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 인터뷰] 진정성 있는 접근으로 당선 이변 일으킨 유승민 신임 대한체육회장, “살아숨쉬는 역동적 체육회 만들 것…4년 뒤가 아닌 오늘과 내일에 집중해야”

입력 2025-01-23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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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민 신임 대한체육장이 20일 서울 서초구 선거캠프 집무실에서 스포츠동아와 인터뷰했다. 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유승민 신임 대한체육장이 20일 서울 서초구 선거캠프 집무실에서 스포츠동아와 인터뷰했다. 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유난히 치열했던 선거기간 내내 여유가 없었는데, 당선 후에도 쉴 틈이 없다. 유승민 신임 대한체육회장(43)은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유 회장은 14일 치러진 제42대 대한체육회장 선거에서 유효표 1209표 중 417표를 얻어 3연임에 도전한 이기흥 전 회장(379표)을 누르고 ‘체육대통령’에 당선됐다. 문화체육관광부의 인준을 받고 다음 달 28일 대한체육회 총회를 거쳐야 4년 임기가 시작되지만, 이미 수많은 과제를 받아든 그는 부지런히 발품을 팔고 있다.

‘이기흥 회장 체제’를 거치며 깊어진 체육회와 문체부 사이 갈등의 골을 메우기 위해 당선 직후 문체부 유인촌 장관과 장미란 차관을 만난 유 회장은 17일 탁구국가대표 1차 선발전이 열린 충북 제천을 찾았고, 18일 경남 함안에서 진행 중인 여자축구 스토브리그 현장도 방문했다. 이어 20일에는 경기도 용인 소재 고 조양호 전 한진그룹 회장의 묘소를 찾았고, 21일에는 서울 송파구 올림픽파크텔에서 개최된 ‘2024 대한민국 스포츠영웅 헌액식’에 참석해 하형주 국민체육진흥공단 이사장의 헌액을 축하했다.

‘체육회장’ 자격으로 이뤄진 스포츠동아와 인터뷰는 대한탁구협회를 12년간 이끌며 2018평창동계올림픽 유치에 기여하고 유 회장의 오랜 멘토였던 고 조 회장의 묘소를 다녀온 직후 진행됐다. 서울 서초구의 선거캠프 집무실에서 만난 그는 조금 피곤해 보였으나, 목소리는 크고 또렷했다.

“체육이 가진 높은 가치와 다양한 콘텐츠를 인정받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속에서 내 역할이 무엇일지에 대한 치열한 고민도 있었다”고 밝힌 유 회장은 “그간의 다양한 경험이 체육 발전에 기여할 부분이 있다고 확신했다. 거창한 목표는 없다. 오늘과 내일에 집중한다. 늘 살아 숨 쉬는 체육회를 만들 것”이라고 약속했다.

-무엇이 회장직 도전으로 이끌었나.
“지난해 초부터 정부와 체육회의 관계가 심상치 않다고 느꼈다. 특히 2024파리올림픽 직후 삐걱거리는 모습을 보며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탁구대표팀 지도자, 탁구협회장,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선수위원의 경험이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봤다.”

-대한체육회장은 특정 종목이 아닌 모든 체육을 관장하는데.
“물론 규모부터 다르다. 체육회는 국가기구다. 다만 전혀 낯선 분야가 아닌 스포츠다. IOC 위원을 하면서 아시아올림픽평의회(OCA)에서 활동하는 등 다양한 해외기관과 일했다. 게다가 탁구협회장으로서 지도자, 선수, 동호인 등 다양한 세대, 구성원과 함께했다. 열심히 또 겸손히 매 순간 최선을 다하겠다.”



선거운동 과정에서 가장 눈에 띈 대목은 체육회 산하 68종목 체험이었다. 지난해 9월 출마를 공식화한 유 회장은 패러글라이딩, 수상스키 등 환경적 제약이 따른 일부를 제외한 거의 모든 종목을 직접 체험했다. 택견, 태권도 등 전통무술과 배드민턴, 테니스 등 라켓 종목, 심지어 승마와 바이애슬론까지 하며 현장의 목소리를 들었다.

-종목 체험은 어떤 의도로 했는지.
“다른 후보들과 조금은 차별을 두고 싶었다. 강점인 ‘현장 냄새’를 많이 풍기고 싶었다. 쉽진 않더라. 총기간은 3개월이었지만, 사실은 11월 초부터 12월까지 한 달 새 기획, 장소 섭외, 체험까지 대부분을 소화했다. 오전 6시부터 체험한 적도 있고, 하루 20여 종목을 거친 날도 있었다. 대중의 관심과 조금은 떨어진 소외 종목 관계자들이 특히 좋아해주셨다. 진심 어린 소통이 내 전략이었다.”

-현장에서 무엇을 느꼈나.
“스켈레톤이 정말 무섭더라. 빙판을 바라보며 미끄러지는 기분이란…. 각 종목의 고충을 접할 수 있었다. 가령 사이클의 국제 기준 트랙은 250m인데, 우리나라에 이 규격은 진천선수촌뿐이다. 대부분이 330m라더라. 경기력에 엄청난 지장을 줄 수밖에 없다. 컬링은 얼음을 만드는 시설장비가 부족했고, 볼링은 아시안게임 종목에서 빠져있다. 클라이밍과 산악으로 구분된 산악연맹은 명칭과 기준에 대한 각각의 니즈가 뚜렷했다. 현장을 가봤기에 모두 알게 된 내용들이다.”

