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프로기사 1호 부부인 김영삼 9단(왼쪽)과 현미진 5단이 바둑판 앞에서 다정하게 포즈를 취했다. 각종 기전에서
맹활약하며 두각을 드러내던 두 사람은 2004년 12월 화촉을 밝혀 바둑계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김진환 기자 kwangshin00@donga.com
개천에서 용이 나기는 쉽지 않지만, 일단 한번 용이 나온 터에서 다시 용이 나기는 어렵지 않다. 하다못해 로또도 명당이 있다.
스타가 나온 집안에서 또 다른 스타가 나오는 경우는 그래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스타의 DNA는 타고 나고, 이어진다.
스포츠동아가 스포츠, 예술, 대중문화 등 다양한 영역에서 활약하고 있는 스타 패밀리를 찾아 나선다. 대중의 사랑을 받는 스타들이 패밀리로 살아가며 서로 사랑하고, 끌어주고, 때로는 아옹다옹 다투는 일상을 생생하게 전해드리기 위해서다.
대한민국 스타 패밀리와의 유쾌한 만남. 그 첫 번째로 국내 1호 부부 프로기사인 김영삼·현미진 커플을 찾았다.
● 2호 커플이 될 뻔한 사연
‘프로기사의 사랑’하면 사람들은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의 최택과 덕선의 사랑을 떠올릴지 모르겠다. 박보검이 연기한 최택의 실제 모델인 이창호 9단은 바둑매체 기자로 일하던 이도윤씨와 2010년 결혼해 딸 둘 낳고 잘 살고 있다. 하지만 실은 이들보다 한참 앞선 오리지널 바둑의 사랑이 있었다. 국내 프로기사 1호 부부인 김영삼(43) 9단과 현미진(38) 5단이다. 두 사람은 2004년에 화촉을 밝혔다. 잘 나가는 스타 프로기사끼리의 결혼은 한국바둑사상 초유의 사건이었고, 바둑계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큰 이슈가 됐다. 이후 13년이 흘렀다. 그 동안 프로기사 커플도 총 여섯 쌍으로 늘어났다.
-원래 2호 커플이 될 뻔했는데 이왕이면 1호가 되고 싶어 결혼식을 서둘렀다는 소문이 있다.
김영삼(이하 김) “푸하! 그럴 리가. 이상훈 9단과 하호정 4단이 이듬해 3월에 결혼한다고 발표를 먼저 하기는 했다. 그런데 우리는 아버지가 2004년은 좋지 않으니 2005년에 하되 동지 이후는 2004년도 괜찮다고 하셨다. 그래서 동지 끝나자마자 12월 27일에 식을 올리다보니 1호가 되어버린 거다. 날짜 잡고, 예식장 알아보고, 집 구하는 데까지 며칠 안에 일사천리로 끝냈다.”
“신부 생각도 해야지 무슨 결혼을 그리 번갯불에 콩 볶아먹듯 했느냐”고 하자 옆에 있던 현미진 5단이 “이미 양가가 허락하신 상태고, 연애기간이 워낙 길어서…”라며 수줍게 미소를 지었다.
두 사람의 연애기간은 당사자들의 의견이 엇갈릴 정도로 길긴 하다. 무엇보다 어느 시점부터를 연애의 시작으로 봐야 하는지가 애매하다. 두 사람은 프로기사 배출의 산실로 불린 허장회 9단의 바둑도장에서 한솥밥을 먹었다. 물론 두 사람만 먹은 건 아니고 많은 제자들이 숙식을 함께 하며 입단공부에 매진하고 있었다.
1998년의 김영삼·현미진 커플. 도장 선후배 사이에서 연인단계로 발전할 무렵의 모습이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난 건 언제였나.
김 “내가 고등학교 2학년, 와이프는 초등학교 6학년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내가 입단할 무렵에 연구생으로 들어왔으니까.”
현미진(이하 현) “입단을 못 했었지.”
김 “그런가(웃음). 내가 입단이 늦었다. 1993년에 입단을 했는데, 매년 ‘입단 0순위’ 소리를 들으면서 5년을 보냈으니까.”
-그때부터 사랑이 싹텄다는 건가.
현 “설마. 초등학생 눈에 고2는 어른이다. 오빠도 아니고 그냥 아저씨였다. 워낙 차이가 나니까.”
김 “그래봐야 다섯 살이다.”
-서로를 이성으로 바라보게 된 것은 언제쯤인가.
김 “1998년 무렵이다. 내가 제대를 하고나서니까. 그때도 뭐 여자라는 느낌은 별로…. 생각해 봐라. 허 사범님 댁에서 아침 점심 저녁을 같이 먹고, 하루 종일 바둑을 두고, 한국기원에 같이 다니고. 이건 잠만 따로 잘 뿐이지 동거생활이나 마찬가지 아닌가.”
현 “같이 붙어 있다보니까 자연스럽게 사귀게 된 것 같다. 사실 사귀자는 얘기도 없이 그냥 사귀게 됐다. 어느 날 보니 오빠가 되어 있더라.”
-어쩐지 좀 재미없는 커플 같다.
김 “사실 그렇다. 데이트라고 해봐야 한국기원이 있던 종로 관철동에서 영화 보고, 도장이 있는 방학동에서 순대 떡볶이 사 먹고. 뭐 그 정도.”
-그래도 프러포즈는 했을 것 아닌가
현 “안 했다.”
김 “무슨 소리! 했다. 결혼하자고 했잖아.”
