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지구상에 있는 모든 신화와 이야기가 탄생한 곳. 포세이돈과 제우스 그리고 아프로디테와 에로스 또 디오니소스와 헤르메스. 어릴 때부터 들어왔던 그 거대한 이름들은 분명히 신화처럼 내 기억 속에 박제되어 있었다. 잠자고 있던 신화를 깨우는 곳, 그리고 그곳이 세상의 모든 블루를 품고 있는 지중해라면.》
지중해를 담은 블루, 에기나섬
지중해를 본다는 것은 바다를 본다는 것과는 조금 달랐다. 에게해를 마주한다는 것은 이제까지 알고 지내던 바다의 빛깔을 완전히 부정함과 다름 아니었다. 그리스 바다에 떠있는 수많은 섬 중에 한 곳. 그것은 어떤 중대한 선택의 문제는 아니었다. 모든 섬이 바로 그리스의 것이었기에.
눈을 뜨자마자 확인한 것은 밖으로 나가 하늘을 보는 것이었다. 그리스에 와서 에게해를 보지 않고 떠난다는 것은 그리스에 대한 일종의 배반행위와 같았다. 다행히도 오늘 하늘은 북쪽에서부터 구름이 걷혀지고 있었다.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지만, 나에게는 어린 시절부터 이국적으로 느껴지게 되는 몇 개의 지역들이 있다. 고비와 시나이 그리고 안데스와 지중해. 사막과 반도 그리고 산맥과 바다 등 각각 특성별로 나누어진 이곳들을 떠올리면 이상하리만큼 상념에 젓고 곧바로 눈을 감아 그곳으로 날아가는 나를 상상하곤 했다. 지중해를 떠올리면 이국적인 바람과 함께 수면위에서 반짝이는 빛의 알갱이들이 일제히 반사되어 실제로 바다가 주는 현기증처럼, 때론 아지랑이처럼 그리고 신기루처럼 나의 기억 속에 미묘하게 자리 잡아 왔다. 나는 몇 해 전 안데스를 보았기에 이번에 만나는 지중해에 대해서는 각별한 마음이 있었다. 그리스 바다를 감싸고 있는 지중해는 이탈리아 쪽으로 타레니아 해(海)와 이오니아를, 발칸반도에는 아드리아를 덜어주고 그리스에 에게를 나누어주어 넉넉하게 이들을 아우른다. 오늘은 그런 나의 오래된 바람을 현실로 만나는 시간, 마침 날씨는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화창해져 갔다.
배를 탈 수 있는 피레우스(Pireaus) 항구까지는 지하철을 타고 갔다. 그리스는 지하철 시설이 나쁘지 않은 편이다. 이오니아해를 건너 500킬로미터도 안 되는 바로 옆에 이탈리아가 있지만 그릭Greek(기원전 200년 무렵 그리스를 정복한 로마인들이 ‘노예’라는 뜻의 Greek이라고 불렀기에 흔히 그리스 사람을 지칭하는 Greek은 이들에게 좋은 표현은 아니라고 한다)들은 이탈리안들과는 달랐다. 우선 대단히 조용했고 그다지 배타적이지 않았으며 때로는 모두들 다소 웅크리고 있었고 또 표정들이 진지했다. 비수기의 끝자락인 탓에 원래 가려고 했던 이드라 섬으로 가는 배는 이미 끊어지고 없었다. 다시 떠나는 배가 오후 다섯 시나 되어야 있다고 했기에 행선지를 바꾸어야 했다. 하지만 그리스에는 크고 작은 섬이 무려 3,000개가 넘는다. 까짓 어디를 가나 그리스 섬이고 원래 여행의 묘미란 노정의 급작스런 변환이 아니었던가. 크레타나 산토리니 그리고 미코노스 같은 유명한 섬들은 원래부터 계획에 없었다. 나는 그저 관광객들보다 그리스 사람들이 더 많고 그들이 직접 살고 있는 섬을 보고 싶을 뿐이었다. 마침 지도에서 보이는 에기나는 이드라섬보다 더 작아보였다. 창구의 직원도 “Much better"라는 말로 나를 설득했다. 알고 보니 에기나 섬은 고대에 독립된 도시국가로써 한때 아테네와 극심한 라이벌 관계에 있었을 정도로 그 세력이 막강했다는, 역사적으로도 중요한 곳이기도 했다.
