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엄마의 약속’ 리허설.
딸을 출산한 다음날 엄마는 위암 말기 6개월 시한부 판정을 받는다. 왜 내게 이런 일이. 엄마는 갓 태어난 딸에게 약속을 한다. 자신의 발병으로 축복받지 못한 아이를 위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돌잔치를 해주겠노라고. 그날까지는 무슨 일이 있어도, 이 세상에 살아남겠노라고.
2007년 10월. 엄마는 아기가 태어난 지 꼭 1년 10일 만에 눈을 감았다. 약속했던 돌잔치는 취소해야 했지만, 엄마는 병실에서 딸의 첫 생일을 축하해주었다. 세상에서 가장 슬프고 무거웠던 약속은 그렇게 지켜졌다.
엄마 고 안소봉 씨와 아빠 김재문 씨, 딸 소윤 양의 눈물겨운 투병 이야기는 두 편의 TV 다큐멘터리로 제작돼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다.
극단 하늘연어의 뮤지컬 ‘엄마의 약속’은 이들 가족의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한 작품이다. 조재국 프로듀서는 ‘첫째는 감사, 두 번째는 고마움, 세 번째는 나누자고 말하고 싶어서’라고 제작의 이유를 말하고 있다.
대학로 스타시티 2관의 좌석이 거의 찼다. 앞쪽에는 특이하게도 고등학생들로 보이는 10대 남녀들이 20여 석 가까이 차지하고 있었다.
‘엄마의 약속’에는 5명의 배우가 출연한다. 이날 고 안소봉 씨는 박진, 남편 김재문 씨 역은 정윤식, 친정엄마 영순은 전승혜, 의사역은 황재열이었다. 성장한 딸이라는 연극적 장치를 위해 유주혜가 소윤을 맡았다.
뮤지컬 ‘엄마의 약속’ 리허설.
이날 공연에서 박진은 활기찬 경상도 처녀가 세 살 연하의 남편을 만나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사랑하고, 놓아야 했던 한 여인의 기구한 삶을 뼈가 저리도록 절절히 연기했다. 고통에 몸부림치는 아내에게 등을 돌린 채 “하나님! 하루하루 사는 게 기도인데, 어떻게 무슨 기도를 더 해야 한단 말입니까”하던 정윤식의 분노와 슬픔을 뭐라 표현해야 할까.
혼자 의자에 앉아 죽어가는 딸을 생각하며 친정엄마 전승혜가 ‘그랬더라면’을 부르는 장면에서 관객은 모두 숨을 낮췄다. 곳곳에서 나직한 흐느낌 이 들려왔다. 앞쪽 10대 학생들이 연신 눈가를 훔치는 모습이 어둠 속에서도 선명히 보였다.
슬픈 이야기지만 긍정과 희망을 얘기하고 싶었다. 죽음을 앞둔 어느 날, 병원을 빠져나온 가족은 멋진 레스토랑에 앉아 값비싼 요리를 주문한다. 어쩐지 최후의 만찬을 떠올리게 하지만 모두들 행복한 얼굴을 하고 있다. 이윽고 가족들은 두 손을 모아 ‘감사합니다’를 합창한다. 머뭇하던 소봉 씨는 결국 “암을 주신 것 감사합니다”라고 고백한다.
공연을 보며 몇 번이나 울컥했던 작품. 한 바탕 슬픔이 쓸고 간 자리에는 밑도 끝도 없는 고마움만이 남는다. 두 번째는 주책없이 눈물을 보이게 되지 않을까 우려되지만, 꼭 한 번 다시 보고 싶은 작품이다.
10월 1일~12월 31일|대학로 스타시티2관|문의 하늘연어 02-547-6858
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