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C 구창모. 스포츠동아DB
개막 직후부터 평균자책점(ERA) 순위표 꼭대기에서 벗어나지 않던 구창모(23·NC 다이노스)가 이탈했다. 부상으로 한 달 넘게 빠지면서 규정이닝과 멀어졌기 때문이다. 이제 투수 부문 개인기록 순위 대부분은 외국인선수들로 채워졌다. 토종 투수의 수난시대다.
구창모는 전반기에만 13경기에서 87이닝을 소화하며 9승무패, ERA 1.55를 기록했다. 기세가 워낙 좋았다. 컨디션이 안 좋은 날에도 퀄리티스타트(선발 6이닝 이상 3자책점 이하 투구)를 작성하며 말 그대로 ‘에이스 모드’였다. 이 페이스를 유지한다면 토종 선발의 여러 기록을 갈아 치울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7월 26일 수원 KT 위즈전 이후 구창모의 등판 기록은 없다. 전완근 염증 때문이다. 일단 염증이 사라져야 복귀시점을 가늠할 수 있다. 현재 재활군에서 회복에 전념하고 있다. NC는 8월까지 92경기를 치렀다. NC 투수의 규정이닝도 92이닝으로 높아졌고, 5이닝이 부족한 구창모의 이름은 기록 레이스에서 당분간 지워진다.
이 때문에 개인기록 순위 대부분은 외국인투수들로 채워졌다. 가장 심각한 쪽은 ERA다. 1위 에릭 요키시(키움 히어로즈·2.09)를 시작으로 8위 윌리엄 쿠에바스(KT·3.88)까지 ‘TOP 8’이 모두 외인이다. 토종 1위는 전체 9위 임찬규(LG 트윈스·3.95)이며, 토종 2위는 전체 10위 문승원(SK 와이번스·3.95)이다. ERA 톱 5 안에 토종선수가 들지 못한 사례는 역대 단 한 번도 없다.
선발투수의 핵심 덕목인 이닝은 ‘TOP 10’이 모두 외인으로만 채워졌다. 이대로 시즌이 끝난다면 이 역시 KBO리그 최초의 불명예다. 기본적으로 외국인투수들이 토종보다 이닝 소화력이 뛰어난 것은 맞지만, 그럼에도 토종 투수가 10걸 안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던 적은 없다. 11위 문승원(111.2이닝)을 비롯한 국내투수들의 분전이 절실하다.
탈삼진 순위도 마찬가지다. 시즌 초 구창모는 압도적 페이스로 삼진을 쌓아갔고, 한 달 이상 휴업 중임에도 전체 6위(87개)에 올라있다. 하지만 그 위로는 모두 외국인투수다. 구창모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경쟁하던 댄 스트레일리(롯데 자이언츠·138개)가 독보적 1위로 올라섰다.
김광현(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은 떠났고, 양현종(KIA 타이거즈)은 전반기 내내 부진했다. KBO리그는 ‘류윤김양’ 이후 에이스급 투수 배출에 실패했다. 구창모가 새 희망처럼 떠올랐지만, 부상으로 인해 울상 짓게 됐다. 구창모 정도를 제외하면 규정이닝을 소화하지 못한 채 맹활약 중인 ‘장외 선수’도 없다. 올해 KBO리그의 투수 판도는 역대급 외인 득세 시즌, 바꿔 말하면 역대급 토종 굴욕의 시즌이다.
최익래 기자 ing1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