배는 생각보다 무척 컸다. 창구에서는 값이 조금 더 비싸고 빨리 갈 수 있는 쾌속선을 추천했지만 에게해를 바라보면서 빨리 간다는 말을 나는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천천히 아테네에서 멀어지더니 이내 배는 에게해의 한 가운데로 들어왔다. 선미에 Blue & White로만 만들어진 그리스 국기가 바람에 펄럭였다. 푸른 바다와 하늘 그리고 하얀 구름과 햇살. 이토록 자신들에게 자연스럽고 완벽하게 맞아 떨어지는 국기가 그리스 말고 세상에 또 있을까. 배는 두 시간이 지나 나를 에기나 섬에 내려놓았다. 배가 닿기 전 보이던 섬의 풍경은 실로 아름다웠다. 해를 정면으로 받고 있는 시간 탓인지 모든 색들이 살아있는 것처럼 보였다. 섬의 미관 때문에 산토리니와 미코노스의 집이나 건물들이 의도적으로 흰색과 파란색으로 통일됐다면 에기나의 건물이며 집들은 그저 자연스러운 현장의 색들이었다. 특별히 치장하거나 다듬지 않은 에기나, 나의 선택은 옳았다. 배에서 내린 일단의 관광객들을 피해 일부러 조금 늦게 움직였다. 먼저 바다를 따라 남쪽 제방을 따라 걸었다. 적당한 지중해의 바람이 나를 스쳐갔다. 에기나의 물은 내가 기존에 알고 있던 바다의 물이 아니었다. 마치 거대한 수족관처럼 맑았다. 물고기들은 실제로 손에 잡힐 만큼 가깝고 또 많았다. 나는 이런 바닷물을 강원도 삼척의 장호항에서 본 적이 있다. 메인도로가 끝나는 지점에 있는 작은 예배당으로 들어갔다. 예배당의 창을 통해서 그리스의, 에기나의 그리고 지중해의 햇살이 사선으로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고 나는 이곳에서 벌써부터 이번 그리스 여행에 대한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골목으로 들어가 보았다. 배가 내린 항구와 그 앞으로 많은 수의 식당과 관광객들이 오갔지만 한 블럭만 뒤로 들어가도 그 혼잡함은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항구에서 나와 식당가로 이어지는 거리는 그리스의 대표적인 소설가인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거리로, 카잔차키스가 그의 불멸의 역작인 ‘그리스인 조르바’를 쓴 곳이 바로 이곳 에기나섬이다. 따베르나에서는 사람들이 나른한 듯 또는 열정적으로 대화를 나누었고 그저 골목의 귀퉁이에 앉아 정오의 햇살을 즐기는 사람들도 있었다. 집의 담벼락을 넘어온 잘 익은 탱자나무, 바람에 살랑거리는 빨래 그리고 타인에 지장을 주지 않는 범위 내에서 아무렇게나 주차된 차. 에기나에서 나는 무덤덤함과 무심함의 극을 본다. 그것은 지극히 개인적이되 타인에게는 피해를 주지 않는 그리스식 개성의 다른 말이었다. 따베르나에 들어갔다. 단체 관광객들이 모두 식사를 마치고 난 시각이라 식당 내부에는 나밖에 없었다. 아무래도 섬에 왔으니 해산물로 된 식사를 즐겨야 했다. 깔라마리를 주문했다. 그리스 음식에서 빠질 수 없는 오징어 튀김이었다. 커다란 빵이 덩어리째 나왔고 나는 올리브기름을 듬뿍 뿌려 천천히 한국의 오징어 튀김과는 사뭇 다른 깔라마리를 맛봤다. 그리스는 현재 국가적인 재정난에 허덕이고 있지만 음식 값 만큼은 다른 유럽 국가에 비해 그다지 비싸지 않다.
