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기자의 인증샷] 뮤지컬배우 이현정② “유키스 수현이 대성통곡한 이유는 …”

입력 2011-07-21 13:3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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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회에 이어서 뮤지컬 배우 이현정(35)씨와의 인터뷰를 진행한다.
늘 춤을 추며 살아왔기 때문일까.
이씨의 몸짓, 손짓 심지어 눈빛마저도 춤을 추는 것 같다.

맥주잔을 들어 마시는 일련의 동작이, 마치 잘 짜여진 안무처럼 보인다.


- 뮤지컬에는 정말 다양한 장르의 춤이 등장합니다. 아무리 춤꾼 배우들이라고 해도 이 모든 춤을 익히는 것이 불가능해 보이는데요.

“하하하! 다 잘 하지는 않아요. 오디션에서 작품의 안무에 맞는 사람을 뽑으니까 그렇게 보이는 거죠. 예를 들어 연말에 막을 올리는 뮤지컬 ‘조로’의 경우 플라멩코가 많이 나오죠. 당연히 오디션에서 플라멩코의 느낌을 내는 사람을 뽑게 되고요.”


- 연습은 어디서 합니까. 연기연습과 달리 춤 연습은 집에서 할 수가 없을 텐데요.

“그래서 배우들은 평소 재즈학원 같은 곳에 다니곤 해요. 그렇게 ‘아는 곳’에 가서 몸을 푸는 거죠. 예를 들어 ‘캣츠’ 오디션이 딱 떴다? 학원에 가 보면 사람들로 바글바글해요. ‘아, 오디션 준비하러 왔구나’하고 바로 보이죠.”


- 작년 ‘코러스라인’에서의 이현정씨를 기억하는 팬이 많습니다. 어떻게 보면 말도 많고, 사연도 많았던 작품인데요. 아이돌그룹 ‘유키스’의 수현이 한 회만 출연한 것도 구설수에 올랐었죠.


“수현이는 첫 공연만 하고 그만 두었죠. 정확한 이유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여하튼 첫 공연이 마지막 공연이었어요. 지금도 기억나는 것은, 첫 공연 마지막 장면이에요. 연출자 잭이 오디션 배우들에게 ‘춤을 출 수 없다면 무엇을 할 거냐’고 묻고, 곧바로 논쟁이 시작되죠. 배우들이 한 줄로 주욱 서있는데, 느낌이 이상해서 슬쩍 보니 수현이가 너무 슬프게 울고 있는 거예요. 거의 대성통곡을 하며 눈물을 줄줄 흘리고 있었죠. 지금도 기억이 생생해요. 왜 그렇게 슬피 울었을까.”

이씨는 ‘코러스라인’에서 주연이라 할 수 있는 ‘캐시’ 역을 맡았다. 너무도 애착을 갖고 있는 배역이다.
지금도 종종 이씨는 그때의 영상을 보면서 아쉬워한다.

‘너무 잘 해서’도, ‘또 하고 싶어서’도 아니다.
이씨는 “내 인생에 다시 오지 않을 기회일 것 같아서”라고 했다.
어딘지 쓸쓸하게 들린다.

‘캐시’가 된 과정도 한 편의 드라마같았다.
브로드웨이 라이선스 뮤지컬 작품인 ‘코러스라인’은 캐스팅 단계부터 해외 스태프가 참여했다.

“오디션을 볼 때는 대학 입학 때처럼 1지망, 2지망을 써요. 노래도 자신이 없고, 연기도 자신이 없고. 1지망을 ‘크리스틴’이라고 썼죠. 음치 역할이거든요(하하!). 음치인데 춤은 잘 춰야 한다고 해서 쓴 거죠”

며칠 뒤 연락이 왔다. ‘캐시’를 하라고 했다.
영화를 본 지가 하도 오래돼 ‘캐시’가 어떤 캐릭터인지 기억나지 않았다.
동료들에게 전화를 해서 물어봤더니 ‘캐시는 주인공’이라고 했다.

이씨의 입에서 자신도 모르게 혼잣말이 흘러나왔다.
“미친 거 아냐?”

지금 다시 생각해도 노래와 연기에 아쉬움이 많았다. 다시 하면 잘 할 수 있을 거란 생각도 한다.

‘코러스라인’ 때 가장 고마운 배우는 임철형(37)씨이다. 상대역이었다.
임씨는 연기에 익숙하지 않은 이현정씨를 복도로 끌고 나가 자신 앞에 세워 놓고 “나를 봐. 내 눈을 똑바로 보고 해”하고 윽박지르기도 했다.

뮤지컬배우 오나라씨는 “발레가 전공이어서 앙상블 기간이 길었다”라고 했다. 비슷한 얘기를 서범석 배우도 한 일이 있다.
춤을 잘 추면, 오히려 배역이 주어질 기회가 줄어든다는 아이러니. 노래 잘 하는 배우보다 춤 잘 추는 배우가 희귀하기 때문이다.

