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이동국이 28일 전북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선수 은퇴 기자회견’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스포츠동아DB

전북 이동국이 28일 전북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선수 은퇴 기자회견’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스포츠동아DB


“나약하고 조급한 모습이 싫었다. 마침표는 해피엔딩이길….”

늘 푸른 소나무처럼 그라운드를 지키던 이동국(41·전북 현대)이 담담하게 풀어낸 은퇴 배경과 ‘축구선수’로서 마지막 바람이다.

26일 전북 구단과 자신의 소셜미디어(SNS) 계정을 통해 올 시즌 후 은퇴를 선언한 이동국이 28일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그간의 소회와 새 삶을 향한 의지를 전했다. 많은 이들의 갈채 속에 당당히 떠나는 그는 “선수로 뛰면서 ‘정신이 몸을 지배한다’는 마음이었다. 그런데 무릎 부상으로 조급해졌다.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는 생각에 불안했다”며 “몸이 아픈 것은 참는데, 정신이 나약해진 건 못 참겠더라. 그렇게 진지하게 (은퇴를) 생각했다”고 털어놓았다.

다만 아직 끝은 아니다. 이동국은 11월 1일 안방에서 열릴 대구FC와 ‘하나원큐 K리그1 2020’ 최종전(27라운드)에서 ‘K리거’ 신분으로 마지막 경기를 치른다. 울산 현대와 격돌할 FA컵 결승(11월 4일 울산·11일 전주)도 남아있다.

마지막 바람은 단 하나, 전북에서 트로피 10개를 채우는 일이다. K리그 7회(2009·2011·2014·2015·2017·2018·2019년),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ACL) 1회(2016년) 정상을 경험한 그는 올 시즌 리그와 FA컵 동반 우승을 소원한다.

“우승 트로피를 들며 유니폼을 벗는 선수가 몇이나 될까? 거기에 내가 있다면 그 이상 행복할 수 있을까? 해피엔딩이길 바란다. 은퇴하며 울고 싶지 않지만 기쁨의 눈물이라면 계속 흘릴 수 있다. 후배들이 화려하게 날 보내줬으면 한다.”


-은퇴를 결정한 이유는 뭔가.

“부상으로 떠나는 건 아니다. 몸은 정상이다. 무릎 부상 재활 과정에서 보인 나약한 모습이 싫었다. 긍정적인 생각만 했는데 조급해하는 모습을 보곤 더 운동할 수 없다 싶었다. 그만 뛰어도 될 시점이 아닌가?”


-지금 솔직한 감정은.

“만감이 교차한다. 아쉬움도, 기대감도 있고. 주변에선 ‘1년 더 뛰자’고 해줬다. 후련했다. 경쟁력이 조금은 남은 상황에서 떠나게 됐으니.”


-30대 중반부터 은퇴 얘기가 있었다. 그런데 수년을 더 뛰었다.

“5~6년 전부터 팀 후배들에게 ‘올해가 형 마지막이야’란 얘기를 반복했다. 이번에도 믿지 않더라. 멀리 내다보지 않았다. 코앞의 경기만 바라봤다. 노장이라 못한다가 아닌, 앞장서려 했다. 그렇게 나이를 모르고 살아왔다.”

1998년 포항 스틸러스에서 프로에 데뷔한 그는 K리그 통산 547경기에서 228골·77도움(전북 소속 360경기 164골·48도움)을 올렸다. K리그 최다 골이다. 여기에 ACL과 FA컵, A매치(105회·33골)를 더하면 800경기 넘게 뛰었다. 200호골, 300호 공격 포인트도 큰 의미가 있지만 그는 “800경기 이상 출격은 꾸준함의 지표라고 본다”며 애착을 드러냈다.


-최강희 감독(상하이 선화)을 빼놓을 수 없다.

“축복받으며 떠날 수 있게 해주신 분이다. 숱한 영광을 얻게 해주셨고, 미처 모르고 지낸 잠재력을 끄집어내주셨다. 감사하고 또 감사하다.”


-좌절도 많았다. 그 때마다 부활했다.

“힘들 때면 나보다 더 큰 시련을 겪는 분들을 떠올렸다. 당장의 아픔이 아무 것도 아니란 생각으로 버텼다. 스트레스가 적었다.”


-롱런의 비결은 무엇일까.

“경쟁에서의 생존이다. 자신만의 특별함이 있어야 한다. 단점을 보완하기보다 내 장점을 남들이 따라잡지 못할 장점으로 만들면 된다.”


-역대 최고의 파트너는? 전북은 어떤 존재인가.

“감히 우승을 넘볼 수 없는 전북이 강호가 된 계기가 2009년이다. 지금도 훌륭하지만 에닝요, 루이스 등 당시 함께한 동료들이 최고의 파트너들이었다. 전북은 정말 특별하다. 얻은 게 너무 많다. 전주를 제2의 고향으로 떠올리며 자주 오게 될 것 같다.”


-향후 계획은.

“무엇을 할 때 가장 행복할지, 어떤 걸 가장 잘할지 찾아야 할 시간이다. 조금 쉬며 고민하겠다. A급 지도자 교육을 받고 있지만 당장은 생각이 없다. 만약 지도자가 된다면 선수가 잘하는 걸 찾아내주고 조언해주는 역할을 하고 싶다.”

이동국은 1~2년 정도 재충전하며 새 인생을 개척할 참이다. 구체적 그림을 그릴 틈이 없었다. 단, 한 가지는 약속했다. 지도자로 돌아온다면 “물론 전북일 것 같다”고….

전주 | 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