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떠나봐야 그 사람의 진정한 가치를 알 수 있다. 이런저런 이유로 팀을 옮겨 새 시즌 OK금융그룹 유니폼을 입고 있는 펠리페(32)와 진상헌(34) 얘기다. 두 선수는 25일 인천계양체육관에서 벌어진 대한항공과 원정경기에서 세트스코어 3-2 승리의 주역이 됐다. ‘절대 1강’이라던 대한항공을 상대로 펠리페는 32득점, 진상헌은 12득점을 각각 올렸다. 진상헌은 특히 1세트 10-8에서 정지석의 공격을 가로막으며 통산 450블로킹 기록도 작성했다. 중요한 순간마다 중앙을 헤집으며 8개의 속공을 성공시키는 한편 4차례나 상대의 클러치 공격을 막아냈다. 진상헌의 이 같은 활약은 친정팀 대한항공 입장에선 씁쓸할 수밖에 없다.
개막 2경기서 FA 효과 다 보여준 진상헌
2007~2008시즌 신인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3순위로 대한항공에 입단해 큰 활약을 펼쳤지만 진상헌은 저평가된 선수였다. 쌓아올린 성적은 좋은 윙 공격수와 세터 한선수의 도움 때문으로 여겨졌다. 그래서 이번이 진상헌의 진짜 역량이 드러날 시즌으로 예상됐다. 25일 경기를 앞두고 대한항공 최부식 코치는 “(진)상헌이가 경험이 많아서 잘할 것”이라고 했는데, 그 이상이었다. 친정팀과 시즌 첫 대결인 만큼 정신무장을 더욱 단단히 한 듯했다. 자신을 상징하는 세리머니를 절제하면서 경기에 집중하려고 노력했다. 경기가 끝난 뒤에야 옛 동료 선수들과 코치들을 껴안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진상헌은 OK금융그룹 최초의 자유계약선수(FA) 영입 사례다. 그의 가세에 따른 효과는 석진욱 감독이 공식 기자회견에서 이례적으로 구단주에게 감사의 마음을 표시할 정도로 인상적이었다. OK금융그룹 데뷔전이었던 22일 한국전력과 경기 때는 4세트에 출장하자마자 4연속 블로킹을 기록했다. 외국의 많은 경기 영상을 참고해 코칭스태프에게 새로운 훈련방법까지 제시하는 등 누구보다 빼어난 연구정신은 숨겨진 힘이다. 지나치게 세리머니만 연구하는 이상한 선수로 잘못 포장도 됐지만, 이번에 진정한 모습이 드러났다.
경기뿐 아니라 훈련 때부터 팀에 도움 주는 펠리페
대체 외국인선수로만 3번째 시즌인 펠리페는 그야말로 리스크가 없는 확실한 보험이다. 엄청난 높이는 없지만, 잔 부상이 없는 데다 범실도 많지 않을뿐더러 팀이 필요로 할 때마다 꾸준히 득점해준다. 외국인선수 트라이아웃 때는 많은 감독들이 이 장점을 외면하고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새 얼굴을 찾지만, 결국 시즌이 다가오거나 준비과정에서 누군가 탈이 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선수 또한 펠리페다.
이번에는 OK금융그룹이 다른 팀들보다 먼저 결단해서 잡았다. 아직 실전감각은 부족하지만 지치지 않는 힘으로 경기 내내 필요한 공격을 해주는 능력은 22일 한국전력전, 25일 대한항공전에서 확인됐다. 한국전력을 상대로 22득점을 올린 펠리페는 54%의 공격성공률과 51%의 공격효율을 기록했다. 공격성공률을 60%로 끌어올린 대한항공전 때는 무엇보다 범실이 눈에 띄었다. 6개에 불과했다. 펠리페는 유난히 범실을 싫어한다.
이런 성향은 훈련 때도 드러난다. 젊은 선수들의 과감한 공격이 팀의 특징이지만, 많은 범실이 약점이었던 OK금융그룹으로선 펠리페가 더욱 찰떡궁합이다. 석 감독은 “진지한 훈련태도도 뛰어나지만 범실이 많은 선수는 따로 불러서 조언을 해줄 정도로 여러 면에서 팀에 도움이 된다”며 고마워했다.
김종건 기자 marc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