“제가 굉장히 좋아하던 남자 동생이 있어요. 키 크고 노래도 잘 했죠. 정민이라고. 그 친구가 춤을 너무 잘 춰요. 노래는 더 잘하고요.”

하루는 정민에게 “너 춤 조금만 더 잘 하면 더 좋은 배우가 될 것 같다”라고 말해 주었다. 그러자 정민이 고개를 저었다.

“춤은 됐어요. 이제 연기와 노래를 배워야 해요. 전 꼭 주연을 하고 말 거예요.”


위대한 캣츠비’, ‘김종욱 찾기’ 등의 작품에서 주연으로 출연한 정민을 보며 이씨는 많이 뿌듯해 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그 잘 추는 춤도 좀 보여주었으면 …” 싶었다.

“이번에 정민이가 ‘캣츠’를 한다고 하더라고요. 너무 기쁘죠. 드디어 진가를 발휘할 작품을 만난 거니까요.”

뮤지컬배우는 오디션을 통해 작품과 만나게 된다. 개별 오디션이든, 단체 오디션이든 오디션을 거치지 않고 배역을 맡을 수는 없다.
오디션장의 숨 막히는 분위기는 방송을 통해 꽤 많이 알려진 편이지만, 그래도 여전히 관객에게는 ‘어둠’의 세계이다.
노래의 경우 대개 지정곡과 자유곡이 주어진다. 안무는 어떨까.

“지정안무를 할 수도 있고, 자유안무를 할 수도 있죠. 지정안무의 경우 오디션 당일에 시간과 순서를 줍니다. 작품에 나올 법한 동작을 짜서 참가자들에게 던져주는 거죠. 30~40분 정도 가르치고, 3~4명이 들어가 오디션을 치러요. 자유안무는 말 그대로 자유죠. 음악도 자유고. 심사위원에 따라서는 지정과 자유 둘 다 보는 사람도 있어요.”

우리나라 안무감독들은 대체로 지정안무를 선호하는 편이라고 한다. 배우지만 심사위원 경험이 적지 않은 이씨는 “나도 그런 편”이라고 했다.
이유는 자유안무의 경우 심사위원의 눈을 혹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가장 잘 하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잘 하지 못하는 부분을 가릴 수 있다.

‘춤 잘 추는 뮤지컬배우와는 춤추는 클럽 같은 곳에 함께 가지 말라’는 말이 있다. 상대적으로 이쪽이 너무 ‘구질구질하게’ 보일 수 있는 것이다.
실제로 뮤지컬 배우들도 클럽 같은 곳에 갈까.

“전 별로 안 좋아해요. 간혹 가더라도 그냥 리듬에 맞춰서 몸을 흔드는 정도. 그런데 정말 끼 많은 배우들이 있어요. 완전히 무대를 활보하고 다니죠. 사람들 눈길을 확 끌어요. 그런데 사람들이 배우들을 ‘백댄서’로 오해하고는 해요. 하하!”


- 몸을 격렬히 쓰는 직업인만큼 부상위험이 클 것 같은데요.

“워밍업을 잘 안 하는 배우들이 많아요. 그다지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거죠. 하지만 전 이게 굉장히 중요하다고 봅니다. 공연장에 한 시간 일찍 나와서 몸 푸는 게 그렇게 힘든 건 아니거든요.”

이씨는 “배우의 부상은 대부분 몸을 안 풀어서 발생하는 부상”이라고 말했다.
이씨 역시 최근 몸을 덜 풀었다가 허리를 다친 쓴 경험이 있다.

배우들의 경우 장면 장면을 따로 연습하다가, ‘런(처음부터 끝까지 실제처럼 하는 연습)’을 하면 흥분을 하게 된다고 한다. 평소보다 동작이 격해진다. 그 잘하는 주연배우도 음정을 이탈한다.
긴장으로 몸이 경직되다 보니 배우들이 부상을 당하는 일도 왕왕 발생한다.

뮤지컬 ‘코요테어글리’에서 안무 조감독으로 잠시 ‘외도’를 한 이현정씨는 올해 연말 관심대작인 ‘조로’로 무대에 복귀한다.
‘코요테어글리’에서 여주인공 에이프릴과 코요테걸들이 보여주는 신나는 쇼, 의자 군무 신은 안무자로서 이현정씨의 감각과 실력을 엿볼 수 있는 장면이다.

보고 있으면, 코요테걸들에게 자꾸만 배우 이현정이 빙의된다.
이 한 장면만으로도 티켓 값을 하니, 보시는 분들은 꼭 눈여겨 봐 주시길.

그나저나 ‘코러스라인’의 이현정 캐시는 꼭 또 한 번 보고 싶다.

스포츠동아 양형모 기자 (트위터 @ranbi361) ranbi@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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