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닥 친’ 장하나, “다시 정상에 설 그날을 위해” [인터뷰]

입력 2023-06-01 10: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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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나. 사진제공 | KLPGA

- 지난해부터 19개 대회 연속 본선 진출 실패
- 올 시즌 상금, 평균타수, 그린적중률 등 최하위
- 스윙폼 교체가 패착, 그래도 이젠 바닥 친 느낌
- ‘네 자신을 믿지 못하면 너를 믿어주는 주변 사람들을 믿어라’는 말 새기며 재도약 준비
- “다시 정상에 서 웃으면서 인터뷰 할 것”
올해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9개 대회에 나서 모두 컷 통과에 실패했다(매치플레이 대회 조별리그 탈락 포함). 지난 시즌 후반 10개 대회까지 더하면 19개 대회 연속 예선 탈락이다.

당연히 리더보드 상단에서 이름이 사라진지 오래. 반면 각종 지표에선 맨 아래에 있다. 2023시즌 상금 319만5000원으로 기준을 충족한 115명 중 115위, 평균타수 80.9167타로 122명 중 122위다. 드라이버 평균비거리(205.58야드), 그린적중률(27.78%)도 최하위. 페어웨이 안착률(43.57%)은 121위다.

KLPGA 투어 15승,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5승으로 개인통산 20승을 올린 베테랑 장하나의 성적이라곤 믿기 어려울 정도다.

1992년 5월생으로 만 31살. 2004년 타이거 우즈가 내한했을 때 당시 초등학생이던 장하나는 250야드에 가까운 장타를 날려 골프황제로부터 극찬을 받았다. 2010년 프로가 된 뒤 이듬해 KLPGA 투어에 데뷔해 2013년 3승을 거두며 이름을 떨쳤다. LPGA 투어에서 5승을 수확하고 2017년 국내에 복귀해서도 늘 정상에 있었다. 2021년 2승을 챙기며 상금과 대상 3위에 올랐다. 그러나 지난해부터 성적이 눈에 띄게 나빠졌다. 26개 대회에서 컷 통과는 9개뿐이었다. 그리고 올해 더 깊은 나락으로 떨어졌다.

‘KLPGA 통산 상금 1위(57억6500만 원)’ 장하나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있는 것일까.
장하나와 1일 전화 인터뷰를 가졌다. 평소처럼 씩씩했지만, “힘들다”고 솔직히 고백할 땐 진한 아쉬움도 묻어났다.

웃으며 건넨 첫 말은 “열심히 살고 있다. 그래도 골프가 이제 좀 된다”였다. “지난해에는 거리가 나도 드라이버 OB가 많이 났다. 요즘은 OB가 안 나니 조금 편안해졌다”고 했다.

2년 전 ‘다치지 않고 더 오래 선수생활을 하겠다’는 생각으로 스윙 폼을 바꿨다. “돌이켜보면 그게 욕심이었던 것 같다. 더 많은 발전을 위해 20년 가까이 쓴 스윙폼을 교정했는데, 오히려 더 힘든 시간이 된 것 같다. 이제 다시 옛날 폼으로 돌아왔다”고 했다. 스윙폼을 되찾기 위해 프로 초창기 인연을 맺었던 김창민 스윙코치를 다시 만난 것도 그래서다.

올 시즌 최하위권에 처진 각종 지표를 언급하자 “많은 분들이 모르시겠지만, 사실 2010년 프로에 데뷔하고 2012년 첫 승을 거두기 전까지 드라이버 입스가 와서 엄청 고생을 한 적이 있다”며 “그때도 지금만큼 힘들었던 것 같다. 차이가 있다면 그때는 이뤄놓은 게 하나도 없을 때였지만, 지금은 이뤄놓은 게 많고 정상에 있다 내려와서 그런지 잃은 게 많게 느껴진다는 점”이라고 했다. “지금이 그래도 최악의 슬럼프는 아닌 것 같다”고도 했다.

장하나. 사진제공 | KLPGA


13년간 함께 했던 메인후원사가 지난해 말 여자골프단을 해체하자 아직 후원사를 찾지 못하고 있다. 대신 의류협찬사 레인메이커의 로고가 적힌 모자를 쓰고 대회에 나선다. “올해로 투어 14년 차인데 메인스폰서 없이 시즌을 치르는 건 처음”이라며 “올 첫 대회(4월 롯데렌터카 여자오픈) 때 티 박스에 올라갔는데 많은 생각이 들었다. 나도 모르게 신경이 쓰였는지 위경련이 찾아올 정도였다. 그런 심리적 위축도 스코어로 연결된 것 같다”고 담담히 말했다. “그래도 레인메이커를 비롯해 KCC오토그룹, 코리아결제시스템, 에버그린금융 등 성적도 좋지 않은 나를 도와주시는 후원사 덕분에 다시 마음을 추스를 수 있었다.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했다.

2021년 우승했던 롯데 오픈이 1일 인천 베어즈베스트 청라 골프클럽에서 개막했지만 출전하지 않았다. “지난주 (E1 채리티 오픈 때) 빗속에서 치다 경사 심한데서 미끄러져 조금 부상을 입어 기권했다. ‘경기 중 부상’ 소견이 담긴 진단서도 제출했다. 9개 대회를 계속 치르면서 체력적으로 지쳐있기도 해 이번 대회는 불참하기로 했다”며 “다음 주 셀트리온 퀸즈 마스터즈부터는 다시 출전한다”고 설명했다.

부상 얘기가 나온 김에 고질병이 된 팔목, 발목 통증이 어떠냐고 묻자 “몸이 안 좋아 성적이 좋지 않다는 핑계는 대고 싶지 않다. 통증은 우승할 때도 있었다”며 얼마 전 ‘역주행’으로 본 TV 드라마로 화제를 돌렸다.

“4월 쯤 한 드라마를 보는데, 이런 대사가 나오더라. ‘네 자신을 믿지 못하면, 너를 믿어주는 주변 사람을 믿어라’. 정말 마음에 와 닿았다.”

이 말은 달리 생각하면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예전 같지 않다는 뜻이기도 하다. 굳이 부정하지 않았다. “심리적으로 위축되지 않았다면 그것도 거짓말일 것”이라며 “드라마 대사처럼 여전히 나를 믿어주시는 부모님, 나를 위해 새벽부터 고생하시는 김창민 프로님, 끝까지 함께 하겠다는 박철용 캐디 오빠, 그리고 언제나 응원해주시는 팬클럽 ‘하나짱’ 분들이 계셔 힘을 낸다”며 웃었다.

“옛 스윙폼으로 돌아가면서 이제 자신감이 생겼다. 다시 거리를 늘리는 게 최우선”이라는 그는 “다만 20대의 내 몸과 30대인 지금의 내 몸은 다를 것이다. 30대 내 몸에 옛 폼을 얼마나 빨리 다시 심느냐가 관건이 될 것”이라며 다시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

“볼은 공중에만 있을 수 없다. 바닥을 쳐야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기 마련이다. 나도 이제 바닥을 쳤으니 올라갈 일만 남았다. 지켜봐 달라. 다시 정상에 섰을 때, 웃는 얼굴로 인터뷰하겠다.”
바닥을 치고 재도약을 다짐하는 장하나. 그가 다시 챔피언 트로피를 힘차게 들어 올릴 날을 준비하고 있다.

김도헌 기자 dohoney@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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