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세하고 꼼꼼한 임도헌 삼성화재 감독은 간결함에서 아름다움을 찾는다. 새로운 시즌 그가 보여줄 배구는 ‘심플한 배구’다. 임 감독은 경기에 지거나 공격에 실패해도 절대로 고개를 숙이지 말고 당당하게 플레이하라고 선수들에게 강조하고 있다.스포츠동아DB
삼성화재 임도헌 체제, 변화보다 안정 추구
강도 높은 체력훈련·선수들 생활 관리 여전
리시브 성공률 60% 목표…‘수비배구’ 강조
라이트 최귀엽 복귀…레오 합류 지연 변수
체력 좋아진 류윤식, 새 시즌 키플레이어로
14일 경기도 용인 삼성 트레이닝센터(STC)를 찾았을 때 벽부터 먼저 봤다. 삼성화재 영광의 역사를 보여주는 곳이다. 왼편에는 실업배구 시절 8연속 우승을 기념하는 현수막, 오른편에는 V리그 우승을 기념하는 현수막이 각각 걸려있다. 지난 시즌을 앞두고 이곳을 찾았을 때와 다르지 않았다. 2014∼2015시즌 정규리그 우승팀 삼성화재는 OK저축은행과의 챔피언 결정전에서 완패했다. 삼성화재 임도헌 감독에게 ‘왜 현수막(정규리그 우승 기념)을 새로 붙이지 않았느냐’고 묻자, “우리는 통합우승 아니면 붙이지 않는다”고 답했다. 10월 10일 개막하는 새 시즌 삼성화재와 임 감독의 목표가 무엇인지 상징적으로 드러났다.
● 변화의 바람 속에 안정 택한 삼성화재
훈련에 열중하는 선수들의 몸은 탄탄했다. 그대로 새 시즌에 들어가도 이상이 없을 정도였다. 근육이 많이 붙었다. “동양인들은 서양인들에 비해 근육이 쉽게 붙지 않아 더 힘들게 훈련해야 한다”는 말이 기억났다. 임도헌 감독은 “체력강화에 신경을 썼다. 시즌 초반이 고비다. 먼저 치고나가서 선수들에게 자신감을 심어줘야 한다. 1라운드 중반부터 2∼3일 걸러 경기하는 경우가 5차례다. 이에 대비하는 목적도 있다”고 설명했다. 대부분의 선수들은 체지방률이 6% 이하로 떨어졌다. 지태환은 3%를 유지했다. 레오가 한창 좋을 때 4%의 체지방률을 유지했다.
훈련프로그램은 신치용 전 감독(현 단장)이 만든 기초에서 조금 변화를 줬다. 잠시라도 쉴 팀이 없이 선수들을 한계로 몰아붙이는 훈련은 여전했다. 오전·오후·야간 훈련에다 필요한 선수는 새벽 훈련도 실시했다. 훈련 강도와 밀도는 새 사령탑 취임 이후 더 높아졌다. 합숙 때는 취침 전 휴대전화를 선수들 스스로 반납한다. 취침시간에는 SNS도, 게임도 금지된다. 이런 철저한 생활관리가 그동안 삼성화재를 지켜온 힘이다.
지난달 28일에는 연례행사인 설악산 종주도 했다. 단골 1등이었던 지태환이 이번에는 2위에 머물렀다. 지난해 2시간40분대의 신기록을 세웠지만, 이번에는 비로 길이 미끄러워 코스를 변경했다. 그동안 무릎 수술의 트라우마가 있었던 곽동혁이 열심히 체력훈련을 한 덕분에 1위를 차지했다. 부상 부위의 부담을 떨쳐버렸다는 증거다. 지태환은 곽동혁과 거의 같은 시간에 결승선을 통과했다.
올 시즌 많은 팀들이 새로운 시도를 통한 변화를 추구하지만, 삼성화재는 전통을 고수했다. 지켜보는 감독의 눈이 바뀐 것이 변화라면 변화다. 20년간 팀을 이끌던 리더가 현장에서 물러났지만, 삼성화재는 그동안 쌓아온 조직력을 더 가다듬으면서 조금씩 새로운 색깔을 덧칠하고 있다.
