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프로야구 LG트윈스 대 SK와이번스 경기중 12회초 LG 우규민이 고의성 데드볼을 던져 퇴장당하고 있다. 잠실 | 김종원기자 won@donga.com
“잠수함투수파워한계…살얼음승부부담”
올 시즌 프로야구 마무리 투수들이 수난시대를 맞고 있다. 대부분의 구단이 불안한 소방수로 인해 골머리를 앓고 있다. 두산의 새 소방수 이용찬 정도만 안정적인 마무리 솜씨를 보일 뿐이다. 삼성 오승환도 8일까지 14세이브로 이용찬과 세이브 부문 공동 1위에 올라있지만 방어율이 무려 4.24나 될 정도로 과거와 같은 압도적인 피칭을 하지 못하고 있다.또 올해는 유난히 사이드암이나 언더핸드 유형의 투수가 마무리 보직을 많이 맞고 있다.
기존 멤버인 SK 정대현, 그리고 LG는 최근 집단 마무리체제를 선언했지만 시즌 초반부터 우규민을 줄곧 소방수로 기용했다. KIA는 새롭게 유동훈을 클로저로 발탁한 상태다. 8개 팀 중 3개 팀이 일명 잠수함으로 불리는 언더핸드나 사이드암 투수에게 뒷문을 맡기고 있다.
그러면서 ‘과연 잠수함 투수가 소방수로 적합한가’라는 얘기가 화두로 등장하고 있다. 프로야구 현장 감독과 전문가들은 이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잠수함 마무리 성공 왜 힘든가
소방수 첫번째 조건은 삼진 뺏는 파워피칭
잠수함 투수 힘 떨어져 바가지안타 가능성
좌타자에 약점…부상잦고 선수생명도 짧아
○마무리 투수의 첫째 덕목은 탈삼진 능력
마무리 투수는 기본적으로 타자를 압도할 수 있는 공을 갖추어야 한다는 데 이견이 없다. 선발투수는 6이닝 3자책점만 기록해도 퀄리티스타트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마무리투수에게 실점은 곧바로 실패를 의미한다.
이효봉 야구해설위원은 “마무리 투수는 첫째 힘으로 타자를 누를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타자가 위축되지 않는다. 위기상황에서 등판하기 때문에 삼진을 잡는 능력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프로야구 현장 감독들도 같은 의견이다.
히어로즈 김시진 감독은 “마무리 투수를 정할 때 가장 우선적으로 정통파 스타일의 투수를 찾을 수밖에 없다. 팀내 투수 중 그런 유형의 투수가 없다면 물론 대안을 찾아야겠지만 가능하면 정통파 투수가 이상적이다”고 밝혔다.
○소방수로서 잠수함 투수의 위험성
앞서 언급했듯 잠수함 투수는 타자를 대부분 압도하기 어렵다. 임창용이나 과거 전성기의 김병현은 특별한 사례다. 김시진 감독은 “원하는 코스에 10개 중 7개만 던져도 컨트롤 면에서 특A급 투수라고 할 수 있다. 그래도 10개 중 3개는 실투가 나온다는 뜻이다. 공에 힘이 있다면 실투도 파울이나 파울플라이 등 범타가 될 수 있지만 힘과 스피드가 떨어지면 실투가 장타로 연결된다. 그런 면에서 잠수함 소방수는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고 말했다.
1점차 리드에서 1사 주자 3루의 위기라면 특히 삼진을 뽑아낼 수 있어야 한다. 잠수함 투수의 공은 일단 방망이에 맞을 확률이 높다. 땅볼로 유도한다는 것은 수비실책이라는 변수가 개입될 수 있고, 빗맞더라도 ‘바가지 안타’로 돌변할 가능성이 있다.
삼성 선동열 감독은 “최근 좌타자의 증가추세로 인해 잠수함 투수가 더욱 살아가기 힘든 상황으로 몰리고 있다. 대타감도 많아졌다. 물론 좌타자를 잘 처리하는 잠수함 투수도 있지만 보편적으로는 좌타자에 약하다”고 진단했다.
○잠수함 투수 실패사례와 짧은 선수생명
갈수록 잠수함 투수는 줄어들고 있다. 메이저리그와 일본뿐만 아니라 국내도 마찬가지다. 최근 3년의 변화만 보더라도 그렇다. 2007년에는 프로에 등록된 투수가 총 257명이었는데 그 중 잠수함은 31명으로 12.1%%의 분포를 보였다. 지난해는 이 수치가 11%%(255명 중 28명)로 낮아졌고, 올해는 9.7%%(236명 중 23명)로 떨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8개 팀 중 3개 팀의 소방수가 잠수함이다. LG는 최근 우규민 1인 마무리체제를 포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롯데도 지난해 초반까지 사이드암 임경완을 마무리로 썼지만 실패가 잦아지면서 후반기에 외국인 투수 코르테스를 영입했고, 올해는 애킨스를 데려왔다.