바다를 따라 반대쪽으로 걷다가 언덕 위에 있는 유적군을 보게 되었다. 급작스런 변경 탓에 에기나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었기에 가뜩이나 유적과 유물 광인 나에게는 더없이 좋은 포인트였다. 유적군 내부에는 에기나 박물관도 있었고 언덕 위로 올라가면 아폴론 템플이라는 조금은 폐허처럼 변한 유적이 있었다. 유적으로 올라가 바다를 바라보았다. 햇살 좋은 바다를 보며 교향곡 즉, 심포니가 떠올랐다. 심포니가 바로 ‘완전히 어울리는 울림’이라는 뜻의 그리스어에서 유래한다. 나는 그 어원이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느꼈다. 멀리, 바다를 미끄러지듯 요트 한 척이 소리 없이 지나갔다. 나는 처음 알았다. 바다가 노래를 한다는 것을, 그리고 바다가 춤을 추며 자신만의 놀이를 하고 있다는 것을. 바다에 펼쳐진 은빛 주단. 나는 그 주단을 내 마음에 깔았다.
에기나 타운으로 다시 내려오다가 한 카페에서 그리스 여인을 만났다. 그녀는 나에게 카페에 들어와 커피를 한잔 하라고 했으나 나는 언덕에서 보았던 시내 중심의 커다란 교회에 가보려던 참이었다. 그녀는 그런 나에게 어떤 신전을 말해 주었다. 이름은 아페아 신전. 그녀는 나에게 그 신전을 적극 추천해주었다. 마침 그곳까지 가는 버스가 곧 떠난다며 일을 제쳐두고 버스 기사에게 내 손을 이끌고 갔다. 아테네로 돌아가는 배편이 아슬아슬했지만 까짓 배를 놓쳐도 그 신전만큼은 보고 싶었다. 다행이 버스는 채 오 분도 되지 않아 바로 떠났다. 버스에는 나와 프랑스에서 온 노부부만이 탔다.
버스는 삼 십 여 분간 북동쪽으로 구불구불 산을 타고 올라가 아파이아(Aphaia) 신전에 나를 내려놓고는 다시 떠났다. 매표소에서는 그 버스가 종점을 갔다가 이십 분 정도 후에 돌아온다고 했다. 나는 다시 바빠졌기에 언덕위로 뛰어올라가다시피 했다. 로마의 황제였던 네로가 에기나 섬 방문 시 거주지로 사용했다는 아파이아 신전은 에기나에서만 생산된 석회암으로 만들어진 것이 특징이며 모든 것을 한 바위에서 나온 것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기원전 500년경에 세워진 이곳은 파르테논, 포세이돈과 함께 그리스 3대 신전이라는 기념비적이고 영광스러운 별칭을 가지고 있을 정도로 가치가 높은 건축물이다. 이십 여 분간의 짤막한 방문이었지만 나는 충분히 됐다고 생각했을 때는 그만 마음을 접는 편이다. 버스가 주차장에서 경적을 울리고 나는 다시 그 버스를 타고 항구로 돌아왔다. 버스로 내려오는 마을 중간에 한 교회에서 장례식이 열리는 것을 보았다. 장례식 때문에 차들이 밀려있었고 창을 통해 그들을 바라볼 수 있었다. 블루와 화이트로 점철된 그리스에서 블랙은 확실히 이질적인 색상이었지만 그리스 사람들은 그런 블랙으로 뒤덮인 장례식장을 더 이상 음울하게 만들지 않았던 것 같다. 떠나가는 사람을 축하해주는 자리. 만일 그것이 내가 보았던 장례식장의 정확한 느낌이라면 나는 어쩌면 그리스를 더 좋아할지도 모르겠다.
