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건영통신원의 네버엔딩스토리] 컵스가 놓친 신성 아처, AL 신인왕 후보로 뜨다

입력 2013-07-31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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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탬파베이 복덩이 크리스 아처

컵스 구단 실수로 최고 유망주 탬파베이행 빌미
불우한 가정형편…피다른 형제·입양 등 아픔
올 6월 선발로테이션 합류 후 6경기 5승 무패
158km 강속구에 최근 제구력까지 정상급 구위


LA 다저스 류현진(26)이 추신수(31)가 이끄는 신시내티 레즈와의 홈경기에서 7이닝 2안타 1실점으로 시즌 9승을 거둔 28일(한국시간), 뉴욕의 양키스타디움에선 또 한 명의 괴물 루키가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주인공은 류현진보다 한 살 어린 크리스 아처. 이날 탬파베이 레이스의 선발투수로 등판한 아처는 양키스 타선을 9이닝 2안타 무실점으로 틀어막으며 팀에 1-0 승리를 선사했다.

1점차의 살얼음판 리드를 지키던 9회말, 불펜에선 페르난도 로드니와 조엘 페랄타가 대기하고 있었지만 아처는 양키스의 마지막 타자 스즈키 이치로를 투수 땅볼로 처리해 끝까지 자신을 믿어준 조 매든 감독의 기대에 부응했다. 이는 불과 2주 만에 나온 아처의 메이저리그 통산 2번째 완봉승으로, 총 97개의 투구수만을 기록했다는 점에서도 눈길을 끌기에 충분했다. 단 1이닝도 14개 이상의 공을 던지지 않으면서 알폰소 소리아노를 4번타자로 보강한 양키스 타선을 무력화시켰다.

지난해 잠깐 메이저리그에 얼굴을 비친 아처는 올해도 6월에야 빅리그 마운드에 오를 수 있었다. 그러나 6월 2일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와의 원정경기를 시작으로 불과 2개월도 안 되는 기간에 6승(3패·방어율 2.39)을 거두며 아메리칸리그의 신인왕 후보로 급부상했다.

아처의 눈부신 활약에 가장 속이 쓰린 구단은 아마도 시카고 컵스일 듯하다. 1988년생인 아처는 노스캐롤라이나주 클레이튼고교를 졸업했다. 졸업반 때 성적은 8승3패, 방어율 1.75. 야구 명문 마이애미대학의 입학 제의를 뿌리치고 2006년 신인드래프트에 참여해 5라운드에 클리블랜드의 지명을 받았다. 처음에는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하다 2008년 마지막 날 컵스로 트레이드됐다. 인디언스가 마크 데로사를 영입하기 위해 다른 유망주 2명과 함께 아처를 컵스로 보낸 것이다.

아처는 2010년 싱글A에서 41이닝 무자책점 행진을 이어가는 등 15승3패, 방어율 2.34의 뛰어난 성적을 올려 컵스 산하 마이너리그 최우수선수로 선정됐다. 이에 컵스는 아처를 40인 로스터에 포함시켜 룰5 드래프트 대상에서 보호하는 발 빠른 행보를 보이기도 했다. 그 해 시즌을 마친 뒤 아처는 2011팬아메리칸대회에 미국대표로 출전해 강력한 우승 후보 쿠바를 물리치고 금메달을 따는 데 앞장서며 한층 주가를 높였다.

그러나 컵스는 얼마 지나지 않아 최악의 실수를 저질렀다. 선수단 연봉 총액을 줄이기 위해 허리띠를 졸라맨 탬파베이가 우완 에이스 맷 가자를 트레이드 시장에 내놓자 그를 잡기 위해 이학주, 브랜든 가이어, 로빈슨 치리노스, 샘 펄드와 함께 아처를 레이스로 보내고 말았다. 결과론이지만 가자는 2011년부터 2년 동안 컵스에서 39경기에 등판해 15승(17패)을 거두는 데 그쳤다. 올 시즌에도 부상에 시달리며 5월 22일 뒤늦게 시즌 데뷔전을 치른 가자는 6승1패, 방어율 3.17로 분전했지만 포스트시즌 진출 희망이 거의 사라진 컵스는 올스타전 이후 그를 텍사스 레인저스로 다시 트레이드했다. 컵스는 가자를 영입한 후 2년 반 동안 포스트시즌 진출은커녕 내셔널리그 중부지구 하위권을 벗어나지 못한 채 아처와 이학주 등 최고 유망주들만 레이스에 고스란히 넘겨준 꼴이 됐다.

