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랑도의‘TV끄기혁명’

입력 2008-02-25 09: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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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 완도군 외딴섬 10가구 3주간 TV단절 실험처음엔 스트레스… 2주뒤부터 이웃간 대화-독서“아무리 책을 집어 줘도 거들떠보지 않던 아이가 이제 하루 종일 마을문고 동화책에 파묻혀 살아요. 그저 TV를 껐을 뿐인데…. 너무 신기하고 감사해요.”전남 완도군 다랑도의 소년 최승환(4) 군의 어머니 박선미(26) 씨의 말이다.주민 28명 10가구의 작은 섬 다랑도. 이곳 주민들은 2월 4일부터 24일까지 3주 동안 ‘TV 끄기 혁명’을 겪었다.이들에게 TV 끄기는 삶을 통째로 뒤흔드는 사건이었다. 다랑도는 완도에서 2시간 동안 배를 두 번 갈아타고 들어가야 하는 외딴 섬. 인터넷은 이장 최대문(56) 씨 집에서만 가능하다. 세상과 실시간으로 연결된 유일한 창구가 TV뿐인 셈이다.EBS TV ‘리얼 실험 프로젝트 X’ 제작진은 2월 초 ‘TV 없는 세상의 삶을 관찰해보자’는 취지로 ‘집단 TV 끄기’ 실험을 다랑도에 제안했다. 최 이장은 “황당했다”고 회고했다.“육지 사람들이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건가 싶었어요. 섬사람들에게 TV를 보지 말라는 건 생활의 큰 부분을 포기하라는 얘기거든요.”주민들의 반응도 대개 비슷했지만 며칠간의 회의 끝에 갈수록 사람이 떠나가는 섬의 모습을 세상에 알리자는 의견이 모여 제작진의 요청을 받아들였다. 주민의 동의를 얻어 TV가 있는 방마다 폐쇄회로(CC) TV가 설치되고 모든 TV의 전원플러그가 뽑혔다.주민들은 첫날부터 후회막급이었다.김근배(69) 씨는 “암흑세계가 따로 없었다”며 “드라마 전개를 궁금해하는 마누라의 조바심이 측은할 정도”라고 말했다.최 이장의 손자 승환 군은 종일 TV 앞에서 발버둥치며 통곡했다. 부모가 모두 생업에 바빠 두 살 때부터 TV를 끼고 살던 승환 군에겐 견디기 힘든 고통이었던 것. 소일거리가 없어진 주민들은 마을회관에 모였다. 처음에는 고스톱 판만 벌어졌다. 실험을 시작한 지 3일 뒤 스트레스를 받은 사람들끼리 험한 말을 주고받는 일도 생겼다.마을 전체에 눈에 띄게 긍정적인 변화가 관찰되기 시작한 것은 TV를 끈 지 2주가 지난 시점부터.세상으로 열린 창을 잃었다는 박탈감에 힘들어했던 마을 사람들은 서로에게 통하는 새 창을 발견했다.“TV 앞에서 나누던 얘기는 주로 드라마 주인공에 대한 것이었죠. TV를 끄면서 가족이나 자기 자신의 얘기를 많이 하게 된 것 같아요. 서로 얼굴을 마주 보는 시간도 부쩍 늘었고요.”마침 설을 맞아 고향을 찾은 김홍수(48) 씨는 “왜 설에 집에 와서 TV를 보지 못하느냐”며 동생 동일(33) 씨에게 따졌지만 주변의 설득으로 동생과 함께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갔다.“7년 만에 처음 고기 잡으러 나온 거예요. 명절마다 고향을 찾아도 TV 앞에 앉아 있다가 돌아갔는데….”미룬 채 내버려뒀던 마을의 공동 작업도 하나둘씩 해결됐다. 청년들은 책꽂이를 만들었고 지저분하던 부두와 냉동창고가 말끔하게 치워졌다. ‘다랑도의 TV 끄기 실험’은 4부작으로 EBS에서 26일부터 매주 화요일 오후 7시 55분에 방영된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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