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플러스]‘해품달’ 정은표 “김수현? 참 못난 왕, 매일 울고불고”

입력 2012-03-20 10:08:45
카카오톡 공유하기
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배우 정은표. 오세훈 기자ohhoony@donga.com

 배우 정은표. 오세훈 기자ohhoony@donga.com


“왕이 울 때, 정말 힘들었죠.”

시청률 40%를 넘으며 큰 인기를 얻은 MBC 드라마 ‘해를 품은 달’에서 왕비 허연우만큼 왕 이훤을 사랑했던 대전 내관 형선 역의 배우 정은표(46)를 만났다.

정은표는 아직 왕에 대한 잔 감정이 남은 듯 애증 어린 눈빛으로 왕에 관한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그는 “왕 이훤, 알고 보면 정말 못난 왕이죠. 한 여자에게 빠져 허구한 날 울고불고. 그렇게 유약한 임금이 어디 있어요?”라며 격앙된 감정을 내보이다가 “주변에 적만 있어서 그래요. 할머니 대왕대비 윤씨, 신하들도 그렇고…. 믿을 수 있는 게 형선과 운이 밖에 없어요. 불쌍해요”라며 연민의 감정을 표현한다. 그의 다양한 감정 흐름이 그간 얼마나 왕을 향한 마음이 컸는지 예감케 한다.

“왕이 이 정도 생기기가 쉬운 줄 아느냐”는 왕의 말에 입을 삐죽 내밀고, “돌아서 있으라”는 명령에 불쌍한 표정을 지으며 종종걸음으로 애교를 부린다. 세자빈 연우의 죽음을 맞닥뜨리고, 무녀 월이 연우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 왕이 눈물을 흘릴 때, 형선은 영문도 모른 채 왕의 아픔만으로 가슴 시린 눈물을 흘린다.

세자 시절부터 왕을 보필하며 때론 엄마처럼, 때론 친구처럼 그의 곁을 지킨 내관 형선. 마지막까지 왕의 핸드싱크 뒤로 현란한 가야금 연주를 선보이며 드라마 속 최고의 황금 콤비, 코믹 커플의 모습을 여실히 보여줬다.

▶전 국민의 ‘귀요미’ 형선…“왜 이렇게 귀엽냐고요?”

각종 포털 사이트와 온라인 게시판에는 ‘해를 품은 달’의 ‘귀요미’ 형선을 향한 애정이 뜨겁다. ‘형선앓이’에 빠졌다는 글부터 ‘도대체 왜 그렇게 귀여운 것이냐’는 문의 글까지 ‘훤 앓이’ 못지않은 인기다.
배우 정은표. 오세훈 기자ohhoony@donga.com

 배우 정은표. 오세훈 기자ohhoony@donga.com


누리꾼들의 말을 빌려 “어쩜 그렇게 귀여운 것이냐”고 묻자 정은표는 “에이, 작가분이 역할을 잘 써준 거죠. 저는 뼈대에 살만 잘 붙였을 뿐이에요”라며 겸손하게 답한다. 이어 훤 왕에게 귀여움 받고 싶었던 것이 시청자들에게도 귀엽게 비친 것이라고 덧붙인다.

“형선은 자신이 가장 사랑하고 충성하는 왕에게 귀여움을 받고 싶어 해요. ‘뒤돌아서 있으라’란 명령에도 그냥 안 돌아서요. ‘으응~’하며 한 번 정도 반항하고, 종종걸음으로 ‘나 어때? 귀여워?’라고 온몸으로 표현하며 돌아요. 오랜 시절 곁에서 함께해온 친구 같은 우애 때문이죠. 다른 어떤 신하가 왕의 호령에 저렇게 능글맞게 굴 수 있겠어요.”

그는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으로 아역에서 성인 연기자로 넘어가던 시기에 왕 김수현에게 혼이 나는 장면을 꼽았다. 당시 아역들의 열연에 푹 빠져있던 시청자들이 성인으로 넘어가며 약간의 혼란을 겪던 시기다.

“왕 김수현이 건강해야 한다면서 운동을 해요. 형선이 이를 오해하고 ‘원자생산 하려고 그러느냐?’ 물으면서 ‘원자생산~’이라고 크게 외쳐요. 결국, 혼이 나서 돌아서는데, 이때 형선이가 울어요. ‘세자 시절의 전하가 나를 혼내는 것 같아 좋다’면서 ‘이대로만 강녕하세요’라고요. 이 장면으로 사람들이 ‘김수현이 세자 시절의 그 왕이 맞구나’라고 생각하는데 도움을 준 것 같아요.”

