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베이스볼] 뇌종양 투병…야구가 미웠던 NC 노시훈, 이젠 희망을 말한다

입력 2021-05-11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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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투병이 힘들겠지만 차라리 팔꿈치 인대접합수술(토미존 서저리) 등 야구선수에게 흔한 증세였다면 그처럼 괴롭진 않았을 것이다. 앞길이 창창했던 고등학교 2학년에게 닥친 뇌종양 진단은 청천벽력이었다. 그토록 사랑하던 야구가 미워졌다. 요리를 배우고 기타를 쳐보며 시선을 돌리려 애썼지만 눈길은 또 그라운드로 향했다. 돌고 돌아 다시 야구. 노시훈(23·NC 다이노스)은 그만큼 성숙하고 간절하다.

“NC, 리스크 있는 내게 손 뻗어준 팀”



노시훈은 9일 수원 KT 위즈와 더블헤더 제2경기, 1-8로 뒤진 6회말 마운드에 올라 2이닝 무실점을 기록했다. 승패가 기운 상황에서 이뤄진 등판이었지만 의미는 남달랐다. 2019년 신인드래프트 2차 10라운드로 입단한 그의 데뷔전이었기 때문이다.

기다림과 감격은 비례했다. 노시훈은 마산용마고 2학년 시절인 2016년 7월, 뇌종양으로 두 차례 수술대에 올랐다. 나이 불문 공포의 대상인 종양. 견뎌내기엔 쉽지 않은 나이였다. 노시훈은 “아직 짧은 인생이지만 가장 힘든 시기”라면서도 “이제는 덤덤하다”고 웃었다.

“진단을 받자마자 야구를 그만두고 싶다고 생각했다. 야구 때문에 아팠다는 느낌이 들었다. ‘운동 안 했으면 안 아팠을 텐데…’라고 생각하니까 야구가 미웠다. 양식조리사 자격증을 준비했고, 기타도 쳐봤다. 하지만 결국 다시 야구가 그리워졌다.”

두 차례 수술 후 1년간의 항암치료. 2017년 8월부터 요리와 기타 등을 배웠다. 뭐든 열심히 하는 스타일이라 그런지 제법 소질도 있었다. 그러나 마음이 다시 그라운드로 향했고 노시훈은 2018년 2월 다시 용마고 야구부에 합류했다. 노시훈은 “아픈 뒤 멘탈적으로 편해졌다. 성격이 완전히 달라졌다. 훨씬 성숙해진 것 같다”고 돌아봤다.

그런 그에게 NC가 손을 내밀었다. 항암치료를 막 마친 2017년 가을, 롯데 자이언츠와 준플레이오프 3차전 시구자로 그를 초대한 것. 그해 정규시즌 마지막 홈경기 직관을 갔던 노시훈의 사연을 듣고 구단이 제안하며 성사됐다. 이어 1년 뒤 지명의 영광까지. 노시훈은 “NC는 내게 너무 감사한 구단이다. 수술이라는 리스크가 있기 때문에 기대하기도 어려웠는데 손을 내밀어줬다”고 인사를 전했다.

“누군가에게 희망이 되고 싶어요”



노시훈의 1군 콜업은 데뷔 이틀 전인 7일이었다. 부산에 거주하는 부모님을 수원으로 초대했지만, 7일과 8일 더블헤더 제1경기가 미세먼지로 인해 취소됐다. 결국 부모님은 아들의 등판을 보지 못한 채 부산으로 돌아가야 했다. 하지만 중계로 지켜본 그의 아버지는 아들이 마운드에 선 자체로 행복했다고. 노시훈은 “부모님은 내가 안 아프고 다시 야구하는 것만으로도 기뻐하신다. 어린 나이에 큰 불효를 한 것 같다. 기다려주셔서 감사드린다. 이제 좋은 모습만 보여드리겠다”고 힘차게 다짐했다.

데뷔전 최고구속은 144㎞까지 나왔는데 퓨처스(2군)리그에선 149㎞까지 찍었다. 내추럴 커터에 가까웠던 속구에 움직임을 주는 법도 깨달았다. 스스로 위기상황에 쫄지 않는 배짱을 갖췄다고 할 정도니 긴장이 해소돼 구속상승이 동반된다면 필승조로도 충분하다. 단기간의 목표는 NC 마운드에 보탬이 되는 것이지만 노시훈에겐 이보다 더 큰 꿈이 있다.

“NC에 지명된 직후 SNS를 통해 축하 메시지를 많이 받았다. 그러던 중 광주에 사는 중학생 야구선수가 고민을 털어놨다. 나처럼 머리가 아픈 상황이었고, 어떻게 하면 좋을지를 물어왔다. 일면식도 없는 친구였지만 내가 겪은 모든 것을 설명해줬다. 이처럼 팬들이 나를 통해 힘든 상황에도 포기하지 않고 ‘할 수 있다’고 생각했으면 좋겠다. 나 역시 작은 일에 포기하곤 했던 사람이지만 하면 되더라.”

23세. 하지만 삶의 경험은 어느 베테랑과 견줘도 밀리지 않는다. 흉터는 남았지만 새 살이 돋은 자리는 더욱 단단해졌다. 인간승리 드라마는 스포츠가 선사할 수 있는 최고의 짜릿함이다. 노시훈은 팀 선배 원종현이 그랬듯 팬들의 눈시울을 붉힐 채비가 돼있다.

최익래 기자 ing1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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