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던보이모던걸,경성을뒤집어놓은것이었다~

입력 2008-01-29 09:4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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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의 경성에 매혹됐던 충무로가 그 결과물을 낳기 시작했다. 설을 앞둔 31일 개봉하는 4편의 한국 영화 가운데 ‘라듸오 데이즈’(라듸오·12세 이상)와 ‘원스 어폰 어 타임’(원스·12세 이상)이 당시 경성을 배경으로 한 코미디다.왜 경성일까. 조선시대는 너무 많이 나왔다. 최근 고대사를 배경으로 한 작품도 많았다. 남은 시기는 일제강점기와 1970, 80년대. ‘경성기담’의 저자인 KAIST 인문사회과학부 전봉관 교수는 “1970, 80년대는 경험한 사람이 많아 허구를 가미하기 힘들지만 일제강점기는 그렇지 않다”며 “정치적으로 암울했으나 문화적으로는 다양한 현대문화가 소개됐고 전통문화와 현대문화의 갈등이 다양한 해프닝을 연출한 시기”라고 말했다.‘원스’는 영화 시장에 진출한 SK텔레콤의 첫 투자 배급작. ‘라듸오’는 영화사 싸이더스 FNH가 만들고 배급한 영화다. 경성을 배경으로 21세기 영화계 두 통신기업(싸이더스의 모기업은 KT)이 격돌하는 셈이다. 두 영화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비교했다. 》 ○배경 / 서구문물의 홍수, 그리고 전시총동원령서구 문물이 쏟아져 들어온 1930년대는 문화예술이 꽃을 피웠던 시기. ‘라듸오’는 이때의 우리나라 최초 라디오 방송국이 배경이다. 최초 라디오 방송은 1927년 시작됐고 한국어 방송은 1933년부터다. ‘원스’의 공간은 광복 직전인 1944∼45년 경성이다. 역사적으로는 중일전쟁(1937년) 이후 ‘전시총동원령’으로 자유가 억압되던 때. 영화에서도 ‘원스’가 ‘라듸오’보다 일본군의 압제가 심한 편이지만 영화는 당시 상황을 반영하기보다는 소수가 누리던 자유로움에 집중했다. ○캐릭터 / 룸펜 라디오 PD와 느끼한 사기꾼흔히 연상하듯 열혈 독립투사 또는 매국노만 있는 세상이 아니다. ‘라듸오’의 주인공 로이드(류승범)는 천하태평 한량인 라디오 PD. ‘원스’의 봉구(박용우)는 “민족혼이 밥 먹여 주나? 오카네가 아리마센인데(돈이 없는데)” 하는 느끼한 사기꾼. 이들은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경성의 신인류다. 두 영화에는 공통적으로 재즈 여가수가 나온다. ‘라듸오’의 마리(김사랑)와 ‘원스’의 춘자(이보영)는 화려하고 속물스러운 신여성이다. ○이야기 / “드라마는 끝내야지” “3000캐럿 다이아 찾아라”‘라듸오’는 경성 방송국에서 최초의 라디오 드라마 ‘사랑의 불꽃’을 방송하는 내용. 애드리브를 일삼는 재즈 여가수와 ‘오버 액션’의 기생 등이 모여 만드니 방송사고가 다반사다. ‘원스’는 일본군 총감의 손에 들어간 전설의 3000캐럿 다이아몬드 ‘동방의 빛(사진)’을 두고 사기꾼 봉구와 도둑 춘자가 서로 보물을 차지하려 쫓고 쫓기는 이야기다. 두 영화는 일제강점기라는 상황에서도 밝게 흘러가지만, 결국 민족주의 코드를 완전히 포기하진 않는다.○스타일 / 중절모와 H라인 드레스한복과 양복과 기모노, 전차와 자동차와 인력거가 공존하는 거리에는 현대 젊은이들과 다름없는 ‘모던 보이’ ‘모던 걸’이 활보한다. 남성들은 칼라 달린 조끼까지 더한 말쑥한 정장에 중절모를 쓴다. ‘원스’의 양민혜 의상팀장은 “독립투사들 사진 등을 보니 여름에도 긴팔 와이셔츠에 양복을 갖춰 입은 멋쟁이가 많았다”고 말했다. 여성들은 할리우드 여배우처럼 등과 어깨를 훤히 드러낸 화려한 드레스 차림. 꽃무늬 시폰 드레스(이보영)나 우아한 H라인의 로 웨이스트 드레스(김사랑) 등은 지금 입어도 괜찮을 것 같다. ‘라듸오’의 배경인 방송국은 당시 러시아와 유럽풍을 접목했던 일본의 건축 양식을 따라 화이트 톤에 높은 천장과 기둥을 사용해 만들었다. 작가들의 카페 문화가 발달했던 1930년대인 만큼 영화 속 인물들도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한다. ‘원스’의 공간은 더 현대적이다. 중심 공간인 술집 ‘미네르빠’는 카바레 분위기로 화려하고 퇴폐적이다. 노랑머리 외국인도 일본군도 한국인도 자유롭게 술을 마신다. ○웃음 코드 / 독립투사도 웃길 수 있다두 영화 모두 실수연발의 어설픈 독립군이 나와 지금까지의 비장한 독립투사 이미지를 깨버린다. 특히 ‘원스’에서 술집 사장과 요리사로 신분을 숨긴 독립군 성동일 조희봉 두 조연의 코믹연기는 압권이다. 정용기 감독은 “일본 군인과 경찰 중에 한국인도 있고, 변방의 독립운동을 보여주려고 단순무식한 독립 운동가를 설정했다”며 “가치관에 대한 얘기를 진지하지 않게, ‘흘리듯’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라듸오’에선 드라마를 만들면서 문제가 생기면 내용에 교통사고와 기억상실증 등을 넣어 해결한다. 하기호 감독은 “뻔하다고 욕하면서도 그런 드라마를 보는 대중의 이중적인 태도를 꼬집고 싶었다”고 말했다. 마이크 앞에서 온몸을 쥐어짜면서 ‘날방송’을 하는 배우들의 모습이 재미있지만 전체적으로 밋밋한 편. 특히 개성 강한 배우 류승범의 ‘센 코미디’를 기대했다면 실망할 수도 있다.채지영 기자 yourca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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