극 중 가장 힘들었을 때는 아무래도 왕이 힘들어했을 때라고.

“왕이 울 때는 정말 마음이 힘들어요. 세자시절 연우가 떠나갈 때, 왕이 울어요. 저도 뒤에서 같이 울거든요. 사람들은 이상하게 볼지도 모르지만, 세자만을 바라보는 형선은 그 아픔을 고스란히 느껴요. 연우가 아파서가 아니라 왕이 슬퍼한다는 이유로요.”

그는 촬영 동안, 왕 이훤이 자신의 마음속 공간에 “정말 큰 사랑”으로 자리했다고 고백했다. 촬영이 끝나고 집에 와서까지 훤이 떠오를 정도로, 아낌없이 사랑하고 충성했다. 그래서 미련은 없다.

“촬영 일주일 전에 제가 김수현에게 ‘내가 널 사랑할 날은 일주일밖에 안 남았어’라고 선전포고했어요. 이제 정말 끝이네요. 현실로 돌아와서 훤을 비우고 부인을 다시 마음속에 담고 마음껏 사랑해야죠.”

▶ 카메라가 멈추면 “어이, 훤!” 호령…김수현 “예예” 맞장구

훤과 형선, 두 사람의 친밀하고 유쾌한 연기는 그냥 나오는 것이 아니었다. 김수현과 정은표는 카메라 멈추기가 무섭게 철없는 장난을 치며 놀았다.

“김수현에게 ‘전하~’이러다가 카메라가 멈추는 순간 ‘왕! 어이, 훤!’ 이렇게 부르면서 놀려요. 그럼 수현이는 또 거기에 ‘예~예’하면서 맞대응하고요. 주로 김수현과 송재림 저, 이렇게 셋이 함께 촬영하는 신이 많았는데, 수현이와 저, 둘이 아주 시끄러웠죠.”

하지만 그는 이렇게 재미있게 지내는 것도 때론 걱정과 부담이 됐다고 말했다. 후반으로 갈수록 김수현의 심각한 내면연기 장면들이 많았던 것. 이에 정은표는 둘 사이의 장난이 김수현의 연기에 방해되지 않을까 걱정했다.

“우는 장면을 앞두고 있는데 둘이 너무 즐겁게 웃고 있는 거예요. 저는 그래도 연기 경험이 많으니 금방 감정을 추스를 수 있는데 수현이가 걱정됐죠. ‘큰일 났다. 수현이 어떡하지’라고요. 괜한 걱정이었죠. 수현이는 컷이 들어가자마자 극에 딱 몰입해요. 서로 눈치를 잘 보는 건지, 미리 이렇게 저렇게 하자고 얘기를 안 해도 호흡이 척척 맞아요. 수현의 연기를 보고 있노라면 저도 깜짝깜짝 놀랄 때가 많아요. 어린데 정말 대단해요.”

정은표는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한다. 역할을 떠나 어느샌가 배우 김수현에게도 친구 같고, 아버지 같은 선배가 돼 있는 듯 보였다.

▶“아빠가 내시 역할 맡자 아들, 딸의 반응은…”

“저는 처음 대본을 받고 마냥 설렜어요. 왕이고 내시고가 문제가 아니라, 제가 정말 잘할 수 있을 것 같은 역할이기 때문이었죠.”

정은표는 처음 ‘해를 품은 달’ 섭외가 들어왔을 당시를 떠올리며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아이들과 아내도 좋아했을까 궁금해졌다.

“첫째 지웅이는 워낙 쿨해요. ‘아빠, 내시야? 뭐 어쩌라고’ 이런 반응이에요. 둘째 하은이는 방송 후에 친구들이 ‘너희 아빠 내시야?’라면서 조금 놀렸나 봐요. 그런 얘기를 저에게 하더라고요. 그래서 ‘아빠가 부끄러웠어?’ 물으니 ‘아니, 아빠 연기 잘하는데 뭐 어때’라며 어른스럽게 대답하더라고요.”

그는 대견하다며 이야기했다. 이어 “애들에게 ‘아빠가 연기자로 하는 역할인 거지, 아빠가 내시는 아니잖아’라고 설명했어요. 그리고 그런 부분은 잘 모르지만 ‘아빠가 애도 셋이나 만들었잖아’라고 말했죠”라며 웃는다. 부인도 흔쾌히 찬성했다. “아내는 아내이자, 배우 정은표의 팬이기도 해요. 결혼하기 전부터 쭉. 제가 연기하는 거라면 뭐든 좋아해요”라고 흐뭇하게 답한다.

