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샌디에이고 외야수 잭슨 메릴은 스포츠 카드에 쓴 친필 사인이 저마다 달라 수집가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다. 샌디에이고(미 캘리포니아주)|AP뉴시스
“카드 수집가들 중에는 저한테 화난 사람이 엄청 많아요.”
스포츠 카드 문화가 발달한 미국에선 선수들의 친필 사인이 담긴 카드가 수집가들의 소장 욕구를 자극하곤 한다.
손에 넣을 확률이 매우 낮은 한정판이라면 천문학적 금액에 거래될 정도로 가치가 올라간다.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의 외야수 잭슨 메릴(22)도 유명 스포츠 카드 제작사인 톱스(Topps)의 ‘원 오브 원’(1 of 1·단 하나뿐인 한정판) 카드에는 시간을 들여 정성스러운 친필 사인을 적어 넣는다.
지난해 메이저리그(MLB)에 데뷔한 메릴은 첫해 156경기에서 타율 0.292, 24홈런, 90타점, 16도루, OPS(출루율+장타율) 0.826의 활약을 펼치며 수집가들의 관심을 끄는 선수로 발돋움했다.
그런데 인기가 높아지자, 수집가들 사이에선 메릴을 둘러싼 흥미로운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그의 사인이 할 때마다 달라지는 바람에 ‘일관적이지 않다’는 불만이 쏟아졌다.
디애슬레틱은 2일(한국시간) “수집가들의 예리한 관찰로 메릴의 사인이 저마다 다르게 생겼다는 사실이 밝혀졌다”며 “메릴의 친필 사인이 된 카드를 보면 알파벳 ‘J’만 휘갈겨 쓴 게 있기도 하고, 다른 카드에는 글자와 장식에 등번호(3)까지 적혀 있을 정도로 차이가 극단적”이라고 전했다.
이에 메릴은 “카드 회사에서 3000장씩 담긴 박스를 보낸다. 다 쓰려면 너무 오래 걸린다. 처음에는 ‘J’만 쓰다 점점 발전했는데, 솔직히 말해 빨리 끝내고 싶지 않겠는가”라고 말했다.

미국의 한 팬이 샌디에이고 외야수 잭슨 메릴의 각기 다른 사인을 SNS에 공유했다. ‘중고거래 사이트에서 8개의 서로 다른 사인을 찾는 데 2분밖에 걸리지 않았다’는 내용이다. 사진출처|엑스(X·옛 트위터) 캡처
메릴이 빅리그에 입성한 뒤 처음 출시된 카드 중에는 자기가 아닌 전혀 다른 인물의 사진이 잘못 인쇄돼 있기도 했다.
메릴은 “그런 카드에는 이제 사인도 하지 않는다”고 농담했다.
한때 메릴은 사인과 관련된 안 좋은 소문의 중심에 선 적도 있다.
‘마이너리그 시절 메릴이 제조사로부터 사인 요청을 받고 난 뒤, 한 아파트 단지의 쓰레기장에서 그가 사인하지 않은 카드가 발견됐다’는 이야기였다.
이에 메릴은 “돈이 될 정도로 가치가 있는 카드를 버릴 이유가 있겠느냐. 말도 안 된다. 카드에 대한 여러 일들로 수집가들 중에는 내게 화난 사람이 엄청 많다”며 펄쩍 뛰었다.

샌디에이고 외야수 잭슨 메릴(오른쪽)이 스프링 트레이닝 도중 자신을 찾아온 어린이 팬과 사진을 찍고 있다. 생일을 맞은 어린이 팬이 ‘컵케이크와 배트를 교환하지 않겠느냐’고 하자, 메릴은 자신의 배트를 기꺼이 내줬다. 사진출처|샌디에이고 파드리스 인스타그램
디애슬레틱은 “메릴이 사인 자체를 귀찮아하는 게 아니다. 어린이 팬들이나 야구장에 직접 방문해 사인을 요청하는 사람들에게는 성의껏 사인을 해준다”며 “평소 메릴은 야구장에도 가장 먼저 출근하는 선수인데, 훈련을 마친 뒤에는 팬들과 소통하는 시간도 따로 가진다. 스프링 트레이닝 중에는 팬들의 사인 요청에 마지막까지 훈련장을 떠나지 않은 적도 있다”고 밝혔다.
메릴에게는 수집가들을 달랠 일만 남았다.
메릴은 사인을 하나로 통일할 생각도 갖고 있다.
그는 “요즘 새로 만든 사인이 하나 있다. 이전의 스타일들을 적당히 섞은 형태의 사인이다. 내 이름의 철자 중 하나인 ‘J’와 ‘M’이 들어가고, 등번호도 넣었다. 간단하긴 해도 성의 없어 보이지도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올 시즌에는 화제를 모은 사인만큼이나 메릴을 향한 관심도 더욱 커질 분위기다.
메릴은 6경기에서 타율 0.400(20타수 8안타), 1홈런, 6타점, OPS 1.035로 맹활약하며 팀의 6연승에 기여했다.
디애슬레틱은 “시즌이 시작한 지 얼마 안 됐지만, 적어도 야구장에선 ‘가장 가치 있는 메릴’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전했다.
김현세 기자 kkachi@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