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최선을다해살고있는가…‘우리생애최고의순간’

입력 2008-01-03 09:2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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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여자 핸드볼. 4년에 한 번, 올림픽 때만 환호를 받는 종목. 1984년부터 1996년까지 금메달 두 번, 은메달 두 번을 따냈다. 그러나 그 순간이 지나면 모두 그들을 잊는다. 세계 최강이라지만 올림픽이 끝나면 갈 곳이 없는 신세. 2004년 아테네, 은퇴한 노장까지 끌어 모아 팀을 이룬 그들은 결승에서 실업팀만 1000개가 넘는 핸드볼 강국 덴마크와 붙었다. 19번의 동점, 두 번의 연장전에 이은 승부던지기…. 선수들은 끝내 고비를 넘기지 못하고 눈물을 쏟았다. 아깝지만 최고의 명승부였던 그 경기가 영화로 재탄생했다. 너무나 아름다운 영화, 10일 개봉하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이다.》 아테네 올림픽 女핸드볼 결승 실화 소재 마지막 땀 쏟아부은 아름다운 패배 뭉클 일본에서 감독 생활을 하던 핸드볼 선수 혜경(김정은)은 올림픽을 앞두고 국가대표팀 감독 대행을 맡는다. 그는 실업팀 해체로 마트에서 일하고 있는 미숙(문소리) 등 옛 동료들을 불러 모으지만 신진 선수들과의 불화만 야기한다. 이에 협회는 남자 핸드볼 스타였던 승필(엄태웅)을 감독으로 선임한다. 혜경은 돌아가지 않고 선수로 복귀해 명예 회복에 나선다. 이 영화는 여성들이 빚어낸 여성들의 이야기다. “아무도 안 하는 여성 스포츠 영화를 만들겠다고 해 여러 사람 고생시켰다”는 제작사 MK픽처스의 심재명 대표부터 전작 ‘세 친구’ ‘와이키키 브라더스’에 어 깊은 인간적 울림을 선사하는 임순례 감독, 온몸이 멍투성이가 되도록 뛰고 또 뛰어 최고의 ‘팀워크’ 연기를 보여 준 배우들까지. 사실 스포츠 영화로 평가할 때, 경기 장면은 기대 이상이지만 ‘최고’라고 하긴 미진한 대목이 있다. 이 영화가 아름다운 진짜 이유는 캐릭터와 이야기에 짙게 밴 ‘사람 냄새’ 때문이다. 여기엔 우리의 인생이 다 들어 있다. 등장인물 각자의 가정에는 불임 문제도 있고 이혼도 있고 생활고도 있다. 일에서는 선후배의 갈등이 있고 업무 방식의 차이로 인한 불화도 있다. 한국 사회에서 여자로 살아가면서 겪는 괴로움에 여자들 사이의 질투도, 우정도 있다. 영화는 이토록 많은 얘기를 담으면서도 결코 산만해지지 않으면서 갈 곳을 향해 정확히 힘차게 나아간다. 얘기를 장황하게 벌이지 않아도 임팩트 있는 대사나 장면 하나로 충분했기 때문이다. 빚으로 가정을 풍비박산 나게 만든 남편에 대한 미숙의 마음은 남편이 숨어 있다고 생각되는 곳에서 “왜 내 전화도 안 받아? 내가 빚쟁이야?” 하고 소리치며 용돈을 놓고 가는 한 장면으로 설명이 된다. 영화 내내 억척스러울 정도로 씩씩하며 남편과도 ‘닭살 커플’인 정란(김지영)의 불임으로 인한 마음고생은 후배들에게 “생리 늦춘다고 호르몬제 함부로 먹지 마라”라는 눈물 어린 조언 한마디에 다 들어 있다. 주인공들은 핸드볼도 삶의 문제도 ‘빠른 스피드를 이용한 팀플레이와 악착같이 뛰어 기회를 만드는 한국식 핸드볼’로 해결한다. 그건 ‘깡으로 똘똘 뭉친 한국 아줌마’ 방식이다. ‘애 낳고 3주 만에 경기장에 섰던’ 천재 선수 미숙에게, 오래전 그를 시기하며 이기려고 이를 악물었던 혜경은 이제 말한다. “애 낳고 감독도 해 보니까 남 힘든 것도 보이게 되더라.” 그들은 나이가 들고 엄마가 되며 얻은 ‘아줌마스러움’으로 서로를 도우며 상황을 돌파한다. 영화를 보는 내내 가슴속에서 꿈틀거리던 뜨거운 무언가는 결승전 장면에서 확 끓어올랐다. 미숙이 승부던지기를 하는 마지막 순간, 모든 소리는 끊기고 카메라는 공이 아니라 선수들을 비춘다. ‘하면 된다’고들 하지만, 현실은 영화가 아니다. 최선을 다한다고 항상 이기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들은 묻고 있었다. ‘생애 최고의 순간’을 맞을 준비가 돼 있느냐고. 당신은 단 한 번이라도 그들처럼, ‘이것 때문’ ‘저것 때문’이라고 핑계대지 않고 마지막 한 방울까지 짜내며 후회 없이 모든 것을 쏟아 부은 적이 있었는가. 채지영 기자 yourcat@donga.com ▼ 그때 그 선수들 지금은▼ ‘아줌마 파워’ 4명 모두 현역 생애 최고의 순간을 만들어 낸 ‘그때 그 선수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영화 속 선수들의 개인사 및 팀내 갈등은 모두 허구지만 2004년 아테네 올림픽 때 ‘아줌마 선수’들이 주축이 된 것과 당시의 경기 내용은 그대로 반영됐다. 당시 아줌마 선수는 오영란(37) 허영숙(33) 임오경(38) 오성옥(37) 선수 등 4명이었고, 이 중 임오경과 오성옥 선수는 아이를 키우는 엄마였다. 4년이 지난 지금도 ‘아줌마 파워’는 여전하다. 한두 명은 은퇴했을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모두 여전히 ‘핸드볼과 함께’하고 있다. 당시 주장이었던 이상은(33) 선수는 스페인 프로팀 ‘이트삭스’에서 활동하고 있다. 임오경 선수는 일본 ‘히로시마 메이플 레즈’에서 감독 겸 선수로 뛰고 있으며 오성옥 선수는 오스트리아 ‘히포방크’에서, 허영숙 선수는 덴마크 ‘콜딩’에서 활약하고 있다. 영화 마지막에 울먹이는 인터뷰가 삽입돼 감동을 준 임영철 감독은 지금도 효명건설 팀과 함께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준비하는 국가대표 핸드볼팀 감독을 맡고 있으며 오영란(효명건설) 선수는 여전히 국가대표다. 채지영 기자 yourcat@donga.com [화보]영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시사회 생생화보[화보]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제작보고회[화보]영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현장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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