유승민 신임 대한체육회장이 20일 서울 서초구 선거캠프 집무실에서 취임 구상을 밝히고 있다. 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유승민 신임 대한체육회장이 20일 서울 서초구 선거캠프 집무실에서 취임 구상을 밝히고 있다. 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선거운동 과정에서 유 회장의 노력은 ‘체험’에만 그치지 않았다. 수많은 선거인단에게 직접 영상 메시지를 보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다만 모두가 대상은 아니었다. 2244명의 선거인단 중 지도자, 선수들에게 집중했다. 유 회장은 “여기서 30표를 만드는 것을 목표했다. 1대1 영상과 종목 체험이 어느 정도 표심을 움직였다고 자부한다”고 설명했다.

-선거캠프에선 영상 제작이 정말 고된 작업이었다고 하더라.
“맞다. 1000여 명으로 대상을 정리했다. 모두의 이름을 일일이 스크린에 띄워 지지를 호소했다. 영상 촬영만 10시간에 달했고, 메시지를 보내는 데만 이틀이 걸렸다. 신년 인사 영상 제작도 만만치 않았다. 캠프 집무실에 매트를 깔고 큰절을 올리는 영상을 300여건 이상 촬영했다. 선거는 표를 얻어야 이기지만 핵심은 진정성이다. 종목 체험과 영상 인사를 통해 내 진심을 조금이나마 전하고 싶었다.”

-외부에선 당선 가능성을 높이 보진 않았다.
“어릴 적, ‘탁구천재’나 ‘탁구신동’이라는 말을 정말 많이 들었다. 그런데 난 중국 앞에선 일개 도전자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아테네올림픽에서 모두가 기대하지 못한 것을 이뤘다. 한번 해보자는 의지가 생겼다. 독기를 품었다고 할까? 대신 부담은 내려놓았다. 낙선에 대한 걱정이나 부담은 많지 않았다. 스포츠의 매력은 뒤집기 아닌가. 선거가 그랬다.”

-IOC 선거위원과도 많이 다르지 않나.
“비슷할 듯하면서도 정말 다르다. 체육회장 선거는 지지자들이 확실히 나뉘어 있음이 느껴졌다. 국가, 대륙, 성별, 종목 등의 구분은 있더라도 IOC 선수위원은 철저히 개인적 접근이 우선이다. 반면 체육회장 선거는 판세 구분이 어려웠을 뿐 아니라 전임 (이기흥) 회장의 공적도 있고 고려사항이 많았다.”

-지금 이 순간의 감정은 어떤가.
“선거 당일에는 담담했다. 현장 분위기를 지켜보니 확실히 우리 캠프의 조직력이 다른 후보들에 비해 밀린다는 인상을 받긴 했다. 투표율은 60% 정도를 기대했는데, 생각보다 숫자가 많지 않았다. 투표율이 높다는 것은 현장 체육인들이 많다는 건데, 고정 지지층이 많지 않은 입장에선 조금은 걱정스러운 구도였다. 오히려 당선 발표가 나온 뒤 걱정이 심해졌다. 인준받고, 체육회 첫 회의까지 많이 떨릴 것 같다. 하지만 탁구도 경기장에서 짧게 몸을 풀고 첫 포인트까지가 가장 긴장된다. 선취점을 얻든, 내주든 그 후에는 괜찮아지는 법이다.”

유 회장의 주요 공약은 ▲지방체육회 및 종목단체 자립성 확보와 동반성장 ▲선수~지도자 연계 시스템 구축 ▲학교체육 활성화 ▲생활체육 전문화를 통한 선진 스포츠 인프라 ▲글로벌 정책 ▲대한체육회 수익 플랫폼 구축과 자생력 향상 등이다. 그중 1순위가 지방체육회 및 학교체육이다.

-선거 공약의 우선순위가 있는지.
“지방체육회와 학교체육이다. 내 임기는 4년인데, 지역 체육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지자체장 임기에 따라가다 보니 2년밖에 남지 않았다. 그간 발생한 제도적 문제들을 전부 해결할 수 없지만, 최소한의 틀은 마련해야 한다. 학교체육도 심각하다. 최소한의 팀 구성이 안 되는 종목도 있고, 모 종목은 예산이 부족해 대회를 진행할 수 없다는 민원도 있다. 국가보조금 문제도 돌려놓아야 하고, 체육회 자체 예산 확보를 위한 방안도 고민해야 한다. 또 수익과 재분배 구조도 구축해야 한다. 할 일이 참 많다.”

-유승민은 어떤 회장이 되고 싶은가. 어떤 체육회를 목표하나.
“‘자신을 내려놓는’ 회장이 되려 한다. ‘체육회장’이라고 유승민이 변한 것은 없다. 리더로 단단한 모습도 필요하나, 자존심을 내려놓을 수도 있어야 한다. 체육회는 확실히 활발해질 것이다. 역동적이어야 하고, 살아 숨 쉬어야 한다. 분위기 쇄신, 성과주의가 우선이다. 오늘과 바로 내일에 집중하겠다. 4년을 보는 거창한 마스터플랜보다 지금이 중요하다. 체육이 행복함을 줄 수 있는 조직을 만들려 한다.”


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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