현 “그게 무슨 프러포즈냐. 그냥 날짜 잡기에 하는가 보다 한 거지.”
김 “…”
현미진 5단은 당시 바둑계 미녀기사를 논할 때 늘 손가락에 꼽힐 정도로 출중한 미모를 자랑했다. 김효정, 하호정, 김태향, 한해원 등이 경쟁자(?)들이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현미진을 덥석 채간 김영삼에 대한 주변(동료기사+남성 바둑팬)의 시선이 고울 리 없었다. 다들 “김영삼 도둑X”이라며 가재눈을 했다.
김영삼 9단은 “신경도 안 썼다”면서도 에피소드 하나를 들려주었다.
“내가 스물다섯, 와이프가 스무 살 때였다. 데이트를 하고 있는데 와이프가 친구한테 온 전화를 받았다. 데이트 중이라니까 친구가 내 나이를 물어봤던 모양이다. 그런데 와이프가 스물 셋이라고 하더라. 전화 끊고 나서 왜 그랬냐고 하니까 ‘너무 많아서 그랬다’고…”
현미진 5단이 “내가 순발력이 좋았다”며 웃는다.
-김영삼 9단의 어디가 그렇게 좋았나.
현 “내가 (뭔가에) 씌웠나 보다. 지금 보면 별 거 없던 사람인데(웃음). 오빠말고 다른 남자를 사귀어본 적이 없다. 결혼하고 나니까 좀 억울하더라. 생각해 보면 오빠가 하는 개그를 좋아했던 것 같다.”
-아직도 오빠라고 부르는 건가.
현 “그러게 말이다. 못 고치고 있다. 시댁에서만 연수아빠라고 부른다.”
-부부가 동종업계에 있으면 좋은 점도 있지만 불편한 점도 많지 않을까.
김 “없다. 다만 사귀다가 깨진 커플들은 아무래도 좀 불편할 것이다. 바둑계가 넓다고 볼 수는 없으니까.”
현 “내가 오빠 스케줄을 꿰고 있어서 불편한가? 잘 모르겠다. 오히려 바둑에 대한 얘기가 통하니까 좋다.”
-식당 같은 경우 부부가 함께 운영하면서 다투는 경우가 많은 것 같던데.
김 “그래서 우린 방이 다르다(웃음).”
2007년 제11회 LG배 세계기왕전 검토실에서의 김영삼· 현미진 가족. 엄마 품에 안겨 있는 아이는 첫 딸 연수다.
● 제자들 키우면서 알콩달콩 행복하게 살고 싶어
이들 부부는 서울 용산구 도원동에서 바둑학원을 함께 운영하고 있다. 남편 이름을 딴 ‘김영삼 바둑학원’이다. 김영삼 9단의 “방이 다르다”라는 말은 학원에서 각자 방을 따로 쓰고 있다는 얘기였다.
사실 두 사람은 요즘 현역 프로기사로서보다 ‘감독님’으로 더 유명하다. 김영삼 9단은 국내 최대 규모의 기전인 한국바둑리그에서 정관장 황진단 감독을 맡고 있으며, 현미진 5단은 한국여자바둑리그 인제 하늘내린팀의 감독으로 팀을 이끌고 있다.
서로 칭찬에 인색하던 부부가 감독 얘기가 나오자 급 칭찬모드로 돌변했다.
김 “와이프는 선수들을 참 편하게 해준다. 큰언니 같다.”
현 “오빠는 감독으로서 연구를 정말 많이 한다. 선수들의 모든 대국을 치열하게 연구한다. 남편이지만 인정하고 존경한다.”
두 사람 사이에는 세 명의 딸이 있다. 연수(13·6학년), 시우(10·3학년), 시윤(6)이다. 프로기사 부부의 자녀들은 모두 바둑을 잘 둘 것 같지만 그건 아니란다.
현 “바쁘게 사는 데 급급하다 보니 첫째와 둘째는 바둑을 못 가르쳤다. 욕심인지 몰라도 막내 시윤이는 프로로 키우고 싶다.”
마지막으로 이들에게 프로기사 부부로서의 꿈을 물었다. 일을 마치고 한 밤중에 귀가해 부부끼리 맥주라도 한잔씩 따라 주면서, 아이들 잠 깰까봐 목소리를 낮춰 두런두런 이야기하는, 그런 꿈 말이다.
현미진 5단은 “능력이 되는 한 아이(제자)들 키우는 일을 하게 될 것 같다. 사실 적성에도 맞고 재미도 있다. 늘지 않는 애들이 갑자기 폭발하는 모습을 볼 때 정말 보람을 느끼게 된다”고 했다.
두 사람의 대화는 바둑을 닮았다. 다만 흑과 백이 아니라 흑이면 흑, 백이면 백. 같은 색깔의 돌로 두는 바둑이다. 승자만 있고 패자는 없는 바둑. 곤마의 쫓김도, 옥집의 난감함도, 환격의 뒤통수치기, 대마의 허망한 죽음도 없는 바둑. 대신 한 수 한 수가 반상에 놓일 때마다 삶이 행복해지고 사랑이 두터워지는 바둑.
김영삼 9단이 입가에 주름을 잔뜩 지으며 웃었다. “난 별 거 없다. 애들 예쁘게 잘 키우면서 우리 가족 행복하게 사는 거. 그거다.”
사실 더 바랄 게 있겠는가. 삶이란 이름의 바둑판 위에서는 평범이 묘수다.
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