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 매치 히어로’ 박주영, 스승의 믿음에 결과로 보답하다

입력 2019-05-06 09: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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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C서울 박주영. 스포츠동아DB

영웅은 난세에서 탄생하고, 스타는 큰 경기에 강한 법이다. 베테랑 스트라이커 박주영(FC서울)이 이를 다시 한 번 증명했다.

모두가 기다려온 K리그의 대표 히트상품 슈퍼매치, 5일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수원 삼성과 ‘하나원큐 K리그1 2019’ 10라운드 원정에서 박주영이 힘을 발휘했다. 서울이 0-1로 끌려가던 후반 추가시간 8분, 천금의 페널티킥(PK) 찬스를 놓치지 않았다. 낮게 깔린 오른발 킥이 골 망을 흔들었다. 수원 골키퍼 노동건이 방향을 잡았지만 빠른 공을 막지 못했다.

드라마틱했다. 서울은 후반 11분 첫 골을 내줬다. 하필이면 득점한 이가 서울에서 활약한 데얀이었다. 친정을 향한 예우 차원에서 골 세리머니는 없었지만 “꼭 필요할 때 골을 넣을 수 있는 선수”라며 경계했던 서울 최용수 감독에게는 최악의 시나리오였다.

사실 박주영의 동점골도 우여곡절이 많았다. 서울은 후반 45분에도 PK 찬스를 얻었다. 수원 미드필더 김종우가 문전에서 박주영의 발을 걷어찼다. VAR(비디오판독)이 진행돼 PK가 선언됐다. 키커로 나선 박주영이 찬 공을 노동건이 막았다.

그러나 자존심을 회복하기까지 10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추가시간이 6분 주어진 가운데 막판 반격에 나선 서울은 경기종료 30여 초를 남기고 프리킥 찬스를 얻었다. 이를 놓치지 않았다. 키커 박주영이 직접 처리한 대신, 수원 수비벽 오른쪽으로 볼을 흘려주자 고요한이 침투하는 과정에서 노동건의 발에 걸렸다. 여지없이 울린 휘슬은 PK를 가리켰고, 박주영이 방점을 찍었다. 실축 당시와 높낮이만 달리했을 뿐, 같은 방향으로 킥을 처리한 대범함이 돋보였다.

지난달 28일 전북 현대와의 9라운드 원정경기에서 후반 추가시간 6분에 결승골을 허용해 허무한 패배를 안은 서울은 일주일 뒤 추가시간의 기적을 연출하며 귀중한 승점 1을 수확했다. 동시에 유쾌한 ‘수원전 무패’ 징크스가 이어졌다. 2015년 6월 이후 서울은 14경기 무패(7승7무)를 달리게 됐다.

한 경기에서 연거푸 PK를 차는 장면은 세계적으로도 흔치 않다. 특히 앞서 PK를 실축한 상태라면 더욱 그렇다. 그런데 박주영이 먼저 자신이 차겠다는 신호를 보냈고, 잠시 고민한 벤치가 받아들였다. 이 때 유일한 지시는 “낮게 차라”는 내용이었다.

쉬운 결정은 아니다. 그럼에도 서울이 박주영의 킥을 허락한 배경에는 혹시 모를 ‘PK 트라우마’가 있다. 실축이 반복될 수 있으나 결국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는 것을 최 감독은 누구보다 잘 안다. 박주영은 “중요한 경기였다. 하마터면 질 뻔 했다. 다행히 마지막까지 집중해 좋은 기회를 얻었다. 동료들도 실축 후 많이 격려해줬다”고 했다.

소득은 승점과 무패 행진만이 아니다. 사제의 끈끈한 신뢰를 재확인한 계기다. 서로를 향한 믿음이 최상의 결실을 맺었다. 최 감독은 “불안했다”면서도 “(실축으로) 자신감이 떨어질 수 있었지만 끝까지 믿었다. 많은 걸 얻었을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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