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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C 김경문 감독-kt 조범현 감독(오른쪽). 스포츠동아DB
4년 만에 프로야구를 덮친 승부조작의 수사결과가 발표된 21일 마산구장. NC 김경문 감독은 취재진 앞에서 연신 고개를 숙였다. 취재진과 방송 관계자들이 올 때마다 “죄송합니다”라며 사과의 말을 반복해야 했다.
훈련시간이 끝난 뒤, 다시 만난 김 감독은 기자에게 나지막이 “그동안 어쩔 수가 없었다. 미안하다”며 무겁게 발걸음을 옮겼다. 그가 언급한 ‘그동안’은 언제일까.
이태양이 엔트리에서 빠진 6월28일, 김 감독은 갑작스런 1군 말소 이유에 대해 취재진에게 “팔꿈치가 아파서”라고 짧게 답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 그의 승부조작 사실이 밝혀진 7월20일 경기 전까지도 “시간이 좀 걸릴 것 같다”고만 말했다. 그리고 그날 밤, 이태양은 영영 돌아오지 못할 강을 건넜다.
이태양은 6월27일, 검찰이 자신이 범한 승부조작 사실을 포착해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구단에 알렸다. 구단은 엔트리 말소 후 격리조치를 하며 검찰 수사에 협조했다. 이태양은 이내 자수했고, 덕분에 창원지검은 수사에 속도를 낼 수 있었다.
검찰과의 공조도 중요했지만, 그동안 김 감독은 의도치 않게 ‘거짓말’을 해야 했다. 한 달 가까운 시간 동안 그에게 보호막은 없었다. 매 경기 취재진 앞에 서서 속이 시커멓게 타들어갔다. 게다가 에이스 역할을 해야 할 외국인투수 에릭 해커가 부상으로 빠진 상황이라, 또 다른 선발투수 이태양에 대한 질문이 계속될 수밖에 없었다.
kt 조범현 감독 역시 제자인 김상현 때문에 고개를 숙여야 했다. 2군에 내려가 있을 때 음란행위로 불구속 입건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기 때문이다. 특히 조 감독은 해당 사실이 보도된 12일 넥센과의 홈경기에 김상현을 출전시켰다는 비난을 온몸으로 받아야 했다. 김상현의 일탈행위에 대한 보고를 받은 구단이 이 사실을 조 감독에게 곧바로 알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구단은 이 문제를 라인업 제출 전에 인지했고, 충분히 바로 잡을 시간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이 ‘현장의 책임자’라고 부르는 감독은 정작 책임질 기회조차 없었다. 경기 시작 후에야 진상을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튿날 조 감독은 초유의 성추문으로 인해 수원 kt위즈파크에 결집한 취재진 앞에서 “입이 열개라도 할 말이 없다. 책임을 통감한다”며 고개를 숙여 사과했다.
kt는 이후 구단 명의의 사과문을 발표하지 않았다. 임의탈퇴 결정과 함께 사장의 사과 메시지가 담겼을 뿐이다. 오히려 감독에 이어 선수단이 나서 공식사과를 하는 이해할 수 없는 촌극을 벌였다. 선수단이 자발적으로 이런 행동을 했다고 보는 이는 아무도 없다. 감독에 이어 선수까지 앞세운 셈이다.
NC도 이태양의 자수를 유도하고 검찰 수사에 적극 협조했다고 하지만, 최일선에 있는 책임자인 감독에겐 거짓말과 침묵을 요구했다. KBO리그의 잇따른 추문만큼이나 감독들 뒤에 숨는 구단들이 참으로 부끄럽다.
이명노 기자 nirvana@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