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킹 메이커’

K리그1(1부) 포항 스틸러스에게 붙은 수식이다. 부정할 수 없다. 포항이 ‘하나원큐 K리그1 2020’ 24라운드에서 큰일을 저질렀다. 포항은 통산 8번째 우승을 품으려는 전북 현대에게 치명상을 입혔다. 상대의 심장부,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일격을 가했다.

포항은 3일 전북과의 경기에서 후반 14분 강상우의 프리킥에 이은 송민규의 헤딩골로 1-0 승리를 거뒀다. 포항은 13승5무6패, 승점 44로 3위를 지킨 반면 2위 전북은 16승3무5패, 승점 51에 머물렀다. 더욱 뼈아픈 사실은 전날(2일) 상주 상무를 안방에서 4-1로 격파한 선두 울산 현대(16승6무2패·승점 54)와의 격차가 승점 3으로 다시 벌어졌다는 대목이다.
지난해 12월 1일을 떠올릴 필요가 있다. 당시 포항은 울산 원정에서 4-1 대승을 거두며 전북에 기적과 같은 왕좌를 선물했다. 다득점에서 1골 앞선 전북이 웃었다. 그리고 올해는 주인공이 바뀌는 분위기다. 포항이 먼저 울산에 엄청난 선물을 안겼다. 파이널 라운드에서 1패는 최악의 시나리오다. 시즌 종료까지 3경기 남았고 ‘현대가 더비’도 한 번 예정됐으나 다득점에서 울산이 전북을 크게 앞섰다.
엄청난 골 폭풍을 일으킨 브라질 공격수 주니오를 앞세운 울산이 거의 매 라운드 꾸준히 화력을 폭발시켰지만 전북은 침묵한 경기가 너무 많았다. 울산은 24경기에서 51골을 터트렸고, 전북은 39골에 그쳤다. K리그는 골득실보다 다득점을 우선시한다. 25일 예정된 1·2위 간 대결에서 전북이 이겨도 순위를 뒤집기 어렵다는 얘기다.
포항은 정규 라운드(팀당 22경기)에서 전북에 2전 전패로 고개를 숙였지만 올 시즌 마지막 대결에선 물러서지 않았다. 모두 껄끄러워하는 적지에서도 정면 승부를 했고, 끝내 실력으로 웃었다. 전북이 수많은 기회를 놓쳤다곤 하나 포항의 기운이 훨씬 강했다. 지금 시점에선 내용은 중요치 않다. 오직 결과로 증명할 뿐이다.
공교롭게도 포항의 25라운드 상대가 울산이다. 파울루 벤투 감독(포르투갈)이 이끄는 국가대표팀과 U-23 대표팀의 스페셜 매치로 꾸며질 A매치 주간이 끝난 18일 홈으로 울산을 불러들인다. 이날의 ‘동해안 더비’는 ‘킹 메이커’ 드라마의 결정판이 될 90분이다.
다만 포항보다는 원정 팀에 무게가 쏠린다. 포항은 전북에 2패를 당할 때도 대등한 경기를 펼쳤지만 울산에는 힘을 쓰지 못했다. FA컵 4강전에서도 승부차기로 무릎을 꿇었다. 지난해 4-1 대승은 결코 기대할 수 없다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물론 포항은 포기할 생각이 없다. 한 번은 울산을 잡고 넘어갈 참이다. 감정이 좋지 않은 더비 라이벌에게 무대를 달리해 전패 당하는 수모는 상상도 하기 싫다. 특히 울산은 올해 포항이 유일하게 이기지 못한 상대다. 심지어 필드골도 없다. 패배도 버릇이 되는 법이라 더욱 간절하다. 포항 김기동 감독은 “울산을 한 번은 잡아야 한다. 울산, 전북의 우승다툼과 별개로 한 번도 못 잡은 팀을 꺾는 것은 포항의 의무”라고 힘주어 말했다.

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