잠수함 투수는 또한 수명이 짧은 한계가 있다. 김시진 감독은 “아무래도 잠수함은 상체를 아래로 떨어뜨려 던져 몸에 충격이 올 수밖에 없다. 오버핸드는 체중이동이 자연스럽지만 잠수함은 체중을 낮게 이용하고, 허리와 무릎을 많이 사용하기 때문에 몸에 과부하가 많이 걸린다. 조웅천처럼 몸이 유연하고 부드러워도 잠수함 투수는 보통 부상이 잦다”고 말했다.
역대로 살펴봐도 잠수함 투수의 수명은 짧은 편이다. 선발투수 중에서도 1989년부터 2005년까지 17년간 장수한 이강철은 특별한 케이스다. 한희민은 8년(1986-1993년), 박충식은 10년(1993-2002년)간 활약했지만 전성기는 길지 않았다. 문병권도 1990년 10승을 올렸지만 1988-1993년 6년간 활동했다.
중간계투나 마무리로 오랫동안 선수생명을 이어가는 투수는 더욱 드물다. 권오준, 박준수 등은 수술대에 올랐고, 정대현 역시 지난해부터 무릎통증으로 고전하고 있다.
역대 50세이브 이상 투수는 총 28명인데 잠수함은 임창용(168세이브) 조웅천(98세이브) 우규민(64세이브) 이강철(53세이브) 등 4명에 불과하다. 이강철은 불펜투수라기보다는 선발로 주로 활약했다.
잠수함 마무리 성공하려면
임창용·김병현의 타자압도 광속구 보유
기교파는 컨트롤과 떨어지는 싱커 필요
위기에도 흔들리지 않는 강심장은 기본
○잠수함 마무리 투수의 성공조건
잠수함 투수 중에도 마무리 투수로 성공한 사례는 물론 있다. 메이저리그에서는 통산 390세이브로 역대 5위에 올라있는 데니스 에커슬리가 대표적이다. 1975년부터 1986년까지 12년간 선발투수로 활약한 뒤 강속구를 잃은 1986년부터 소방수로 전환해 특유의 백도어 슬라이더로 메이저리그 세이브 역사에 변혁을 일으켰다.
1980년대 명 마무리투수 댄 퀴즌베리 역시 삼진을 잡아낼 구위가 되지 않았지만 기막힌 컨트롤로 통산 244세이브를 거뒀다. 2000년대 초반 김병현도 특급 마무리로 활약했다.
지난해 일본프로야구로 진출한 뒤 부활한 임창용은 올해 일본 최고의 마무리투수로 꼽히고 있다. 또 지난해 한국무대에도 선을 보인 다카쓰 신고는 미·일통산 313세이브를 올렸다.
한화 이상군 투수코치는 “임창용처럼 빠른 공으로 타자를 압도할 수 있다면 예외적이다”고 설명했다. 선동열 감독은 “정대현처럼 잠수함 마무리투수는 컨트롤이 정교하거나 확실히 떨어지는 공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다카쓰도 싱커를 잘 던졌다. 시속 90km대 커브도 있어 완급조절 능력이 빼어났다”고 말했다.
김시진 감독은 “일반적으로 사이드암과 언더핸드 중에 마무리를 고른다면 그래도 언더핸드가 나은 편이다.
김병현도 처음에는 언더에 가까웠다. 지면에서 위로 떠오르는 업슛으로 삼진을 잡아냈다. 신체 구조상 싱커도 언더핸드 투수가 던지기 유리하다. 사이드암은 서클체인지업이 언더핸드에 비해 자연스럽고, 옆으로 휘는 볼이 있지만 언더핸드처럼 떠오르는 공을 던지기 어렵다”고 비교했다.
정통파든 소방수든 마무리 투수에게 빼놓을 수 없는 공통조건은 마인드. 실패하는 상황을 머리에 그리는 투수는 절대 마무리로 성공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또 실패하더라도 바로 털어버릴 수 심장을 갖춰야 살아남을 수 있다. 오승환이 올 시즌 4점대 방어율로 구위가 예전만 못하지만 그래도 세이브 1위를 달리는 이유다.
이재국 기자 keystone@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