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현진.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류현진(33·토론토 블루제이스)의 가장 큰 장점은 칼날 같은 제구다. 스트라이크존에서 공 반 개 정도를 자유자재로 빼며 타자들을 현혹하는 능력은 메이저리그(ML)에서도 정상급으로 꼽혔다. “홈런보다 볼넷이 더 싫다”는 말에는 제구에 대한 자신감과 볼넷에 대한 철학이 함께 담겨있다.
기록상으로 봤을 때 지난해까지와는 다른 투수가 됐다. 류현진은 12일(한국시간) 미국 뉴욕주 버펄로 살렌필드에서 열린 마이애미 말린스전에 선발등판해 6이닝 2안타 1실점으로 토론토 이적 후 첫 퀄리티스타트(QS·선발 6이닝 이상 3자책 이하 투구)를 작성했다. 하지만 볼넷 2개는 옥에 티였다. 시즌 4경기에서 20이닝을 소화하며 벌써 9개째 볼넷. 9이닝당 4.05볼넷이다.
1경기 등판이 전부였던 2016년 기록을 제외하면 지난해까지 류현진의 단일시즌 9이닝당 볼넷 최다기록은 2017년의 3.2개였다. 이보다 1.3개 가까이 많아진 셈이다. 특히 내셔널리그 사이영상 투표 2위에 올랐던 지난해에는 9이닝당 1.2개의 볼넷만 내줬다. ML 전체 최소 1위였으며, 올해에 비해선 3분의 1 아래다. 지난해 류현진의 시즌 9호 볼넷은 17번째 등판이었던 7월 5일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전이었다.
반대로 삼진도 눈에 띄게 늘었다. 12일 경기에서도 7개의 삼진을 솎아냈다. 이날 탈삼진의 결정구는 포심패스트볼(3개)과 커터(2개) 등 속구 계열이 주를 이뤘다. 경기 초반에는 타이밍 싸움에서 이겨 파울팁 삼진이 많았는데, 5회부터 6회까지 커터와 포심패스트볼만으로 루킹 삼진 3개를 뽑아낸 것은 이날 등판의 백미였다. 속구 구속이 상승해 몸 상태에 자신감이 있었다는 증거다.
류현진은 올 시즌 20이닝 동안 24개의 삼진을 빼앗았다. 9이닝당 10.8개로, 아메리칸리그 전체 5위다. 지난해까지 류현진의 단일시즌 9이닝당 탈삼진 최다기록은 2018년의 9.7개였는데 이보다 1개 이상 올랐다.
삼진과 볼넷은 단기간에 극적인 변화가 나타나지 않는 지표다. 물론 아직 4경기밖에 치르지 않았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여파로 류현진은 물론 상대 타자들의 컨디션도 변수투성이다. 하지만 류현진이 구위로 상대 타자들을 압도해 삼진으로 돌려세우는 장면이 자주 나왔다는 것은, 장점인 제구가 돌아온다면 완벽한 ‘몬스터 모드’를 가동할 수 있다는 기대를 품게 한다. 류현진도 12일 경기 후 “체인지업 제구가 잘 안 됐다”고 반성한 뒤 다음 등판에서 더 나은 제구를 다짐했다. 올해 류현진이 보여주고 있는 변화가 유독 흥미로운 이유다.
최익래 기자 ing1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