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전드야구존 이문한 고문. 사진제공|이문한
“CCTV 사건땐 인생포기하고 싶기도
난 여전히 야구인…롯데가 잘했으면”
장관이나 국회의원을 하루라도 했다면 평생 ‘장관님’, ‘의원님’으로 불리고 싶은 것이 사람의 마음이다. 인생에서 정점을 찍은 순간으로 기억되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이문한(사진) 레전드야구존 고문에게 ‘롯데 자이언츠 운영부장’이라는 경력은 영예이자 아픔이다. 야구단 프런트의 브레인으로 일하다가 사실상 타의에 의해 밀려났기 때문이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흔들었던 롯데야구단 CCTV 사건이 잦아들었어도 ‘내부 제보자’를 향한 시선은 곱지 않았다. 그저 침묵 속에서 타인이 가늠할 수 없는 1년여의 고독을 견뎌야했다. 세속적인 것들을 상실한 그를 지탱해 준 힘은 ‘야구인 이문한’이라는 초심이었다. 그 마음으로 회복했고, 야구 곁으로 다시 돌아왔다.
● “그동안 해왔던 야구가 너무 아까웠다”
4월 입사한 이 고문이 하는 일은 스크린야구 업체인 레전드야구존 부산·영남지역 지사 총괄관리다. 마케팅과 홍보를 지원하고, 야구 인맥을 활용해 에이전트 등 신사업을 모색한다. “야구를 접할 수 있는 일이라 즐겁게 일하고 있다. 야구단에서 마케팅, 홍보 일을 접해봤으니까 업무 돌아가는 리듬은 알아서 좀 낫다.”
처음부터 이쪽 일을 할 줄은 몰랐다. 2014년 겨울, 롯데에서 CCTV 사건의 소용돌이에 휘말렸을 때, 이 고문은 “인생을 포기하고 싶었다. 정을 쏟은 만큼 마음의 상처가 컸다”고 말했다. 일본 지바롯데와의 스카우트 3년 계약을 1년 만에 포기하고 들어온 롯데 자이언츠였다. 연봉이 줄었고, 보장 조건이 없었음에도 2011년 겨울 고향 부산의 롯데를 택했다. “모기업에서 온 대표이사와 단장들이 야구단을 너무 쉽게 보더라. 누가 내려와도 못 흔드는 야구단의 틀을 만들어놓고 싶었다.” 그러나 당시 대표이사, 구단주 대행의 입김이 막강한 구조 속에서 이 고문의 의도는 좌초됐다. 결국 터질 일이 터졌다. 야구단 핵심인사였던 이 고문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롯데를 나와서 모든 것을 내려놓고 지역 스카우트라도 해보려고 했다. 두 구단에서 구체적인 제의가 오기도 했다. 그러나 끝내 이 고문을 부담스러워했다. 받아주는 곳이 없어서 사업을 하려 했는데 레전드야구존 오동석 대표가 “같이 일하자”고 제의해 인생의 항로가 바뀌었다.
그 힘든 시간을 어떻게 견뎠을까. 이 고문은 “첫째는 가족, 그리고 둘째가 야구였다. 미국에서 9년, 일본에서 1년 스카우트를 했다. 야구를 통해 인생을 살았는데 너무 아까웠다. 1년 만에 무너지고 싶지 않았다. 내가 그동안 쌓았던 무언가를 통해서 일어나야겠다는 마음이 커졌다”고 말했다.
● “롯데가 야구 잘했으면 좋겠다”
이 고문은 ‘야구인’이라는 정체성에 관한 애착이 무척 강하다. 비록 중도에 좌절됐지만 유니폼 입어보지 않은 사람들이 야구인들에게 갖는 편견을 바꿔보려는 의지만큼은 진심이었다. “야구인은 전문직이다. (돈이 전부가 아니라) 야구인이 있어야 야구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프런트 고위인사들 중 전문가에 대한 인정을 안 해주는 사람들이 있더라.”
야구는 아련한 아픔이지만 끊을 수 없는 애정이기도 하다. 이제 평상심으로 다시 야구경기를 볼 수 있을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외국인선수 스카우트 1세대’로서 인맥과 흐름을 유지하기 위해 바깥에서라도 야구를 놓지 않는다.
롯데야구도 물론 본다. “롯데가 잘하면 좋겠는데, 안 되고 이러는 것을 보면 마음이 아프다. 누구보다 애착이 많이 간다”고 웃었다. 초탈했지만 어쩐지 쓸쓸한 웃음 같았다.
김영준 기자 gatzby@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