 삼성화재 시절 원포인트 서버 외에는 특별히 보여준 것이 없는 윙공격수를 2012년 전체 1순위 드래프트선수와 맞바꾸는 결정에 비난했다. 하지만 감독의 판단은 달랐다. 사실 김정호는 KB손해보험이 2017년 9월 벌어졌던 2017~2018시즌 신인드래프트 때부터 탐냈던 선수였다. 1라운드에서 세터 최익제를 찍었던 KB손해보험은 2라운드에서 차례가 돌아오기만 기다리고 있었다.

KB손해보험 김정호. 스포츠동아DB

KB손해보험 김정호. 스포츠동아DB


● 김정호의 스타일에서 희망을 보다

“평촌고 시절 경기를 봤는데 눈에 띄었다”고 권순찬 감독은 기억했다. 그는 타점과 파워는 물론이고 경기 때의 스타일을 유심히 본다. 자세와 행동, 표정도 살핀다. 자신감이 있는지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서다. 실수를 했을 때가 더 중요하다. “해서는 안 될 실수인지 어쩔 수 없는 실수인지를 본다. 건방을 떠는 것인지 긴장을 하고 있는지 등을 주로 본다”고 했다.

김정호는 경희대 2학년을 마치고 신인드래프트에 나왔다. 삼성화재가 바로 앞 순번에서 채갔다. 결국 KB손해보험은 트레이드를 선택했다. 새 유니폼을 입고 한동안 적응기간이 필요했지만 5라운드부터 잠재된 능력이 폭발했다. 공수가 다 되는 윙스파이커는 KB손해보험이 그동안 애타게 찾던 선수였다.

김정호의 프로 2년차 기록만 본다면 대한항공 정지석보다도 앞선다.

김정호는 이번 시즌 28경기에서 141득점(공격성공률 50%), 13서브에이스, 7블로킹, 리시브효율 39.52%를 기록 중이다. 2014~2015시즌 정지석은 35경기에 출전해 61득점(공격성공률 41.30%), 9서브에이스, 14블로킹, 리시브효율 53.81%를 기록했다. 공격과 서브는 김정호가 낫고 블로킹과 리시브는 정지석이 앞선다. 완전한 배구선수가 되기 위해 앞으로 김정호가 어떤 부분에서 더 노력해야 하는지가 드러난다.

권순찬 감독은 “키가 작아서 점프를 많이 해야 하는데 체력이 관건이다. 한 시즌을 풀로 다 뛰어봐야 경험이 생길 것”이라고 했다.

KB손해보험 정동근(왼쪽)-정민수. 스포츠동아DB

KB손해보험 정동근(왼쪽)-정민수. 스포츠동아DB


● 달라진 김정호를 만들어준 도우미 정동근과 정민수

5라운드부터 팀의 주축이 된 김정호는 정동근과 정민수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정동근도 권순찬 감독의 판단과 선택이 만든 성공적인 영입사례다.

그는 지난해 5월 이탈리아 몬차에서 벌어졌던 외국인선수 트라이아웃 때 삼성화재에서 KB손해보험 선수가 됐다. KB손해보험이 김진만을 한국전력으로 보내고 한국전력은 정동근을 현금으로 사와서 KB손해보험에 주는 트레이드를 통해서였다. 한국전력은 즉시전력용 선수가 필요했고 삼성화재는 송희채의 영입으로 윙 공격수에 여유가 생긴데다 FA영입을 위한 실탄이 필요했다.

권순찬 감독은 알렉스가 상대팀의 서브폭탄에 흔들릴 때 오른쪽에서 리시브 부담을 덜어줄 선수로 정동근을 원했다. 대학시절 봤던 수비와 리시브 능력을 믿었다. 감독의 눈썰미는 정확했다. 정동근이 1월17일 군 복무를 마치고 KB손해보험의 유니폼을 입은 뒤부터 시너지 효과가 나기 시작했다.

김정호와 정동근의 탄탄한 리시브에 날개를 달아준 사람은 리베로 정민수다. FA로 영입한 정민수가 뒤에서 후배들을 리드하며 역할분담을 잘 해주자 KB손해보험의 플레이가 훨씬 탄탄해졌다. 권순찬 감독은 “3명이 뒤에서 많은 대화를 나누며 수비할 공간을 나누는데 이들이 잘 해주면서 팀이 안정감을 찾았다”고 털어놓았다. 그동안 KB손해보험을 상징하는 이미지는 흔들리는 리시브와 한번 무너지면 겉잡을 수 없는 수비였다.

모래성 같았던 KB손해보험은 5라운드 이후 바위처럼 단단해졌다. 리시브가 매끈해지고 수비에서 어려운 공도 척척 받아서 올려주자 세터 황택의의 연결은 더 정교해졌고 과감해졌다. 그 결과가 9승2패의 최근 성적이다. 그런 면에서 배구는 예민한 운동이고 코트의 6명이 모두 얽혀 있는 퍼즐게임이다.

김종건 전문기자 marc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오늘의 핫이슈

뉴스스탠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