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보강. 스포츠동아DB
이미 언론을 통해 꽤 알려진 바, 김보강은 어려서부터 완벽한 음악적 환경 속에서 자랐다. 할머니는 판소리를 하던 국악인이요, 아버지와 삼촌, 고모는 가수였다. 뮤지컬 배우로 데뷔하기 전, 김보강은 삼촌의 뒤를 이어 밴드의 보컬을 맡기도 했다.
김보강은 요즘 뮤지컬 ‘환상의 커플’에 ‘장철수’로 출연 중이다. 2006년 오지호, 한예슬이 출연해 대박을 친 MBC드라마 ‘환상의 커플’의 뮤지컬 버전이다.
김보강은 이 작품에서 남자 주인공 ‘장철수’를 맡았다. 뮤지컬계의 거물배우 김수용과 더블 캐스팅이다.
5월 10일 막을 올렸으니 벌써 한 달 하고도 보름이 넘도록 ‘장철수’로 살고 있다. 공연 도중 김수용이 심한 발목 부상을 입고 무대에서 내려오는 바람에 혼자서 두 사람 몫을 해야 했다.
다행히 김수용이 지난주부터 복귀해 혼자 북 치고 장구 쳐야 했던 김보강으로선 한 시름 덜게 됐다. 이 인터뷰는 김수용이 아직 무대로 복귀하지 못한 시기에 이루어졌다.
“캐릭터를 많이 입게 됐다고 해야 하나요. 편해요. 그런데 김수용 배우가 다쳐서 3주 정도 혼자 무대에 서고 있어요. 사실 저도 완벽한 상태는 아니에요. 뒷목에 담이 와서. ‘마리아 마리아’, ‘올슉업’도 체력 소모가 컸는데, 이 작품도 쉬는 타임이 없이 흘러가다보니 만만치 않네요.”
인터뷰 장소는 서울 동숭동 동숭아트센터 1층 카페. 스윽 나타난 김보강을 보고 살짝 놀랐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체구가 크고 당당했다. 팔뚝이 기자 허벅지만하다. 일본 만화 ‘북두신권’의 주인공이 툭 튀어 나온 것 같다.
- 관객 반응은 좀 어떻습니까.
“객석이 많이 차고 있는데, 이제는 마음을 열고 보시는 것 같아요. 처음엔 뭔가 하나만 삐끗해도 눈치가 보일 정도였는데. 웃는 관객이 많아졌어요. 재관람하시는 분도 간혹 보이시고.”
- 재관람인지 어떻게 알죠.
“희한하게 객석이 잘 보여요. 앞에 네 줄 정도 빼면 다 보여요. 몇 번씩 보시는 분들은 눈에 띄는 거죠. 그 만큼 저도 여유가 생겼다고 해야 하나. 흐흐”
- ‘한번 떠나간 자장면은 돌아오지 않아’ 등 명대사로 알 수 있듯, 극 중에서는 자장면이 주요 소재로 쓰이는데요.
“사실 소품은 자장면이 아니라 X파게티예요. 연습할 때 농담 삼아 배우들끼리 ‘공연장 근처 중국집을 하나 뚫자’고 했죠. 찾아가서 ‘대놓고 홍보해 줄 테니 공연 때 자장면 좀 협찬해 달라’하자는 거였죠. 그런데 사실 극 중 자장면을 먹기가 불편하고, 그렇게까지 많이 필요하지도 않아요. X파게티도 2인분 끓여서 4개로 나누어 사용하거든요. 그것도 많이 남아요.”
- 실제로 먹긴 합니까.
“물론이죠. 진짜로 먹어요. 지금은 … 냄새도 맡기 싫습니다.”
- ‘환상의 커플’에는 두 명의 ‘장철수’가 있죠. 그런데 두 사람이 많이 다릅니다. ‘겸손 장철수(김수용)’와 ‘극단 장철수(김보강)’로 불린다는 얘기가 있어요.
“흐흐 … 김수용 배우와 저는 정 반대죠. 성격도 다르고, 체구도 다르고, 피부색도 달라요. 김수용 배우야 겸손하고 예의바른 배우로 소문이 자자하신 분이고, 전 좀 이래저래 극단적인 데가 많죠. 피부도 전 가무잡잡한데 김수용 배우는 엄청 희잖아요. 둘이 서 있으면 흑백 바둑알 같아요.”
“드라마를 기억하는 분들은 ‘오지호’를 많이 떠올리죠. 그런 점에서 처음에는 ‘김보강이 더 잘 장철수에 어울리겠다’라는 소리를 들었어요. 다혈질이란 점도 비슷하고.”
- 김수용 배우가 극 중 빨래 밟는 장면에서 발목을 다쳐 와병 중이죠. 김보강 배우도 부상을 당해본 적이 있는지.
