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영.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김세영.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빨간 바지의 마법사’ 김세영(27·미래에셋)이 마침내 그토록 갈망하던 ‘메이저 퀸’의 자리에 올랐다. 꿈에 그리던 트로피를 다툰 경쟁자는 ‘골프 여제’ 박인비(32·KB금융그룹)였다. 김세영은 “인비 언니와 함께 칠 수 있어 영광이었다”고 했고, 박인비는 “김세영은 메이저 챔피언의 자격을 보여줬다. ‘언터처블’이었다”고 진심어린 축하를 보냈다.

김세영은 12일(한국시간) 미국 펜실베니아주 뉴타운 스퀘어의 애러니밍크 골프클럽(파70)에서 열린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시즌 세 번째 메이저대회 ‘KPMG 여자 PGA 챔피언십’(총상금 430만 달러·49억5000만 원) 최종라운드에서 보기 없이 버디 7개만을 기록하며 7언더파 63타를 기록, 최종합계 14언더파 266타로 우승을 차지했다. 2위 박인비를 5타 차로 따돌리고 자신의 LPGA 통산 11승을 메이저대회 우승으로 장식하며 상금 64만5000달러(7억4300만 원)를 손에 넣었다.

7언더파 단독 1위로 4라운드를 시작한 김세영은 3라운드까지 3타 뒤진 4위였던 박인비의 추격을 받았다. 박인비는 챔피언조 앞 조에서 첫 홀부터 버디를 기록하며 압박했다. 그러나 김세영은 흔들리지 않았다. 둘은 ‘장군멍군’을 부르듯 시차를 두고 나란히 전반에만 3타를 줄였고, 김세영은 후반에 4타를 더 줄이며 박인비를 결국 5타 차로 여유있게 따돌렸다.

2015년 3승을 차지하며 LPGA 신인왕에 올랐던 김세영은 2016년 2승, 2017년 1승, 2018년 1승, 지난해 3승에 이어 올해도 1승을 거두는 꾸준함을 자랑했다. 2018년 손베리 클래식에서 LPGA 투어 72홀 최소타 신기록(31언더파 257타)도 세웠던 그는 6년 연속 우승을 완성하며 한국인 LPGA 통산 승수에서 박세리(25승), 박인비(20승)에 이어 신지애(11승)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 지난해 11월 CME그룹 투어 챔피언십에서 우승해 LPGA 투어 사상 최고 상금 150만 달러(17억6000만 원)의 주인공이 됐지만, 메이저대회 우승이 없어 느꼈던 아쉬움을 말끔히 씻어냈다. 첫 메이저 타이틀도 이 대회 18홀 최소타 타이 기록(63타)과 72홀 최소타 신기록(267타)으로 ‘김세영답게’, 특별하게 따냈다.

● 박세리 보며 키운 꿈, 박인비와 경쟁하며 이루다
김세영은 “1998년 박세리 프로님이 US여자오픈에서 우승하는 것을 보고 나도 메이저에서 우승하고 싶다고 생각해 골프를 시작했다”며 “메이저 우승까지 이렇게 오래 걸릴 줄은 몰랐다”고 감격스러워했다. “메이저 우승이 정말 하고 싶어 전날 잘 때부터 큰 압박감을 느꼈다”고 털어놓은 그는 “지난해 최종전인 CME그룹 투어 챔피언십에서 우승했을 때도 큰 대회라 기뻤는데, 이번에는 그때와 또 다른 감정이었다. 뭔가 감동적이다”라고 말했다.

“전에는 메이저 대회만 나가면 정말 우승하고 싶어서 덤볐다. 이번 주는 외부적인 것에 흔들리지 않고 냉정하고 침착하게 대처했다”며 우승 원동력으로 냉정함을 꼽았다. 2015년 이 대회에서 우승자 박인비와 끝까지 경쟁하다 공동 2위에 만족해야했던 그는 “누군가 2015년 얘기를 해 주셔서 당시 생각이 났다. 올해는 극복해보자는 마음을 먹었다”며 “(박)인비 언니가 당연히 잘 칠 것으로 생각했다. 인비 언니는 내가 좋아하는 선수인데 대결 구도가 형성된 것만으로도 영광”이라고 선배를 예우했다.

박인비는 “나도 좋은 라운드를 펼쳤다. 버디를 몇 차례 놓쳤지만 샷에 실수가 거의 없었는데, 세영이는 언터처블이었다”며 “리더보드를 보니 내가 버디를 잡으면 세영이도 버디를 쳤다. 이런 경기를 펼쳐 즐거웠다”고 돌아봤다. “세영이가 지금까지 메이저 우승을 차지하지 못했다고 믿을 수 없을 만큼 꾸준하게 좋은 경기를 했다. 오늘은 챔피언답게 경기했다. 메이저 대회 우승 자격을 보여줬다”고 후배의 우승을 진심으로 축하했다.

한편 KPMG 여자 PGA 챔피언십 결과까지 반영한 상금 랭킹에서 박인비는 시즌 상금 106만6520달러(12억3000만 원)로 1위에 랭크됐고, 김세영이 90만8219달러(10억4200만 원)으로 2위에 올랐다. 올해의 선수상 포인트에서도 박인비가 1위(90점), 김세영이 2위(76점)가 됐다.

김도헌 기자 dohone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