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리그에 또 자매선수들이 대거 등장했다. 2022∼2023 여자 신인드래프트에서 지명된 페퍼저축은행 체웬랍당 어르헝, 나란히 인삼공사에 둥지를 틀게 된 박은지와 최효서, 도로공사 정소율(왼쪽부터)이 그 주인공이다. 이들이 언니 이상의 기량을 보여줄 수 있을지 주목된다. 스포츠동아DB
2004년 몽골 울란바토르에서 태어난 어르헝은 배구선수로 성공하기 위해 2019년 한국으로 왔고, 2021년 한국인 부모에게 입양됐다. KGC인삼공사 세터 염혜선(31)의 부모가 어르헝을 입양해 ‘염어르헝’으로 불린다. 염혜선은 2008~2009시즌 1라운드 1순위로 현대건설에 입단한 뒤 IBK기업은행을 거쳐 2019~2020시즌부터 인삼공사에서 뛰고 있다. 이제 둘은 자매 사이로 V리그 코트에 서게 된다. 다만 귀화를 추진 중인 어르헝이 시험에 합격해야만 가능하다. 어르헝은 “(염혜선) 언니와 같이 대표팀 경기를 뛰고 싶다”고 목표를 밝혔다.
박은지도 주목 받는 유망주다. 이번 드래프트에 지원한 세터들 중 최고라는 평가를 받는다. 올해 대통령배대회에서 팀을 우승으로 이끌며 세터상을 수상했고, 제21회 20세 이하(U-20) 아시아청소년선수권대회에도 출전했던 그는 페퍼저축은행 아웃사이드 히터(레프트) 박은서(19)의 친동생이다. 박은서는 2021~2022시즌 1라운드 2순위로 지명됐다. 이들의 어머니도 배구선수 출신이다. 과거 도로공사에서 뛰었고, 국가대표로도 활약했으며, 현재 KOVO 공식기록을 담당하는 어연순 심판위원이다. 박은지는 “언니는 너무 떨지 말라고 했고, 어머니는 믿는다고 말씀하셨다”며 가족의 응원을 소개했다.
최효서는 IBK기업은행 미들블로커 최정민(20)의 동생이고, 정소율은 인삼공사 정호영(21)의 동생이다.
한유미(왼쪽), 한송이 자매. 스포츠동아DB
V리그 자매 선수의 원조는 한유미(40·현 KBSN 해설위원)와 한송이(38·인삼공사)다. 원년인 2005시즌 한유미는 현대건설, 한송이는 도로공사를 통해 프로생활을 시작했다. 함께 태극마크를 달고 뛴 둘은 2012런던올림픽 4강의 주역이기도 하다. 한유미는 2018년 현역에서 물러났고, 한송이는 19시즌째를 앞두고 있다.
2005~2006시즌 1라운드 3순위 김수지(35·IBK기업은행)와 2006~2007시즌 1라운드 3순위 김재영(34)도 모두 현대건설에서 함께 뛴 자매다. 김재영은 은퇴한 반면 김수지는 흥국생명을 거쳐 IBK기업은행에서 활약하고 있는 18년차 베테랑이다. 지난해 2020도쿄올림픽 4강 신화를 쓴 뒤 김연경(흥국생명)과 함께 국가대표팀에서 은퇴했다.
한은지(35)~한수지(33)~한민지(25)~한주은(23) 4자매도 잘 알려져 있다. 모두 신인드래프트를 거쳤다. 한은지는 2005~2006시즌 1라운드 5순위로 KT&G(현 인삼공사)에 지명됐고, 한수지는 2006~2007시즌 전체 1순위로 GS칼텍스 유니폼을 입었다. 한민지는 2015~2016시즌 수련선수로 도로공사에 입단했고. 한주은은 2017~2018시즌 4라운드 3순위로 인삼공사의 선택을 받았다.
박정아(29·도로공사)-박정현(28)도 한 살 터울 자매다. 박정아는 2011~2012시즌 신생팀 우선지명으로 IBK기업은행 유니폼을 입었고, 박정현도 이듬해 4라운드 4순위로 같은 팀에 입단했다.
쌍둥이 자매는 이재영-이다영(이상 26)이 유일하다. 이재영은 2014~2015시즌 전체 1순위로 흥국생명, 이다영은 1라운드 2순위로 현대건설에 각각 지명됐다. 둘은 2019~2020시즌 종료 후 자유계약선수(FA) 자격을 얻었고, 이재영이 재계약한 흥국생명으로 이다영이 이적하면서 한 팀에서 뛰었다. 하지만 2020~2021시즌 도중 과거 학교폭력에 연루된 사실이 드러나면서 V리그를 떠났다.
아무리 피를 나눈 자매라도 코트 위에선 경쟁자일 뿐이다. 같은 팀이면 힘을 합치겠지만, 포지션이 같다면 선의의 경쟁을 벌여야 한다. 코트를 마주한 상대팀이라면 말할 것도 없다. 냉정한 승부의 세계에서 양보는 없다. 박은지는 “어렸을 때부터 언니한테 지는 걸 싫어했다. 지금도 똑같다. 언니랑 경기하면 꼭 이기겠다”고 당돌하게 말했는데, 그게 진정한 프로의 세계다.
최현길 기자 choihg2@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