“많죠. 전 이상하게 많이 다쳐요. ‘올슉업’에서 ‘채드’할 때, 슬라이딩 장면이 있거든요. 허벅지가 다 뜯어져서 피가 철철 났죠. 그런 줄도 모르고 그냥 했어요. 치료요? 집에 가서 소독약 바르고 잤죠.”
“역시 ‘올슉업’ 때인데 움직이는 세트에 그만 발이 낀 거예요. 발톱이 덜렁덜렁해졌죠. 뭐 또 소독약 뿌리고 ….”
“‘마리아 마리아’가 대박이었죠. 마지막 십자가 신이었는데요. 그 장면은 무대가 이상할 정도로 어두워요. 조명 자체가. 형광 테이프 보고 자리를 찾아가는데 그만 구조물을 정면으로 들이받은 거죠. 피가 철철 흘렀어요. 그 다음 신이 고문 신이었는데, 아주 자연스럽게 고통스러운 연기가 나왔죠. 크크! 아직도 여기 그때 다친 자국이 있어요(김보강은 코의 상처를 보여 주었다).”
김보강은 2010년 ‘올슉업’ 이후 1년 간 활동을 쉬었다. 무엇을 하고 지냈을까.
“푹 쉬었어요. 기획사와의 계약기간도 거의 끝났고.”
뭔가 할 말이 더 있는 듯싶었다. 노트북 자판에 가만히 손을 얹고 기다렸다. 아주 잠깐의 침묵이 흐른 뒤, 그가 말을 이었다.
“혼돈스러운 때였어요. ‘나는 배우냐, 노래하는 사람이냐’ 정체성에 대한 혼란이 있었죠. 그래서 일단 일을 쉬어본 거예요.”
“간간히 ‘알바’를 하고 살았어요. 행사를 다니고, 축가도 부르고.”
“힘든 일을 일부러 찾아서 했어요. 모자 눌러쓰고 노량진 수산물 시장에서 짐을 나르고, 고깃집에서 서빙도 해봤죠. 그냥 경험을 쌓고 싶어서. 앞서도 말씀드렸지만 제가 약간 극단적인 성격이라서요. 물론, 금전적으로도 힘들었고.”
김보강. 스포츠동아DB
- 뮤지컬에 드라마에 그간 돈은 꽤 번 것 아닙니까.
“(기획사) 신인이어서 … 제 주머니에 들어온 것은 별로 없었어요.”
“연기를 따로 배운 적이 없어요. 작년까지만 해도 감으로 한 거죠. 1년 동안 개인적으로 연기연습을 했어요. 영화도 많이 봤죠. 하루에 거의 한 두 편씩은 본 것 같아요. 사람들 속에 섞여 살다 보니 많이 배우게 되더라고요.”
김보강은 ‘환상의 커플’ 이후 ‘내 이름은 김삼순’으로 무대에 오른다. 역시 동명의 드라마를 무대화한 작품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연극이다. 김보강으로서는 첫 연극작품이다.
“연기적으로 늘고 싶은 게 첫 번째 이유죠. 이제는 연기에 대해 좀 알고 싶어요. ‘삼순이’는 진지한 작품이 아니고 가벼운 작품이에요. 그래서 오히려 도전할 만하다고 생각했어요. 사실 예전부터 연극은 하고 싶었어요. 게다가 MBC 작품이기도 하잖아요? 하하!”
김보강은 2008년 MBC 드라마 ‘누구세요’로 TV에 데뷔했다. 그래서인지 MBC에 대한 남다른 애착이 있어 보였다. ‘환상의 커플’도 MBC의 드라마를 뮤지컬로 만든 작품이다.
- 작품 선정을 할 때 개인적인 잣대가 있을까요.
“잣대라기보다는 솔직히 말해 좋은 작품이 많이 들어왔었고, 너무나도 하고 싶었지만 회사가 막아서 놓친 작품이 많았어요. ‘지나간 자장면은 돌아오지 않듯(환상의 커플 중 유명 대사)’ 당시는 ‘내 것이 아닌가 보다’하고 쿨하게 넘겼는데, 지금 생각하면 너무 아쉬워요.”
김보강은 당시 놓친 대표적인 작품의 이름을 댔지만, 본인이 원하지 않아 여기서는 밝히지 않기로 한다. 외국 라이선스 작품이었다.
- 몸짱배우로 소문이 자자합니다. 실제로 보니 진짜 대단한 몸이로군요. 어떻게 관리를 하길래.
“몸짱배우는 무슨 …. 꾸준히 닭가슴 살을 먹거나, 운동을 챙겨서 하는 스타일이 아니에요. 운동은 좋아하죠. 이것저것 좋아해요. 등산도 좋아하고. 쉬는 동안 100일 등산을 계획하고 시도한 적이 있었어요. 단화를 신고 관악산같은 바위산을 오르다가 무리가 왔죠. 49일째 아킬레스건을 다쳤어요. 등산은 포기하고 나머지 100일을 채우기 위해 자전거를 탔죠. 하여튼 ‘몸짱이 되어야지’하는 스타일은 아니에요. 먹을 거 다 먹어요. 소주도 잘 먹고.”
