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글의 법칙’의 잘못된 우선순위? ①시청률 ②출연진 안전 ③진실한 방송

입력 2013-02-15 11: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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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제공ㅣ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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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글의 법칙’의 조작 논란이라는 폭풍이 한 차례 휩쓸고 간 자리가 어쩐지 씁쓸하다.

논란의 발단은 ‘정글의 법칙’ 출연자인 박보영의 소속사 김상유 대표가 SNS에 적은 글에서부터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 글 자체의 문제보다도 언젠가는 터졌어야 할 ‘근본적인 문제’가 진짜 발단이었다.

김 대표는 지난 7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정글의 법칙’ 프로그램을 “개뻥 프로그램”이라고 말하며 “드라마보다 더한다. 리얼버라이어티 플러스 다큐? 먹기 싫은 거 억지로 먹이고 동물들 잡아서 근처에 풀어놓고 리액션의 영혼을 담는다고? 다음엔 뉴욕 가서 센트럴파크에서 다람쥐 잡아라. 여행가고 싶은 나라 골라서 호텔에서 밤새 맥주를 1000달러나 사서 마시고 이젠 아주 생맥주집 대놓고 밤마다 술 먹네! 이게 최고의 프로그램상이나 주고”라는 글을 올렸다.

이 글의 파장은 어마어마 했다. 온라인상에는 ‘정글의 법칙’에 대한 실망과 분노의 글, 조작 의혹으로 보이는 증거들이 잇따라 올라왔다. 이에 김 대표와 SBS 측은 즉각적으로 해명글을 올리며 ‘김 대표의 경솔했던 행동일 뿐’, ‘김 대표의 글은 사실무근’, ‘정글의 법칙의 모든 내용은 사실’이라는 입장을 전했다.


●무의미한 사과와 해명들

언론과 누리꾼들은 이같은 해명에도 조작 의혹들을 속속들이 제기하며 진실을 요구했다.

이에 ‘정글의 법칙’ 제작진 측은 11일 공식 입장을 발표, “근거 없는 음해성 SNS로 촉발된 논란에 대해 당사자가 수차례 본인의 잘못을 사과하고 이해를 구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진정성을 오해 하는 글들이 있다”며 논란의 원인이 김 대표에게 있음을 다시 한번 꼬집었다.

또 “일부 네티즌의 단편적인 지역정보를 바탕으로 확대 해석된 기사들이 나오면서 정글의 법칙이 지향하는 기본 취지가 왜곡될 우려가 있어 이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자 한다”며 “프로그램의 일부로 등장하는 부족들을 촬영하는 경우에도 제작진은 최대한 전통문화와 생활방식을 고집하고 있는 부족들을 엄선해서 촬영해 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를 위해 방송사상 최초로 수십 명의 스태프와 출연진들이 밀림 속과 시베리아 벌판, 사막을 마다하지 않고 이들을 직접 찾아가 몸으로 부딪히며 함께 생활하며 촬영했다. 물론 이들 중에는 마을을 떠나 문명화, 도시화 된 사람들도 있겠지만 이들을 따로 보여주지 않은 것은 이들의 존재를 숨기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촬영의도와 달랐기 때문이다”고 프로그램에 대한 자부심과 논란에 대한 명백한 입장을 표명했다.

하지만 이같은 ‘정글의 법칙’ 제작진의 관철된 표명에도 논란의 불씨는 점점 커졌다. 당연한 결과였다.

언론과 누리꾼들은 ‘정글의 법칙’ 프로그램 의도나, 출연진과 제작진의 고생 자체에 의심을 품은 것이 아니다. 온라인상에 제기된 단편적인 조작 의혹들에 구체적인 답변을 원했다.
사진 출처ㅣSBS ‘정글의 법칙’ 캡처

사진 출처ㅣSBS ‘정글의 법칙’ 캡처


위협적으로 그려진 와오라니 부족의 실제 모습, 부족 결혼식의 진위 여부, 오지라고 연출한 길의 위험성 여부 등에 대한 궁금증에 단순히 ‘근거 없는 비난 삼가’라고 말할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답변을 전했다면 사태는 잠잠해졌을 것이다.

그치지 않는 논란에 결국 ‘정글의 법칙’ 연출자인 유윤재, 이지원, 정준기 PD가 13일 오전 시청자 게시판에 직접 각각의 의혹에 대한 구체적인 답변을 남겼다.

이들은 답변과 함께 “프로그램에서 자세한 설명을 해야 했으나 그렇지 못하고, 실제 사실보다 다소 과장하여 표현한 점이 있었던 것은 예능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해 좀 더 흥미롭게 편집하고자 하는 제작진의 과욕에서 비롯된 것이라 생각한다”라고 사과 뜻을 전했다.

논란이 불거진 지 약 일주일 만의 시청자들이 원한 사과였다.


●진실보다 앞선 안전, 안전보다 앞선 시청률

이날 사과에서 ‘정글의 법칙’ 연출진은 ‘흥미를 위해서’라는 이유에 덧붙여 ‘출연자와 스태프들의 안전’을 또 다른 연출 과장 이유로 꼽았다.

연출진은 “오지에서 많은 출연자와 스태프들이 수십일 동안 견뎌야 하는 최악의 조건에서 제작을 해야 하기 때문에 그 리얼리티는 어느 정도 ‘통제 가능한’ 리얼리티일 수밖에 없다는 점 시청자 여러분께 이해를 구한다”며 “아무도 가보지 않은 곳, 아무도 만나본 적 없는 사람을 아무 준비도 없이 마주한다는 것은 연출자로서 선택할 수 없다. 출연자와 스태프들의 안전을 지켜야 하는 의무도 있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이후 온라인 상에서도 이같은 해명을 인정한 듯 프로그램의 안전불감증에 대해 언급되며 지난 1999년 ‘도전 지구탐험대’라는 프로그램에서 오지 탐험 중 말라리아에 감염돼 사망한 김성찬, 2005년도에는 같은 방송에서 아나콘다에게 물려 큰 위기를 겪은 정정아가 재조명 됐다.

이에 ‘정글의 법칙’이 안전을 택하며 연출상 과장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에 시청자들의 이해를 어느 정도 구하게 됐다.

‘정글의 법칙’이 안전을 우선순위로 선택한 것에는 어느 누구도 비난하지 않는다. 하지만 시청률과 흥미로운 연출이라는 우선순위가 그 ‘안전’을 왜곡하고, ‘진실’을 포장해버렸다는 사실, 그리고 일주일 만에 이뤄진 뒤늦은 사과는 씁쓸함을 남긴다.

동아닷컴 원수연 기자 i2overyou@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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