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철우(36·한국전력)가 12년 전 아픈 기억을 힘겹게 꺼냈다. 현역 선수로서 현직 감독을 상대로 이야기를 꺼낸다는 게 쉽지 않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박철우가 용기를 낸 이유는 하나, 지금의 위기를 통해 한국프로스포츠의 뿌리 깊은 폭력을 없애기 위해서다.
박철우는 18일 안산 상록수체육관에서 열린 ‘도드람 2020~2021 V리그’ 남자부 5라운드 OK금융그룹전을 마친 뒤 이상열 KB손해보험 감독을 향해 작심발언을 했다.
이 감독은 17일 최근 배구계 학교폭력에 대해 “난 (폭력) 경험자라 선수들에게 더 잘해주려고 노력 중이다. (중략) 어떤 일이든 대가가 있을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박철우는 2009년 국가대표팀 코치였던 이 감독에게 구타를 당했고 고소까지 진행한 피해자다. 이 기사를 보고 격분해 소셜미디어(SNS)에 “피가 거꾸로 솟는다”는 글까지 게재했다.
박철우는 “오늘 정말 이기고 싶었다. 이겨서 꼭 인터뷰실 오고 싶었다. 동료들에게 고맙다”며 입을 뗐다. 이어 작심발언을 꺼내놓기 시작했다.
“경기 전 그 기사를 보고 하루 종일 손이 떨렸다. 그분(이 감독)이 감독이 되셨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도, 경기장에서 마주칠 때도 정말 힘들었다. 그럼에도 참고 지내고 싶었는데 그런 기사를 보니까 아니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예견된 것처럼 이렇게 인터뷰할 수밖에 없지 않았나 싶다. 다만 순위 경쟁 중인 KB손해보험 선수들에게는 미안하다.”
용기의 이유가 이 감독의 사과 요구는 아니다. 오히려 “11년이 지났다. 사과 안 하셔도 된다. 굳이 보고 싶지도 않다. 개인적으로 원하는 것은 전혀 없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가 바라는 건 하나, 비정상의 정상화였다. 박철우는 “정말 반성하고 좋은 지도자가 되시기를 바랐다. 하지만 몇 년 전까지도 다른 선수들에게 ‘박철우만 아니었으면 넌 맞았다’고 말한다는 얘기, 주먹으로 못 때리니 모자로 때린다는 얘기가 들렸다”고 설명했다.
“지금 모든 프로스포츠 선수 중 안 맞고 하는 선수 거의 없을 것이다. 나 때만 해도 부모님 앞에서 맞으면서도 ‘운동선수는 이래야 돼’라고 넘기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그것도 정도가 있다. 이미 고등학교 때부터 유명했다. 0-2로 밀릴 때면 선수들은 얼굴이 붉어진 채 3세트 코트에 나왔다. 몇몇은 기절하고 몇몇은 고막이 나갔다. 그들이 내 동기고 친구다. 그게 과연 한번의 실수인가? 말이 안 되는 소리다. 사랑의 매도 어느 정도여야 한다. 누군가 그랬다. ‘맞을 짓을 했으니 맞았지’라고. 그럼 여태껏 맞은 선수들은 모두 맞을 짓을 한 것인가.” 박철우가 힘겹게 꺼낸 진심이다.
“흙탕물 위에 모래를 잘 덮었는데 누군가 와서 휘젓는 기분이다. 내가 뿌옇게 흐려지고 있다.” 이 감독의 발언을 비롯한 현 상황에 대한 박철우의 솔직한 심경이다. 코트에서 이 감독을 마주칠 때마다 쉽지 않을 것 같다고 이야기하자 “딱히 어떤 생각이 든다기 보단, 감정이 든다. 만일 그분이 진정으로 변하시고 사과했다면 이런 감정이 남아있었을까. 좋은 지도자가 되셨다면 내게 아직도 이런 감정이 남았을까”라고 반문했다.
배구인, 그리고 체육인으로서 작금의 폭력 사태가 달가울 리 없다. 박철우는 “지금처럼 프로배구 관련 안 좋은 글만 올라오는 이런 상황이 너무 싫다. 하지만 이번에 뿌리 뽑혀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어 “내 첫째 아이도 이런 일이 있다는 걸 이제는 알고 있다. 숨지 않고, 강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는 말로 인터뷰를 마쳤다.