실제로 정은표와 부인 김하얀 씨는 이날 인터뷰에 동행했다.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 동아일보 사옥에 들어선 김 씨는 임신한 배를 안고 싱글벙글 남편의 인터뷰를 지켜봤다. 출산 예정일을 물어보니 7월이란다.

김하얀 씨는 장난을 치며 “제가 정은표 씨 코디입니다”라고 소개하니 정은표는 “수입의 100%를 가져가는 짭짤한 수익의 코디죠”라며 웃는다. 또 김하얀 씨는 “지금은 가정에도 충실하고 참 좋은 남편이지만, 연애 때는 안 그랬어요. 아휴, 정말 나쁜 남자였어요. 제가 혜안이 있었던 거죠”라며 정은표의 총각 시절을 폭로하기도 했다.

아빠 정은표는 늘 곁에 있는 친구 같은 아빠다. 잠옷 바람으로 학교 가는 자녀들을 배웅하면, 아이들이 “창피해, 아빠 빨리 들어가!”라고 집에 들여보내지만, 비 오는 날이면 아이들이 꼭 콜렉트 콜로 “아빠, 마중 나와”라고 찾는다고.

부인이 이야기하는 총각 시절과는 전혀 매치가 안 되는 모습이다. 귀여운 내시, 친근한 아빠, 나쁜 남자까지. 알수록 매력 있는 남자임이 분명했다.

▶“평생 살아있는 배우이고 싶다”

지금 그는 연기면 연기, 가정이면 가정 모든 것을 가진 듯 여유로워 보이지만, 늘 이렇게 행복했던 건 아니었다.
배우 정은표. 오세훈 기자ohhoony@donga.com

배우 정은표. 오세훈 기자ohhoony@donga.com


“‘해를 품은 달’ 하기 전까지 정말 힘든 시기였어요. 붕어빵을 하기 전 1년 넘게 연기를 하지 못했어요. 경제적으로도 매우 힘들 때 SBS ‘스타주니어쇼 붕어빵’ 제의가 들어왔죠. 지웅이가 잘 해줘서 고정이 되고, 그렇게 저희 가정에 숨통이 트였어요. 그런데 계속 예능에 나가면서도 좌절을 했죠. ‘내가 배우로서는 매력이 없나’하고요.”

그리고 2011년 말, 드디어 ‘해를 품은 달’ 캐스팅 제의가 들어왔다. 하지만 캐스팅 제의 후 기다린 두 달이라는 시간도 ‘혹여나 누가 차갈까, 못하게 되면 어쩌지’ 가슴 졸이는 고통의 시간이었다고. 이렇게 고대하며 시작하게 된 작품이니 정은표의 작품에 대한 사랑은 누구 못지않다.

“정말 저에게는 남다른 작품입니다. 어려운 삶에 빛을 비춰준 작품이기도 했고, 배우로서 또 다른 자신감을 얻게 한 작품이니까요. 앞으로 작품 섭외가 올지, 안 올지 모르지만 이제 안 오더라도 배우로서 자신감은 잃지 않을 것 같아요.”

배우로서 다양한 삶을 거쳐 온 정은표. 그는 이제 정말로 행복해 보였다.

“나는 지금 사이즈가 참 좋아요. 더 이루고 싶은 목표도 있고, 돈도 더 벌고 싶고요. 그래서 행복해요. 인기 실감? 그런 건 없어요. 스스로 작품에 모든 열정을 쏟았다는 자체만으로 만족스러워요. 젊은 시절엔 영화 주인공을 맡아도 이렇게 행복하지 않았죠.”

그는 이어 “눈빛도, 카메라 앞에선 정은표도 늘 살아있는 배우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내시로서 왕을 충실하게 사랑한 형선, 배우로서 연기를 충실하게 사랑하는 배우 정은표다운 마지막 말이었다.

동아닷컴 원수연 기자 i2overyou@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사진|동아닷컴 오세훈 기자 ohhoony@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 오·감·만·족 O₂플러스는 동아일보가 만드는 대중문화 전문 웹진입니다. 동아닷컴에서 만나는 오·감·만·족 O₂플러스!(news.donga.com/O2) 스마트폰 앱으로도 만나실 수 있습니다.



뉴스스탠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