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플러스]‘써니’ 아빠는 모르는 엄마의 ‘찬란’했던 학창시절

입력 2011-05-17 15:50:33
카카오톡 공유하기
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영화 \'써니\'

"그냥 살지 마." (하춘화)
"이 나이에 뭘 그냥 사는 거지" (임나미)

영화 '써니'는 남편의 아내로, 아이들의 엄마로 이름 석자 불러주는 곳 없이 그저 그렇게 살아가는 평범한 40대 주부들에게 그렇게 살지 말라고 이야기한다.

현재의 임나미(유호정)와 과거의 임나미를 교차적으로 보여주면서 궁상맞은 지금의 나보다 찬란하고 화려했던 과거의 나를 보여주려고 노력한다.

우리네 어머니들의 학창 시절은 어땠을까. 과연 이 질문에 서슴없이 대답을 술술 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렇게 우리는 엄마의 과거가 궁금하지 않았고 그냥 당연히 엄마일 뿐이었다.

하지만 영화는 남편 눈치, 자식 눈치, 시댁 눈치 보는 궁상맞은 우리 어머니에게도 당돌했던 10대가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 어린 시절 친구들아 어디에 있니?

잘 나가는 사업가 남편과 고등학생 딸, 남부러울 것 없이 살던 임나미는 우연히 말기 암으로 입원해 있는 고등학교 친구 하춘화(진희경)를 만나게 된다.

나미와 춘화는 고등학교 시절 '써니'라는 칠공주파였고, 나미는 삶이 2개월도 안 남은 춘화의 부탁으로 그 시절 써니 멤버들을 찾아 나선다.

4월 18일 서울 왕십리 CGV에서 열린 영화 ‘써니’ 언론시사회 후 진행된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출연배우들과 감독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보미, 박진주, 김민영, 남보라, 강소라, 민효린, 강형철 감독, 유호정, 홍진희, 진희경 (왼쪽부터). 임진환 기자 photolim@donga.com


전라도 벌교 전학생 나미는 긴장하면 터져 나오는 사투리 탓에 첫 날부터 날라리들의 놀림감이 된다. 이때 범상치 않은 포스의 친구들이 도와주는데, 그들은 바로 진덕여고 의리짱 춘화, 쌍꺼풀에 목숨 건 못난이 장미, 욕배틀 대표선수 진희, 괴력의 문학소녀 금옥, 미스코리아를 꿈꾸는 사차원 복희, 도도한 얼음공주 수지다.

나미는 이들의 새 멤버가 되어 경쟁그룹 '소녀시대'와 맞짱 대결에서 사투리 욕 신공으로 위기상황을 모면하는 대활약극을 펼친다.

일곱 명의 단짝 친구들은 언제까지나 함께 하자는 맹세로 칠공주 '써니'를 결성하고 학교 축제 때 선보일 공연을 야심차게 준비하지만 축제 당일 뜻밖의 사고가 일어나 뿔뿔이 흩어진다.

그로부터 25년 후, 친구들을 찾아 나선 나미는 그 시절 눈부신 우정을 떠올리며 가장 행복했던 순간의 자신과 만나게 된다.

과거를 되짚어 가며 첫사랑의 기억을 떠올렸고, 친구들과 우르르 몰려다녔던 추억을 되살렸다.

다소 밋밋해 보일 수 있는 스토리지만, 스크린 가득 펼쳐지는 1980년대의 모습은 그 시대를 모르는 사람에게도 어떤 묘한 향수에 젖게 만든다.

▶ 80년대 군사정권 시절에 맞서는 젊은이들의 향수…

써니는 스크린 가득 군사 독재, 민주화 투쟁, 교복 자율화 등 80년대의 특수성을 전진 배치했다. 특히, 대학생 시위대와 전경들이 격돌하는 틈에 끼어 '써니' 파와 '소녀시대' 파가 싸우는 장면은 독특하게 튀면서도 배경 음악과 함께 절묘하게 잘 어우러진다.

혹자는 당시 시대상을 무리하게 반영한 것은 아닌가하는 의문을 제기하기도 하지만, '과속스캔들' 출신 강형철 감독의 의도가 나름 재기발랄하게 드러나는 부분이었다.

또 소피 마르소가 주연했던 '라붐'에서 남자가 여자 주인공에게 헤드폰을 씌워주는 장면이나, 시간에 맞춰 라디오를 들으며 테이프에 녹음하던 모습, 첫 사랑에 실패한 뒤 처량하게 덕수궁 돌담길을 걷는 주인공 나미, LP판을 돌리는 DJ가 있던 음악다방 등 영화는 그 때 그 시절의 감성을 충분히 자극한다.

하지만 써니는 단순히 향수만 자극하는 코미디로 끝나지 않는다. 영화는 나미가 순차적으로 자아를 찾아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오랜만에 모교를 찾은 어른 나미가 25년 전 어린 나미와 조우하고, 첫 사랑에 실패한 어린 나미를 어른 나미가 감싸 안아주는 장면은 판타지적이면서도 아름답다. 주인공은 어린 자신을 기억하고 달래며 온전히 자신의 인생의 주인공이 자신임을 깨닫게 된다.

4월 18일 서울 왕십리 CGV에서 열린 영화 ‘써니’ 언론시사회에서 상영이 끝나자 배우 진희경이 눈물을 훔치고 있다. 임진환 기자 photolim@donga.com


▶ 과연 '써니'의 과거가 찬란하기만 했을까

하지만 코믹한 요소와 뮤지컬 적인 요소를 곳곳에 배치하고 지루하지 않은 교차 편집 기법으로 즐거움을 선사한 영화임에도 아쉬운 점은 칠공주파 '써니'의 과거가 과연 찬란하기만 했느냐에 있다.

범죄까지는 저지르지 않는 조금 덜 불량한 서클이지만, 써니 패거리들은 피를 보는 패싸움을 벌이고 입만 열면 욕지거리를 해대고, 미성년자는 출입할 수 없는 곳에서 술을 마시는 방황하는 젊은이들이다.

또 다 큰 어른들이 딸의 이지메를 복수해주기 위해 여고생들과 벌이는 난투극은 웃고 넘기는 코미디 영화라고 해도 다소 무리수를 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또 소녀들이 셀프카메라 방식으로 자신의 꿈을 말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 장면은 과거가 아름다웠음을 말하기 보다는 상상한 미래가 박살나 버렸다는 걸 말하는 것 같아 슬프다. 마치 산산조각 나버린 꿈에 대한 한풀이 정도로 보일 수도 있겠다.

▶ 써니는 맛깔 나게 버무려진 토속적인 '비빔밥'

그럼에도 영화는 '코믹과 감동'이라는 재료를 잘 버무려 유쾌하고 꿈 많았던 어린 소녀들이 20여년 후 평범하게 혹은 무기력하게 살아가는 삶에서 느껴지는 쓸쓸하고 허전한 정서를 관객의 몫으로 전이시켰다.

그리고 일곱 배우들의 특징을 잘 살려 이들에게도 고교시절 자신만의 찬란한 역사가 있었음을 보여주며 관객들을 웃고, 울게 했다.

이렇게 영화 '써니'는 소소한 감동과 코믹적인 요소를 적절히 버무려 우리 어머니들의 인생을 다시 돌아보게 했다는 점에서 충분히 가치 있는 영화다.

동아닷컴 이슬비 기자 misty82@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뉴스스탠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