안산|최익래 기자 ing1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박철우는 18일 안산 상록수체육관에서 열린 ‘도드람 2020~2021 V리그’ 남자부 5라운드 OK금융그룹전을 마친 뒤 이상열 KB손해보험 감독을 향해 작심발언을 했다.
이 감독은 17일 최근 배구계 학교폭력에 대해 “난 (폭력) 경험자라 선수들에게 더 잘해주려고 노력 중이다. (중략) 어떤 일이든 대가가 있을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박철우는 2009년 국가대표팀 코치였던 이 감독에게 구타를 당했고 고소까지 진행한 피해자다. 이 기사를 보고 격분해 소셜미디어(SNS)에 “피가 거꾸로 솟는다”는 글까지 게재했다.
박철우는 “오늘 정말 이기고 싶었다. 이겨서 꼭 인터뷰실 오고 싶었다. 동료들에게 고맙다”며 입을 뗐다. 이어 작심발언을 꺼내놓기 시작했다.
“경기 전 그 기사를 보고 하루 종일 손이 떨렸다. 그분(이 감독)이 감독이 되셨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도, 경기장에서 마주칠 때도 정말 힘들었다. 그럼에도 참고 지내고 싶었는데 그런 기사를 보니까 아니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예견된 것처럼 이렇게 인터뷰할 수밖에 없지 않았나 싶다. 다만 순위 경쟁 중인 KB손해보험 선수들에게는 미안하다.”
용기의 이유가 이 감독의 사과 요구는 아니다. 오히려 “11년이 지났다. 사과 안 하셔도 된다. 굳이 보고 싶지도 않다. 개인적으로 원하는 것은 전혀 없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가 바라는 건 하나, 비정상의 정상화였다. 박철우는 “정말 반성하고 좋은 지도자가 되시기를 바랐다. 하지만 몇 년 전까지도 다른 선수들에게 ‘박철우만 아니었으면 넌 맞았다’고 말한다는 얘기, 주먹으로 못 때리니 모자로 때린다는 얘기가 들렸다”고 설명했다.
“지금 모든 프로스포츠 선수 중 안 맞고 하는 선수 거의 없을 것이다. 나 때만 해도 부모님 앞에서 맞으면서도 ‘운동선수는 이래야 돼’라고 넘기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그것도 정도가 있다. 이미 고등학교 때부터 유명했다. 0-2로 밀릴 때면 선수들은 얼굴이 붉어진 채 3세트 코트에 나왔다. 몇몇은 기절하고 몇몇은 고막이 나갔다. 그들이 내 동기고 친구다. 그게 과연 한번의 실수인가? 말이 안 되는 소리다. 사랑의 매도 어느 정도여야 한다. 누군가 그랬다. ‘맞을 짓을 했으니 맞았지’라고. 그럼 여태껏 맞은 선수들은 모두 맞을 짓을 한 것인가.” 박철우가 힘겹게 꺼낸 진심이다.
“흙탕물 위에 모래를 잘 덮었는데 누군가 와서 휘젓는 기분이다. 내가 뿌옇게 흐려지고 있다.” 이 감독의 발언을 비롯한 현 상황에 대한 박철우의 솔직한 심경이다. 코트에서 이 감독을 마주칠 때마다 쉽지 않을 것 같다고 이야기하자 “딱히 어떤 생각이 든다기 보단, 감정이 든다. 만일 그분이 진정으로 변하시고 사과했다면 이런 감정이 남아있었을까. 좋은 지도자가 되셨다면 내게 아직도 이런 감정이 남았을까”라고 반문했다.
배구인, 그리고 체육인으로서 작금의 폭력 사태가 달가울 리 없다. 박철우는 “지금처럼 프로배구 관련 안 좋은 글만 올라오는 이런 상황이 너무 싫다. 하지만 이번에 뿌리 뽑혀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어 “내 첫째 아이도 이런 일이 있다는 걸 이제는 알고 있다. 숨지 않고, 강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는 말로 인터뷰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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