<동아닷컴>
제공 : 모두투어(www.modetour.com, 1544-5252) / WRITER+PHOTO EGON
지중해를 담은 블루, 에기나섬
지중해를 본다는 것은 바다를 본다는 것과는 조금 달랐다. 에게해를 마주한다는 것은 이제까지 알고 지내던 바다의 빛깔을 완전히 부정함과 다름 아니었다. 그리스 바다에 떠있는 수많은 섬 중에 한 곳. 그것은 어떤 중대한 선택의 문제는 아니었다. 모든 섬이 바로 그리스의 것이었기에.
모두투어 제공
배를 탈 수 있는 피레우스(Pireaus) 항구까지는 지하철을 타고 갔다. 그리스는 지하철 시설이 나쁘지 않은 편이다. 이오니아해를 건너 500킬로미터도 안 되는 바로 옆에 이탈리아가 있지만 그릭Greek(기원전 200년 무렵 그리스를 정복한 로마인들이 ‘노예’라는 뜻의 Greek이라고 불렀기에 흔히 그리스 사람을 지칭하는 Greek은 이들에게 좋은 표현은 아니라고 한다)들은 이탈리안들과는 달랐다. 우선 대단히 조용했고 그다지 배타적이지 않았으며 때로는 모두들 다소 웅크리고 있었고 또 표정들이 진지했다. 비수기의 끝자락인 탓에 원래 가려고 했던 이드라 섬으로 가는 배는 이미 끊어지고 없었다. 다시 떠나는 배가 오후 다섯 시나 되어야 있다고 했기에 행선지를 바꾸어야 했다. 하지만 그리스에는 크고 작은 섬이 무려 3,000개가 넘는다. 까짓 어디를 가나 그리스 섬이고 원래 여행의 묘미란 노정의 급작스런 변환이 아니었던가. 크레타나 산토리니 그리고 미코노스 같은 유명한 섬들은 원래부터 계획에 없었다. 나는 그저 관광객들보다 그리스 사람들이 더 많고 그들이 직접 살고 있는 섬을 보고 싶을 뿐이었다. 마침 지도에서 보이는 에기나는 이드라섬보다 더 작아보였다. 창구의 직원도 “Much better"라는 말로 나를 설득했다. 알고 보니 에기나 섬은 고대에 독립된 도시국가로써 한때 아테네와 극심한 라이벌 관계에 있었을 정도로 그 세력이 막강했다는, 역사적으로도 중요한 곳이기도 했다.
배는 생각보다 무척 컸다. 창구에서는 값이 조금 더 비싸고 빨리 갈 수 있는 쾌속선을 추천했지만 에게해를 바라보면서 빨리 간다는 말을 나는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천천히 아테네에서 멀어지더니 이내 배는 에게해의 한 가운데로 들어왔다. 선미에 Blue & White로만 만들어진 그리스 국기가 바람에 펄럭였다. 푸른 바다와 하늘 그리고 하얀 구름과 햇살. 이토록 자신들에게 자연스럽고 완벽하게 맞아 떨어지는 국기가 그리스 말고 세상에 또 있을까. 배는 두 시간이 지나 나를 에기나 섬에 내려놓았다. 배가 닿기 전 보이던 섬의 풍경은 실로 아름다웠다. 해를 정면으로 받고 있는 시간 탓인지 모든 색들이 살아있는 것처럼 보였다. 섬의 미관 때문에 산토리니와 미코노스의 집이나 건물들이 의도적으로 흰색과 파란색으로 통일됐다면 에기나의 건물이며 집들은 그저 자연스러운 현장의 색들이었다. 특별히 치장하거나 다듬지 않은 에기나, 나의 선택은 옳았다. 배에서 내린 일단의 관광객들을 피해 일부러 조금 늦게 움직였다. 먼저 바다를 따라 남쪽 제방을 따라 걸었다. 적당한 지중해의 바람이 나를 스쳐갔다. 에기나의 물은 내가 기존에 알고 있던 바다의 물이 아니었다. 마치 거대한 수족관처럼 맑았다. 물고기들은 실제로 손에 잡힐 만큼 가깝고 또 많았다. 나는 이런 바닷물을 강원도 삼척의 장호항에서 본 적이 있다. 메인도로가 끝나는 지점에 있는 작은 예배당으로 들어갔다. 