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시지프스의 상징, 리디아 고와 신지애-AIG위민스오픈 관전기[윤영호의 ‘골프, 시선의 확장’]〈6〉

입력 2024-08-28 11:5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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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디아 고가 25일(현지시간) 영국 스코틀랜드 파이프의 세인트앤드루스 올드코스에서 열린 시즌 마지막 메이저 골프대회 AIG여자오픈 4라운드 18번 홀에서 두 번째 샷을 하고 있다. 리디아 고는 최종 합계 7언더파 281타의 성적으로 우승컵을 들어 올리며 우승상금 18억9000만원을 손에 쥐었다.  사진출처 ㅣ R&A

리디아 고가 25일(현지시간) 영국 스코틀랜드 파이프의 세인트앤드루스 올드코스에서 열린 시즌 마지막 메이저 골프대회 AIG여자오픈 4라운드 18번 홀에서 두 번째 샷을 하고 있다. 리디아 고는 최종 합계 7언더파 281타의 성적으로 우승컵을 들어 올리며 우승상금 18억9000만원을 손에 쥐었다. 사진출처 ㅣ R&A



“산 정상을 향한 분투 자체가 인간의 마음을 채우기에 충분하다. 우리는 시지프스가 행복하다고 상상해야 한다.”

세인트앤드루스 올드코스에서 치러진 AIG위민스오픈은 역사에 남을 명경기였다. 타이틀 방어에 나선 릴리아 부, 세계랭킹 1위 넬리 코르다, 현역 최다승(64승)자 신지애, 올림픽 챔피언 리디아 고가 마지막 순간까지 접전을 펼쳤다. 4명의 역대 세계랭킹 1위가 펼친 경기는 엎치락뒤치락하며 긴장감이 늦춰지지 않았다.

두 타 차 선두를 달리던 넬리 코르다는 14번 홀에서 더블보기를 범하고 “휴~”하는 한숨 소리와 함께 짧은 욕설을 뱉었는데, 그마저 골프의 소중한 일부로 보일 정도였다. 릴리아 부의 인내심이 묵직했고, 침착함이 빛났다. 리디아 고는 항상 발전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이번에는 퍼팅 시 양발 간격을 눈에 띄게 넓게 가져갔다. 바람이 강한 올드코스에서 퍼팅 안정감을 높이기 위한 것처럼 보였다. 퍼팅이 리디아 고에게 올드코스 챔피언이라는 영예를 안겨 주었다.

리디아 고와 신지애는 우승을 위해 분투하는 선수 같지 않게 시종일관 밝고 경쾌했다. 그들의 움직임 하나하나에는 골프의 행복과 기쁨이 담겨 있었다. 신지애는 퍼팅이 들어가지 않아도 웃었고, 원하는 샷이 나오지 않아도 미소를 잃지 않았다. 어느 골프 관계자는 “그녀의 얼굴에는 희생자라는 표정이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불운한 바운스, 벙커로 흘러가는 공, 홀컵을 살짝 지나는 퍼팅에도 그녀는 실망감을 표하는 법이 없었다.

