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하인드 베이스볼] ‘험지’ 택한 이대호, ‘안전장치’ 있다

25인 로스터 진입 실패 시 방출 통해 FA 될 듯
일본서 다 이룬 이대호, KBO리그 유턴 가능성도

마이너리그 계약, 스프링캠프에서의 진짜 생존 경쟁이라는 ‘험지’를 선택한 이대호(34·시애틀)에게 ‘안전장치’는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개막 25인 로스터에 진입하지 못할 경우 FA(프리에이전트) 자격을 얻는 조건을 얻어낸 것으로 보인다.

이대호의 계약은 석연치 않은 부분이 많았다. 선수 본인이 5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하면서 협상 과정에 대해 “계약할 때 마이너리그 계약이라는 얘기가 나오지 않았다”고 말했지만, 현재 그의 신분은 ‘비-로스터 초청선수(Non-Roster Invitees)’다. 굳이 메이저리거, 마이너리거를 구분하자면 후자다.

사실 이대호의 시애틀행이 보도되는 과정에서 이에 대한 오해가 계속 됐다. 팩트는 시애틀이 그의 계약을 ‘마이너리그 계약’으로 발표했고, ‘메이저리그 스프링캠프 초청선수 자격’을 줬다는 것이다. 1년 최대 400만달러 등의 조건은 그가 메이저리그에 승격했을 때나 발동 가능하다. 이런 형태의 계약은 대개 ‘스플릿 계약’으로 불린다. 메이저리그에 승격했을 때와 마이너리그로 떨어졌을 때를 구분해 계약조건을 미리 분리해 놓은 계약이다.

이제 이대호에게 남은 숙제는 실력으로 같은 초청선수 신분인 경쟁자들, 그리고 40인 로스터 내에 있는 경쟁자들을 제치는 것이다. 자신감을 내비쳤으나 만만치 않은 과정이다. 계약이 늦어지면서 비자 발급 등의 절차까지 함께 지연되면 자칫 스프링캠프에서 자신의 진가를 보여줄 시간도 잃어버릴 수 있다. 처음부터 기회가 제한적일 가능성도 있고, 무엇보다 비자 발급이 끝난 뒤에야 시범경기에 나설 수 있기 때문이다.

가장 좋은 시나리오는 시범경기에서 눈도장을 찍어 메이저리그 개막 로스터에 진입하는 것이다. 그러나 만약 이것이 여의치 않을 경우 이대호에겐 세 가지 길 앞에 놓여지게 된다.

우선 마이너리그에서 활약하면서 메이저리그 진입의 기회를 다시 엿보는 것이다. 둘째, 일본프로야구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소프트뱅크의 제안을 뿌리치고 미국으로 건너간 마당에 마이너리그에 떨어지니 일본을 쳐다본다는 모양새로 비쳐질 수 있다. 일본 구단이나 일본 내 여론이 탐탁치 않게 여길 수 있다. 그렇다면 마지막 길은 KBO리그로 복귀하는 것이다.

이대호는 2014시즌을 앞두고 소프트뱅크와 2+1년 계약을 한 바 있다. 계약상 올해 ‘+1년’ 계약이 남아있었다. 그러나 처음 계약을 맺을 당시 ‘2016시즌을 앞두고 메이저리그 팀과 계약 시 조건 없이 풀어준다’는 조항을 삽입했다. 미국으로 건너가면서 소프트뱅크와의 계약은 정리가 된 셈이다.

이런 상황이기에 메이저리그 개막 로스터 진입 실패시에는 일본이 아닌 KBO리그 복귀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일본야구는 과거 이승엽(삼성)이 뛰던 시절과 달리, 주목도가 떨어진다. 팬들은 추신수(텍사스)와 류현진(LA 다저스), 강정호(피츠버그)를 통해 수준 높은 메이저리그로 눈을 돌린 지 오래다. 게다가 메이저리그와 달리, 일본프로야구는 KBO리그와 경기 시간도 겹쳐 상대적으로 주목받기 힘든 구조다.

이대호는 일본에서 우승과 재팬시리즈 MVP(최우수선수) 등 이룰 것은 다 이뤘다. 부와 명예를 얻었다. 이러한 복합적인 이유로 일본프로야구를 ‘벗어나겠다’는 의지가 강했다면, 시애틀 구단의 다소 납득하기 힘든 계약 조건도 받아들일 수 있었는지 모른다. 자존심이 강한 선수이기에 도전이 이상해 보이는 건 아니다.

이대호의 국내 에이전트사인 몬티스 스포츠에선 “본인 의사에 반해 마이너리그에 내려가는 일은 없다. 이에 대비한 조건이 있다”고 밝혔다. 개막 로스터에 들어가지 못하면 방출돼 다시 ‘자유의 몸’으로 풀리게 되는 조건이라는 의미로 해석이 가능하다. 현실적으로 미국 내 타 구단 이적이 힘들다고 보면, 일본리그로 돌아갈 수도 있지만 ‘KBO리그 유턴’이라는 빅뉴스가 터질 가능성도 크다.

시범경기가 모두 끝나는 3월 말, 그는 어떤 위치에 서있을까. ‘안전장치’가 발동될까, 아니면 당당히 빅리거로 올라설까.

이명노 기자 nirvana@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