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국의사커에세이]“내아들유망준데당신한테팔겠소”

입력 2009-08-01 07: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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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의 아버지라고 자신을 소개한 어느 중년 남자가 떨리는 목소리로 전화를 걸어왔다. ‘당신 회사에 커다란 도움이 될 얘기’라기에 뭔가 싶어 물었더니 만나서 얘기하잔다. 약속들을 물리치고 나갔더니 초췌한 모습의 40대 남성이 아는 체를 한다. 의례적인 인사말 몇 마디를 건네더니 곧바로 바지 주머니에서 주섬주섬 뭔가를 꺼내 탁자에 펼쳐보였다.

‘축구유망주 ○○○’ 하는 제목이 달린 신문기사들이었다. 오려낸 기사 꼭지들이 몇 개였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수백 번은 펼쳤다 접었다 했는지 접힌 부분들이 너덜너덜 해져 있었다. 그는 떨리는 목소리였지만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아들을 당신에게 팔 테니 나 좀 도와달라. 사업을 하다가 망해서 요즘 너무 힘들다.” 당황스럽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화가 치밀었지만 꾹 참았다. “얼마나 필요한지요?” “글쎄, 한 1억 정도면….”

그가 너무 상처받지 않게 적당히 달래서 돌려보내고 오는 길에 왠지 모를 슬픔이 엄습해왔다. ‘저 아이가 내 아이였다면, 저 남자가 나였다면…’ 말도 안되는 상정이었지만 그 광경이 눈앞에 자꾸만 오버랩 돼왔다. 학교에 가 있을 아들이 갑자기 사무치게 그리웠다.

이영표를 PSV에인트호벤으로 보내고 났을 때니까 한 5-6년 전 쯤의 일이다. 그 뒤에 수많은 축구선수 부모들을 대하면서 ‘참 별의별 사람들이 다 있구나’ 하는 탄식을 많이 했다. 위의 예처럼 아들을 ‘입도선매’ 해달라고 한 경우는 거의 없었지만 축구선수 자식을 내세워 어느 때고 한몫 단단히 챙기겠다는 부모는 꽤 많았던 것 같다. 대개는 생업을 팽개치고 1년 내내 선수를 따라다니며 전국을 누비는, 이른바 ‘올인(All-In)’형 부모 중에 그런 케이스가 많다. 물론 그동안 벌어놓은 게 많아 이젠 아들 커가는 모습을 낙으로 삼거나, 축구가 너무 좋아 생업을 포기한 경우를 같은 범주에 넣어서는 안 되겠다.

에이전트의 입장에선 이런 ‘올인’형 부모는 결코 달갑지 않다. 매사에 간섭하고 따지고 들기 일쑤다. 부모들끼리 모여서 이런저런 루머를 나누다 보면 출처불명의 얘기들이 확대 재생산돼 근거 없는 환상을 갖기 일쑤다. 해외진출이 활발해지면서 그들의 눈도 함께 높아졌다. 선수들의 기량은 그대로인데도 말이다. 피곤해지는 건 선수와 에이전트뿐이다. 선수를 위해 장기적인 플랜을 가지고 이런 저런 구상을 하기도 어렵다. 생각이 맞지 않는 부모를 설득하는 일은 에이전트가 가장 힘들어하는 부분이다. 아마 지도자들도 같은 생각일 것이다.

부모가 자식 일에 관심을 쏟는 건 당연하다. 그런데 그런 관심들이 엉뚱한 방향으로 굳어지면 선수의 성장은 정체될 수밖에 없다. 축구를 좀 안다고 해서, 과거에 축구를 해봤다고 아들의 장래문제에 너무 깊숙히 개입하면 그건 자멸이다. 축구인 출신 부모를 둔 축구유망주들이 채 피어보지도 못하고 망가지는 케이스를 우리 주변에서 얼마나 많이 봐왔던가. 축구에만 국한된 문제도 아니다.

부모는 그들의 생업에, 운동은 선수에게, 장래설계는 에이전트에게 맡기는 게 맞다.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할 때 가장 좋은 그림이 나온다는 믿음, 극히 평범하지만 다시금 되새겨 봐야 할 소중한 가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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