그녀의 모습은 타이거 우즈가 최근에 보여준 모습과 대조를 이뤘다. 타이거 우즈의 플레이를 보면서 한순간도 골프의 기쁨을 느낄 수가 없었다. 육체적 고통과 함께 정신적 고통까지 담겨 있는 그의 샷을 볼 때마다 시지프스의 신화가 떠올랐다. 타이거라는 이름의 시지프스는 바위를 82번이나 산 정상으로 올리는 데 성공했지만, 그것은 지금에 와서 의미가 없는 것처럼 보였다. 공은 정상에 도달하자마자 다시 굴러 내리기 때문에 다음 대회에서는 바닥부터 새로 시작해야 한다. 이전에 성공했다는 사실이 정상을 향한 분투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런 타이거 우즈의 모습을 보며 안타까워할 필요가 없을지도 모른다. 그런 모습이 골프의 중요한 본질을 구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그러진 표정과 절뚝이는 다리로 정상까지 공을 굴려 올리는 것은 가능할 것처럼 보이지 않지만, 그의 동작과 표정에 신성함이 있다. 그의 분투는 알베르트 카뮈의 문장을 떠오르게 했다. ‘산꼭대기를 떠나 여러 신의 소굴을 향해 조금씩 깊숙이 내려오는 순간에 시지프스는 자신의 운명보다 더 우월하다.’
신지애가 24일(현지시간) 영국 스코틀랜드 파이프의 세인트앤드루스 올드코스에서 열린 시즌 마지막 메이저 골프대회 AIG여자오픈 3라운드에서 단독선두로 경기를 마무리하며 웃음을 짓고 있다.  AIG여자오픈 통산 3번째 우승에 바짝 다가섰던 신지애는 퍼트 난조로 최종합계 5언더파 283타를 써내며 공동 2위로 대회를 마쳤다. 사진출처 ㅣ R&A

신지애가 24일(현지시간) 영국 스코틀랜드 파이프의 세인트앤드루스 올드코스에서 열린 시즌 마지막 메이저 골프대회 AIG여자오픈 3라운드에서 단독선두로 경기를 마무리하며 웃음을 짓고 있다.  AIG여자오픈 통산 3번째 우승에 바짝 다가섰던 신지애는 퍼트 난조로 최종합계 5언더파 283타를 써내며 공동 2위로 대회를 마쳤다. 사진출처 ㅣ R&A


시지프스가 인간을 표상한다면, 시지프스는 하나가 아니다. 타이거 우즈가 한 극단에 선 시지프스라면, 반대편에 리디아 고와 신지애가 있다. 리디아 고도 행복한 골퍼지만, 신지애처럼 기쁨이 넘치는 골퍼를 본 적이 없다. 11번 홀에서 보기를 범하며 1위에서 2위로 내려왔을 때도 그녀는 밝은 표정이었다.

물론 신지애라고 해서 항상 웃고 행복한 것은 아니다. 17번 홀에서 세번째 샷을 준비하던 그녀에게 이전과 다른 모습이 보였다. 공은 그린 오른쪽 깊은 러프에 있었고, 스탠스도 편하지 않았고, 핀 포지션도 쉽지 않았다. 이미 선두로 경기를 마친 리디아 고와 두 타 차였기 때문에 세 번째 샷이 홀컵에 들어가지 않으면 그녀의 우승 경쟁이 사실상 끝나는 상황이었다.

핀을 응시하던 그녀는 가능하지 않은 일을 시도하는 시지프스와 같은 표정을 잠시나마 지었다. 17번 홀에서 보기를 기록한 신지애는 선두와 세 타 차로 벌어졌다. 그러나 그녀는 금세 밝은 모습으로 돌아왔고, 경쾌한 발걸음으로 스윌칸 브리지를 건넜다. 18번 홀에서 쉽지 않은 버디퍼팅을 성공한 그녀는 한 손을 높이 치켜세우며 환호했다. 마지막 홀에서 버디에 성공하고 주먹을 불끈 쥔 리디아 고의 모습만큼 보기에 좋았다.

신지애의 마지막 두 홀은 서두에 인용한 알베르트 카뮈의 ‘시지프스 신화’에 나오는 마지막 두 문장과 같았다.  

윤영호 골프칼럼니스트

윤영호 ㅣ 서울대 외교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증권·보험·자산운용사에서 펀드매니저로 일했다. 2018년부터 런던에 살면서 글을 쓰고 있다. 저서로 ‘옵션투자바이블’ ‘유라시아 골든 허브’ ‘그러니까 영국’ ‘우리는 침묵할 수 없다’ 등이 있다. 런던골프클럽의 멤버이며, ‘주간조선’ 등에 골프 칼럼을 연재했다. 현재 골프에 관한 책을 집필 중이다.



연제호 기자 sol@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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