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오승환(오른쪽)이 팀 후배 안지만의 사인 요청을 받고 공에 사인을 해주고 있다.대구 | 이재국 기자
23일 대구구장 3루 덕아웃 옆. 삼성 안지만(30)은 LG 선수들의 훈련을 바라보고 있던 오승환(31)의 곁으로 슬며시 다가갔다. 그리고는 공손하게 허리를 숙이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손에는 프로야구 공인구 한 박스와 매직펜이 들려있었다. 한 박스에는 공인구 12개가 들어간다.
선수가 선수에게 사인을 받는다? 팬들로선 쉽게 상상할 수 없는 일이겠지만, 선수들 사이에선 이런 일이 종종 있다. 대부분 지인의 부탁으로 사인볼 심부름을 하는 것이다.
안지만의 사인 요청에 오승환은 “또 사인? 너까지 왜 그래?”라며 짐짓 눈을 부라렸다. 오승환은 최고 스타플레이어답게 여기저기 사인을 해야 할 일이 많다. 팬들은 물론 동료선수들까지 사인을 요청하니, 어떤 날은 하루에 수백 번씩 사인을 하기도 한다. 솔직히 귀찮을 때도 많지만, 아는 낯에 거절도 할 수 없는 노릇. 그런데 절친한 후배 안지만이 공 한 박스를 들고 나타나자 한마디 쏘아붙인(?) 것이었다. 그러나 ‘4차원의 영혼’을 지닌 안지만이 가만히 있을 리 없었다. 그의 역공에 오승환은 본전도 찾지 못했다.
“사인하기 싫으면 야구 못하면 되잖아요. 누가 야구 잘 하래요?” 할말을 잃은 오승환은 모처럼 ‘파안대소’했다. 그리고는 ‘졌다’는 표정으로 공에다 사인을 하기 시작했다.
이재국 기자 keystone@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 @keystone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