● KOVO컵 후 임도헌 감독의 자각과 신치용 단장의 조언
7월 청주 KOVO컵 준결승에서 OK저축은행에 패했다. 대회를 마치고 임도헌 감독과 신치용 단장은 함께 저녁식사를 했다. 그 자리에서 어떤 말이 오갔는지 궁금했다. 임 감독은 “별 말씀 없으셨다. ‘남에게 보여주는 배구보다는 내실을 다지라’고 하셨다”고 말했다. 삼성화재와 임 감독이 추구하는 배구의 모든 것이 들어있는 당부다. 요즘 젊은 감독들은 다양한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팀이 그동안 해온 배구에 자신이 이름과 색깔을 붙이려고 한다. 신 단장은 그런 변화의 바람 속에서 삼성화재 구성원을 먼저 생각하고, 그에 맞는 배구를 하라는 조언을 해준 것이다.
새 감독에게 ‘처음 KOVO컵을 지휘하면서 느낀 점’을 물었다. “결단은 빨라야 좋다는 것을 배웠다. 사사로운 생각에 판단이 늦어지면 결과가 나빴다”는 답이 돌아왔다. 임 감독은 훈련 때 고생했던 선수들에게 기회를 더 주려고 했다. 경기 도중 이상신호가 온 선수를 몇 차례 바꾸지 않고 기다리다 실패했다. 그는 “지금은 선수들의 동작을 유심히 보고 있다. 어느 선수는 훈련 때 어떤 동작을 하면 컨디션이 좋고, 어떤 선수는 어떤 동작이 나오면 좋지 못하다는 것을 모두 입력시켜두려고 한다”고 설명했다. 축구계의 명감독 알렉스 퍼거슨은 “감독의 업무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관찰”이라고 했다. “훈련 때 완벽한 준비를 해둬야 경기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더라도 대처가 가능하다. 그런 준비 없이 결과를 바라면 요행”이라고 했던 전임 감독과 신임 감독은 이 부분에서 100% 일치됐다.
신 단장이 현장에서 물러나면서 삼성화재 출신의 후임자를 택하라는 주변의 얘기도 많았지만, 현대 출신 임 감독이 지휘봉을 잡았다. 출신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능력을 봤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10년간 가장 가까운 곳에서 현장교육을 통해 노하우를 흡수한 임 감독에게 ‘푸른색 DNA’가 전달됐을 것이라고 신 단장은 믿었다. 지도자로서의 성공도 장담했다. 지금은 용합의 시대, 하이브리드 시대다.
● 리시브 성공률 60%에 도전하는 수비배구와 골반강화 훈련
KOVO컵 이후 본격적으로 시즌 대비 훈련을 진행했다. 예전보다 산을 타는 횟수가 늘었다. 일주일에 하루는 꼭 산악훈련을 했다. 임도헌 감독은 취임 직후부터 훈련 강도를 높였다. 사령탑 교체 속에 선수들이 다른 생각을 품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에서였다. 일본 전지훈련(17∼24일)을 앞두고 훈련 강도를 차츰 줄였다. 일주일 합숙훈련, 일주일 출퇴근 훈련의 일정을 소화했다.
“감독이 되고 좋은 점은 원하는 방향으로 훈련시킬 수 있어서”라던 새 감독은 새벽 훈련 때 선수들의 스트레칭을 강조했다. 유연성을 높여 부상을 줄이고, 골반을 강화하기 위해서였다. 임 감독은 “골반이 약한 선수가 많다. 골반이 튼튼해야 점프가 좋아지고 리시브도 안정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지난 시즌 리시브 성공률이 50%를 넘는 경기에선 지지 않았다. 이번 시즌 목표는 리시브 성공률 60%”라고 말했다. 부진했던 이강주가 리시브 능력에서 믿음을 보여준 것이 위안이다. 곽동혁은 디그에 장점이 있다. 임 감독은 “세터 유광우가 안정된 토스를 하니까, 리시브에서 어느 정도만 올려주면 충분히 우리가 원하는 플레이를 할 수 있다. 내 배구는 수비배구”라고 밝혔다.
