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건의 Let’s Go Baseball] 김성한 홈런은 짬뽕국물 덕이었네

입력 2012-07-14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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짬뽕은 한국시리즈 9회 우승을 이룬 해태 선수들에게 의미가 남다른 음식이었다. 왕년의 홈런왕 김성한 전 KIA 감독은 현역시절 짬뽕을 먹고 3점홈런을 종종 날렸다. 스포츠동아DB

80년대 전설의 해태 주축들 ‘대단한 먹성’
김성한은 짬뽕 시켜먹고 3점홈런 잘 때려


고참 라커룸 배달특권…후배는 투지 불끈

아침밥 챙기는 LG 김용수·김영직 등 롱런
“주는 대로 잘먹는 신인선수가 성공하더라”


두산의 ‘화수분 야구’를 오랫동안 지켜본 김일상 2군 운영팀장. 그는 신인선수의 성공 여부를 기막히게 알아내는 능력이 있다. 비결은 간단하다. 일주일 정도 신인들이 식당에서 어떤 행동을 하는지만 보면 감이 온다. 심정수(은퇴), 김현수는 경기도 이천의 두산 2군 훈련장이 탄생시킨 성공신화의 주인공들이다. 김 팀장은 이들의 먹성을 보면 답이 보였다고 했다. “주방 아주머니들이 가장 좋아하는 선수들이었다. 주는 대로 밥을 꼬박꼬박 잘 먹었고, 반찬 타령도 하지 않았다. 오래 앉아서 찬찬히 잘 먹는 선수가 결국 훈련도 열심히 하고 성공하더라”고 밝혔다. 해태 시절 김응룡 감독도 그랬다. 가장 싫어하는 선수는 반찬 타령 하는 선수, 주는 대로 먹지 않는 입 짧은 선수였다. 해태는 대만으로 전지훈련을 자주 갔다. 대만은 진한 향이 나는 음식이 많다. 이 향에 질려 전훈 한 달여 동안 누룽지와 라면으로 때운 코치도 있었지만, 선수들은 그렇게 해선 체력이 버텨주지 못했다. 선동열, 김성한, 이순철 등 역시 야구 잘하는 선수들은 가리지 않고 잘 먹었다. 억지로라도 먹어야 했다. 무서운 감독이 식당에서 두 눈을 부릅뜨고 있었으니까.

해태는 1980년대 무적을 자랑했고 밥 먹듯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해태 선수들은 술도 잘 마셨지만 식성도 좋았다. 엄하기로 유명했던 김응룡 감독이 식당에서 두 눈을 부릅뜨고 앉아 해태 선수들의 식탐을 ‘독려’했다. 스포츠동아DB




○1980년대 해태 ‘짬뽕야구’의 전설

1980년대 후반, 한국시리즈에서 해태에 자주 지던 삼성은 여러 차례 그룹 감사를 받았다. 그룹 내부감사에선 특히 해태와 비교해 이유를 여러 가지로 분석했다. 우선은 호남지역에서 나오는 선수가 대구·경북지역에서 나오는 선수보다 차이가 난다는 결론이 나왔다. 이 때부터 삼성은 줄기차게 신인지명의 룰을 바꾸려고 노력했다. 용병 도입과 프리에이전트(FA) 제도의 시행도 삼성이 해태에 이길 수 있는 프레임의 변경방안 가운데 하나였다.

당시 내부보고서에서 흥미롭게 지적된 것이 두 팀 선수들의 식성이었다. 해태 선수들은 경기가 끝난 뒤 술을 마시고 귀가해서도 밥을 먹지만, 삼성 선수들은 그렇지 않았다. 이것이 선수들의 식성 문제인지, 아니면 늦은 밤 밥상을 차려주는 아내의 성격 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랬다.

1980년대 해태를 취재하던 시절 내려오는 말이 하나 있었다. ‘명승옥’에서 짬뽕을 먹어보지 않은 야구기자와는 말도 하지 말라고. 선수들이 주로 이용하는 무등경기장 앞 중국집에서 만든 짬뽕을 먹으면서 수많은 전설을 봤던 기자들의 자부심이었다. 해태에서 이 짬뽕은 다양한 의미로 해석됐다. 무엇보다 선참과 후배를 가르는 기준이었다. 라커룸에 짬뽕을 배달시켜 먹을 정도의 선수는 팀 내서 인정하는 선참이라는 뜻이었다. 어린 선수들은 감히 먹고 싶다는 의사도 내비치지 못했다. 김성한은 유난히 이 짬뽕을 먹고 3점홈런을 잘 때린 해가 있었다. 타격 밸런스가 흐트러지면 배팅볼 투수 송유석을 오전에 불러 수천 개의 특타를 하면서 감을 찾기도 했다. 특타가 끝나면 수고했다면서 송유석에게 사준 것이 이 짬뽕이었다. 투창선수 출신의 송유석은 이 눈물의 짬뽕을 먹고 배팅볼을 던지며 기막힌 몸쪽 컨트롤을 완성해 마침내 팀의 주전 투수가 됐다.


○아침을 먹는 선수가 장수한다?

LG는 1990년 MBC를 인수한 뒤 메이저리그식 팀 운영을 꿈꿨다. 이광환 감독이 부임하면서 투수분업화의 시초인 스타시스템과 자율야구를 도입한 LG는 식생활도 바꿨다. 경기 2∼3시간 전 간식만 먹고 경기를 하게 했다. 처음에는 샌드위치와 스파게티 등을 먹고 허기져했다. 이를 보며 해태 선수들은 웃었다. 지금의 기준으로 봐서는 해태가 아마추어식이고, LG가 프로페셔널에 더 가까웠지만 경기 결과는 달랐다.

선수들에게 다양한 자율을 줬던 이광환 감독이지만 아침은 꼭 챙겨먹도록 했다. 1984년부터 3년간 삼성에서 요미우리 에이스 출신의 자존심을 보여줬던 김일융도 일본으로 복귀하면서 아침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LG의 베테랑 김용수와 김영직은 원정을 떠나면 가장 일찍 식당에 나타나는 선수들이었다. 주방에서 아침식사를 준비하기도 전에 내려와서 기다렸다. 이들은 늦잠으로 아침을 거르는 후배들을 보면서 자주 혀를 찼다. 김용수와 김영직이 현역선수 생활을 오래한 배경에는 아침을 잘 챙겨먹은 ‘아침형 인간’ 스타일이라는 점도 큰 영향을 끼쳤다. 선수시절 입이 짧아 여름마다 고전했던 넥센 김시진 감독도 아침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야간경기를 하는 선수들이 아침을 잘 챙겨 먹는다는 것은 밤 생활을 잘 한다는 증거다. 컴퓨터 게임에 빠지거나 스마트폰으로 밤을 지새우면 아침에 일찍 일어날 수도 없다. 관리야구로 유명한 일본의 어느 감독은 매일 아침 선수의 얼굴을 직접 보고 확인한 뒤 스타팅 오더를 작성했다. 밤에 행동이 올바르지 않았던 선수를 걸러내기 위한 방법이었다.

전문기자 marc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 @kimjongk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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