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만 관객을 모으며 한국영화의 중흥을 이끈 주역들의 이야기는 힘겨운 제작 현실에 맞서는 고단한 싸움이면서도 이야기꾼의 보람이기도 하다. 8일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천만 영화를 통해 바라본 한국영화 제작의 현실과 전망’ 포럼에 참석한 강우석 감독·강제규 감독·최용배 대표·윤제균 감독·원동연 대표·김민기 대표·최재원 대표·김한민 감독·포럼 사회자 김형준 대표·전양준 아시아필름마켓 운영위원장(왼쪽부터). 사진제공|부산국제영화제
영화 ‘해운대’로 1145만 관객을 동원한 윤제균 감독의 그 짜릿한 감흥이다. 하지만 지금은 제작사 경상비를 위해 바쁘게 뛰어다닐 수밖에 없다며 웃었다. 8일 부산 해운대 벡스코에서 열린 제19회 부산국제영화제 아시안필름마켓의 포럼 ‘천만 영화를 통해 바라본 한국영화 제작의 현실과 전망’을 마친 뒤였다.
이날 포럼에는 2004년 첫 1000만 영화인 ‘실미도’의 강우석 감독을 비롯해 최근 ‘명량’의 김한민 감독까지, ‘1000만 클럽’ 제작자들이 참여했다.(모두 10편의 1000만 영화 중 ‘왕의 남자’ 이준익 감독, ‘도둑들’의 케이퍼필름 안수현 대표는 신작 촬영 일정으로 참석하지 못했다) 가슴에 노란 리본을 단 이들은 영화에 얽힌 다양한 이야기를 가감 없이 전하면서 웃음을 자아내는 한편 힘겨운 제작 현실과 미래에 대해 진중한 의견을 나눴다.
● “한국영화의 힘? 뻔뻔함, 그리고 관객”
‘실미도’의 기획과 제작에 참여한 김형준 한맥문화 대표의 사회로 진행된 포럼에서 강우석 감독은 “저게 뭐지?라는 인상”을 줄 만큼 “뻔뻔하고 새로운 이야기”가 필요함을 역설했다. 중국 대학생들이 “그런 소재로 어떻게 영화를 만드느냐고 물었다”면서 “그렇듯 처음 보는 느낌으로 관객의 감정을 제대로 건드리는 작품”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변호인’의 최재원 위더스필름 대표도 “특별함” 속에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고 밝혔다. 김한민 감독은 “‘괴물’의 봉준호 감독이 서울, ‘해운대’의 윤 감독이 부산 등 고향에서 각각 영화를 찍었지만 전남 순천이 고향인 난 팔아먹을 게 없어 이순신의 얘기를 했다”고 말해 폭소를 자아내기도 했다.
이처럼 1000만 영화는 그만한 특별함을 갖고 있다. 최재원 대표는 ▲관객의 무의식과 조우하는 공감의 형성 ▲정서의 문화적 표현 ▲세대를 불문하는 문화적 체험의 확대 등이 1000만 영화의 ‘의미’라고 말했다.
● “투자 못 받으면 거리 나앉을 판…1000만 이후 다시 빚”
하지만 이들의 영화 제작이 처음부터 순조로웠던 건 아니다.
강제규 감독은 ‘쉬리’로 돈을 벌어 ‘태극기 휘날리며’에 “모든 걸 탈탈 쏟아 부었다. 투자를 받지 못하면 길거리에 나앉을 판이었다”고 돌이켰다. ‘괴물’의 최용배 청어람 대표는 “한강의 괴물 이야기가 특별할 거라고 생각했다. 시나리오나 감독, 배우 등이 투자를 받기에 유리한 ‘스펙’이라 믿었지만 정작 주인공인 괴물 때문에 투자자들이 주저했다”고 회상했다. 윤제균 감독은 “코미디 감독의 블록버스터라니, 재난영화가 아니라 영화가 재난이라는 소문이 돌았다”고 말해 눈길을 모았다.
그 어려운 과정을 거쳐 제작자들은 1000만 돌파로 상당한 수익을 얻었다. 하지만 이제 이들에게 남은 건 빚 혹은 여전히 힘겨운 제작 현실이다. 수익은 쌓인 빚을 갚는 데 쓰고 새 영화를 만들다보니 또 빚을 졌기 때문이다.
“아마도 제작자의 대부분이 이젠 빚 밖에 없을 거다. ‘실미도’ 때에도 제작사(시네마서비스)는 적자였다”며 웃음을 자아낸 강우석 감독의 말에 강제규 감독은 ‘태극기 휘날리며’ 이후 “몇 년이 지나 빚이 쌓였다. 그 결정타는 ‘마이웨이’였고 이제 영화를 할 수 없겠다 생각했다”고 말했다.
● “대기업 편중된 시장, 참신한 기획 필요”
이런 체험은 한국영화가 처한 시스템의 구조에서 기인한다고 제작자들은 입을 모았다. ‘광해, 왕이 된 남자’의 원동연 리얼라이즈 대표는 기획에서 상영까지를 장악한 대기업 수직계열화의 폐해를 지적하고 ▲스크린 독과점 방지 ▲표준계약서 정착 ▲부가판권 시장을 포함한 온오프라인 통합전산망 확보 ▲한국영화의 글로벌화 등 과제를 꺼냈다. 최용배·‘7번방의 기적’의 화인웍스 김민기 대표는 “대기업이 독과점 지위를 남용하는 상황”이라면 “한국영화 암흑기가 올 것”이라며 “창의성과 함께 제도와 체제, 공정한 환경을 강화하자”고 말했다.
현장 스태프 등 영화계 종사자들의 척박한 현실도 언급됐다. 한 여성 스태프가 “현장에서 일할 때 월급이 20만원이었다”며 안정적 수입을 통한 전문성 확보 문제를 제기하자 윤제균 감독은 “종사자들이 안정적으로 가계를 꾸릴 수 있는 직장을 만들자”고 제안했다. 김한민 감독은 “영화 제작의 현실과 비전이 다양하게 만나 역량을 강화하자”면서 “영화 제작사의 산 증인으로서 제작사의 기능을 더 강화하는 데 도움을 달라”며 강우석 감독을 지목했다.
이에 강 감독은 “일개 회사가 대기업 자본과 싸우기란 쉽지 않다”면서 “대기업과 또 붙었다가 이번에 죽으면 노숙자가 된다”면서 ”후배들도 꿈과 열정으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윤여수 기자 tadada@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 @tadada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