그동안은 많은 선수들에게 기회를 줬지만, 일본 전훈에 즈음해 베스트 멤버를 압축해 훈련의 집중도를 높이고 있다. 임 감독은 “시즌 때 8명 이상의 선수가 들어가는 경기는 고전했다. 우리는 베스트 7∼8명이 경기를 풀어나가는 것이 가장 좋은 시나리오고, 결과도 좋았다”고 얘기했다.
● 시즌 전략과 팀 전술 변화
유광우의 안정되고 정확한 연결을 바탕으로 레오를 공격의 정점으로 한 높이의 배구를 한다. 탄탄한 수비와 조직력을 바탕으로 한 삼성화재만의 배구에는 변함이 없다. 초반 기선제압이 목표다. 군에서 복귀한 최귀엽이 김명진과 라이트를 책임진다. 전위에선 최귀엽의 활용도가 높고, 후위에선 김명진의 백어택 능력이 더 좋다. 이 둘을 적절히 조합해야 한다. 두 사람 모두 사이드블로킹 능력이 박철우보다 떨어진다는 것이 아쉽다. 고현우가 수비형 레프트로 자주 출장할 전망이다. 선수단 구성에서 큰 변화는 없다. 레오가 이전과는 다르게 늦게 팀에 합류한다는 것이 변수다. 개인 사정으로 입국이 늦어지고 있다. 레오가 한시라도 빨리 완벽한 몸과 마음으로 복귀하는 것이 최고의 시나리오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고전할 가능성도 있다.
삼성화재 류윤식(왼쪽). 스포츠동아DB
● 키플레이어
임도헌 감독이 꼽은 새 시즌 키 플레이어는 류윤식(사진)이다. 임 감독은 “3번 자리(리시브 전담 레프트)가 좋은 팀이 강팀이다. 윤식이가 다른 팀 3번에 비해 떨어지지 않는다. 그동안 훈련을 한 번도 빼먹지 않고 잘 소화했다. 하체훈련 때 230kg을 넘게 든다. 체력이 좋아졌다”고 평가했다. 훈련 때도 가장 몸놀림이 가볍다. 배구 센스가 빼어난 데다, 점프가 좋아 중요한 순간 득점도 많이 하고 있다. 감독은 공격 욕심보다 수비에서 안정과 헌신을 더 원한다.
삼성화재 임도헌 감독. 스포츠동아DB
■ 삼성화재 임도헌 감독 출사표
“심플한 배구 보여줄 것”
많은 사람들이 내 배구에 대해 물어보는데, 사실 배구는 다 같다. 3번의 기회 안에 선수들이 잘 받고 잘 연결해서 공격하는 것이 전부다. 굳이 따지자면 기교를 부려서 화려하게 하는 배구보다는 심플한 배구를 보여주고 싶다. 움직여야 할 때 움직이고, 수비해야 할때 수비하고, 선수들이 각자 자리에서 자신의 역할을 잘 해가며 움직여주는 배구가 단순하면서도 멋있다고 생각한다. 선수들이 수비 때 뒤로 물러서지 않고 공격적으로 수비하는 자세를 보여줄 것을 원한다. 프로선수라면 보통 사람이 못하는 것에 도전해서 해내는 것을 보여줘야 감동을 준다고 믿는다. 수비수가 다이빙해서 멋지게 잡는 것보다는 한 발자국 먼저 움직여서 쉽게 잡는 것이 팀에 더 중요하듯, 어려운 플레이를 루틴으로 만드는 그런 배구를 꿈꾼다. 지도자로서 항상 바르게 행동해야 한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용인 | 김종건 전문기자 marc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