- 음악 집안이라 뮤지컬을 하는 데에 도움이 많이 될 것 같습니다만.
“글쎄요. 집안 어른들이 이상하게 뮤지컬을 싫어하세요. 고모같은 경우는 예전에 뮤지컬 작품 섭외가 많이 들어왔는데 다 거절하셨대요. 제가 뮤지컬을 한다니까 응원은 해주시는데 탐탁지 않아 하시죠.”
“공연을 보러 거의 안 오세요. 오셔도 보다 나가시죠. 닭살 돋는다고. 하하! 집안 자체가 감성을 중시하는 집안이에요. 그래서 노래를 교과서적으로 부르는 걸 정말 싫어하시죠. 뮤지컬 창법이 좀 그런 면이 있잖아요. 심지어 집에서 연습하는 소리도 싫어하세요.”
“전 부모님이랑 오래 못 살았어요. 아버지는 돌아가시고, 누나랑 집을 나와서 일찍 독립을 했죠. 할머니를 모시고 살기도 하고. 사실 음악하는 집안이 괜찮은 집안이 없잖아요. 자유로운 영혼이 뭉쳐있는 집안. 저도 자유롭게 살았죠. 흐흐”
- 팬 관리는 어떻게 하고 있나요.
“따로 하지는 않아요. 예전에는 회사에서 시켜서 의무적으로 사이월드에 댓글을 달기도 했어요. 그런데 방송 한 번 나오고 나니 확 많아지더라고요. 감당이 안 될 정도로. 일촌 신청이 몇 천 명씩 쌓여있고. 인터넷은 포기했죠.”
“대신 공연장을 찾아오는 사람들은 한 명 한 명 사인을 하고, 사진도 같이 찍고 해요. 아, 생각나는 일이 있다. 여자친구를 잠깐 만날 때인데, 팬 중 한 명이 제 손을 잡고 찍은 사진을 인터넷에 올린 거예요. 이게 여자친구에게 딱 걸린 거죠. ‘너, 팬이랑 사귀냐’고 하는데 참 내 …”
“직접 보는 사람들에게는 잘 하는 편이에요. 방송 나갔을 때는 지하철 같은 곳에서 많이 알아보시더라고요. 최선을 다해서, 상대방이 내리는 순간까지 잘 대해드리고, ‘안녕히 가십시오’하고 꾸벅 인사를 하죠. 정말 마음에서 우러나서 했죠. 알아봐 주시는 게 고맙더라고요.”
- 가깝게 지내는 선후배는 어떤 사람들인가요.
“거의 다 친하죠. 하지만 어떻게 보면 피를 나눈 형제처럼 친한 선후배는 없어요. 작품을 함께 할 때는 굉장히 친하다가, ‘바이바이’하고 나면 가끔 연락을 주고받는 정도. 이 바닥이 특히 그런 것 같아요. 저뿐만 아니라 대부분이.”
배우 김보강과 인증샷
- 어떤 배우로 남고 싶습니까.
“어려운 질문이네요. 그런 만큼 진부한 답도 많을 것 같고요. 솔직히 스타만 될 수 있다면, 대한민국에서 이름 석자만으로 알아봐 주는 사람이 되면 얼마나 좋겠어요. 하지만 저는 그걸 꿈꾸는 사람은 아니고. 눈앞에 놓인 현실에 가장 충실한 배우가 되고 싶은 거죠.”
“그러다 보면, 비뚤어지지만 않는다면 충분히 정상까지 오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어요. 열심히, 그 만큼 할 것이고. 현재에 충실한 이 상황, 눈앞에 놓인 무대에 충실하면, 어떤 무대든 작품이든 해낼 수 있지 않을까요?”
김보강과 인증샷을 찍고 흔쾌히 악수를 나눈 뒤 헤어졌다. ‘소주 한 잔 함께 하자’는 약속도 했다.
김보강을 만나러 간다니, 그를 잘 아는 한 선배 배우가 기자에게 “보기와 달리 거칠게 자랐지만, 감성이 풍부하고 따뜻한 친구”라고 귀띔해 주었다.
1년간의 ‘보강’이 그에게 얼마나 쓰고 좋은 약이 되었는지는 이제부터 보면 알게 될 일. ‘환상의 커플’, ‘내 이름은 김삼순’으로 이어지는 배우 김보강의 동선을 눈 와짝 뜨고 주목해야 하겠다.
이제 곧 시선이 따라잡기 힘든, 김보강표 전력질주가 시작될 터이니까.
스포츠동아 양형모 기자 (트위터 @ranbi361) ranbi@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