예배당의 창을 통해서 그리스의, 에기나의 그리고 지중해의 햇살이 사선으로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고 나는 이곳에서 벌써부터 이번 그리스 여행에 대한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골목으로 들어가 보았다. 배가 내린 항구와 그 앞으로 많은 수의 식당과 관광객들이 오갔지만 한 블럭만 뒤로 들어가도 그 혼잡함은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항구에서 나와 식당가로 이어지는 거리는 그리스의 대표적인 소설가인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거리로, 카잔차키스가 그의 불멸의 역작인 ‘그리스인 조르바’를 쓴 곳이 바로 이곳 에기나섬이다. 따베르나에서는 사람들이 나른한 듯 또는 열정적으로 대화를 나누었고 그저 골목의 귀퉁이에 앉아 정오의 햇살을 즐기는 사람들도 있었다. 집의 담벼락을 넘어온 잘 익은 탱자나무, 바람에 살랑거리는 빨래 그리고 타인에 지장을 주지 않는 범위 내에서 아무렇게나 주차된 차. 에기나에서 나는 무덤덤함과 무심함의 극을 본다. 그것은 지극히 개인적이되 타인에게는 피해를 주지 않는 그리스식 개성의 다른 말이었다. 따베르나에 들어갔다. 단체 관광객들이 모두 식사를 마치고 난 시각이라 식당 내부에는 나밖에 없었다. 아무래도 섬에 왔으니 해산물로 된 식사를 즐겨야 했다. 깔라마리를 주문했다. 그리스 음식에서 빠질 수 없는 오징어 튀김이었다. 커다란 빵이 덩어리째 나왔고 나는 올리브기름을 듬뿍 뿌려 천천히 한국의 오징어 튀김과는 사뭇 다른 깔라마리를 맛봤다. 그리스는 현재 국가적인 재정난에 허덕이고 있지만 음식 값 만큼은 다른 유럽 국가에 비해 그다지 비싸지 않다.
바다를 따라 반대쪽으로 걷다가 언덕 위에 있는 유적군을 보게 되었다. 급작스런 변경 탓에 에기나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었기에 가뜩이나 유적과 유물 광인 나에게는 더없이 좋은 포인트였다. 유적군 내부에는 에기나 박물관도 있었고 언덕 위로 올라가면 아폴론 템플이라는 조금은 폐허처럼 변한 유적이 있었다. 유적으로 올라가 바다를 바라보았다. 햇살 좋은 바다를 보며 교향곡 즉, 심포니가 떠올랐다. 심포니가 바로 ‘완전히 어울리는 울림’이라는 뜻의 그리스어에서 유래한다. 나는 그 어원이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느꼈다. 멀리, 바다를 미끄러지듯 요트 한 척이 소리 없이 지나갔다. 나는 처음 알았다. 바다가 노래를 한다는 것을, 그리고 바다가 춤을 추며 자신만의 놀이를 하고 있다는 것을. 바다에 펼쳐진 은빛 주단. 나는 그 주단을 내 마음에 깔았다.
에기나 타운으로 다시 내려오다가 한 카페에서 그리스 여인을 만났다. 그녀는 나에게 카페에 들어와 커피를 한잔 하라고 했으나 나는 언덕에서 보았던 시내 중심의 커다란 교회에 가보려던 참이었다. 그녀는 그런 나에게 어떤 신전을 말해 주었다. 이름은 아페아 신전. 그녀는 나에게 그 신전을 적극 추천해주었다. 마침 그곳까지 가는 버스가 곧 떠난다며 일을 제쳐두고 버스 기사에게 내 손을 이끌고 갔다. 아테네로 돌아가는 배편이 아슬아슬했지만 까짓 배를 놓쳐도 그 신전만큼은 보고 싶었다. 다행이 버스는 채 오 분도 되지 않아 바로 떠났다. 버스에는 나와 프랑스에서 온 노부부만이 탔다.
모두투어 제공
<동아닷컴>
제공 : 모두투어(www.modetour.com, 1544-5252) / WRITER+PHOTO EG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