아처는 불우한 가정환경에서 자랐다. 백인 어머니에게는 2명의 피가 다른 동생이 있었다. 흑인 아버지는 소방관으로 근무했지만 아처를 전혀 돌보지 않아 두 살 때 친조부모에게 입양돼 키워졌다. 그가 고교를 졸업하면서 마이애미대학의 스카우트 제의를 마다하고 일찌감치 프로로 뛰어든 것도 가정형편과 무관치 않다.

레이스로 이적한 2011년 아처의 성적은 형편없었다. 제구가 신통치 않아 더블A에서 전반기를 마쳤을 때 방어율이 5.27이나 됐다. 그러나 후반기 들어 5승4패, 방어율 3.45로 다른 모습을 보여주자 2012년을 앞두고 ‘베이스볼 아메리카’는 아처를 레이스 팀 내 3위이자 메이저리그 전체 89번째 유망주로 꼽았다.

2012년 더블A에서 4승8패, 방어율 4.81로 그저 그런 성적을 내던 아처에게 빅리그 등판의 기회가 찾아왔다. 부상 당한 제레미 헬릭슨을 대신해 6월 21일 워싱턴 내셔널스와의 원정경기에 선발 등판할 수 있었다. 6이닝 3실점으로 패전을 당했지만 삼진을 7개나 잡아내며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이후 2차례 더 패전투수가 된 아처가 감격의 첫 승을 따낸 것은 9월 20일 보스턴 레드삭스와의 경기였다. 5이닝 동안 3실점했지만 타선의 지원에 힘입어 승리투수가 됐다.

올 시즌 6월부터 아처가 로테이션에 합류한 뒤로 레이스 선발진은 더욱 막강해졌다. 6월24일 이후 레이스는 25승5패라는 놀라운 성적을 거두며 죽음의 조로 불리는 아메리칸리그 동부지구에서 레드삭스와 선두를 다투고 있다. 이 기간 아처는 6경기에 선발 등판해 5승 무패, 방어율 1.31을 기록했다. 아처뿐 아니라 맷 무어(5승·방어율 1.99), 데이비드 프라이스(5승1패·방어율 2.01), 제레미 헬릭슨(5승·방어율 1.95) 등도 서로 경쟁하듯 빼어난 성적을 올렸다.

아처의 주무기는 최대 98마일(158km)의 강속구다. 그러나 대부분의 강속구 투수들처럼 아처 역시 마이너리그 시절 컨트롤에 애를 먹었다. 2011년 더블A에서 9이닝당 평균 5.4개의 볼넷을 허용했고, 지난해 트리플A에서도 평균 4.4개로 좋지 않았다. 올 시즌 빅리그로 승격한 이후 첫 4차례 등판에선 19.2이닝 동안 14볼넷을 내줬으며 이닝당 평균 투구수도 19.8개나 됐다. 그러나 6월 24일 양키스와의 원정경기가 전환점이 됐다. 6이닝 동안 6안타 1볼넷 1실점으로 승리투수가 되면서 제구력에 대한 자신감을 얻기 시작하더니 완전히 다른 투수로 탈바꿈했다. 최근 4경기 성적만 놓고 보면 31이닝 동안 볼넷이 4개에 불과하고, 이 기간 이닝당 평균 투구수는 12.8개로 아메리칸리그 투수들의 평균(16.4개)보다 훨씬 뛰어났다.

최대 약점이던 제구력이 이처럼 급격히 향상된 요인은 자신의 구위와 동료 선수들에 대한 믿음을 꼽을 수 있다. 비록 경험은 부족하지만 상대 타자들이 쉽게 공략하지 못할 것이라는 자신감을 얻으면서 도망가는 피칭에서 벗어났다. 또 피츠버그 파이어리츠와 오클랜드 어슬레틱스에 이어 메이저리그 3위인 레이스의 탄탄한 수비력도 마운드에서 불안감을 떨치고 편안한 마음으로 공을 뿌리게 도와줬다.

아처는 또 틈나는 대로 지난해 사이영상 수상자인 데이비드 프라이스를 멘토 삼아 그라운드 안팎의 노하우를 자기 것으로 흡수하고 있다. 5700만여달러로 팀 연봉 순위 28위에 불과한 레이스가 레드삭스, 볼티모어 오리올스, 양키스 등과 지구 1위 싸움을 펼칠 수 있는 비결은 바로 아처와 같은 미완의 대기를 스타로 발굴해내는 능력 때문일 것이다.

손건영 스포츠동아 미국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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