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아“맛있어서?멋있어서!”…일식당단골출연

입력 2008-04-16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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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온에어’의 세트팀이 가장 고민을 많이 했을 공간은 어디일까. 아마 주인공들이 이렇게 얽히고 저렇게 설키는 일식당의 방일 것 같다. 사람 수만 달리할 뿐 이 드라마에서 주인공이 포함된 주요 인물의 갈등이 심화되고 또 해소되는 접견 장소의 8할은 일식당이다. 오승아(김하늘)가 짜증을 참지 못해 집어던지는 것도 받침에 얌전히 올라가 있던 젓가락이었고, 서영은(송윤아)가 홧김에 거푸 들이키는 것도 ‘오차’ 잔에 들어있던 물이다. ‘온에어’의 극본을 쓰는 재기발랄한 작가 김은숙은 이렇게 편중된 장소를 송윤아의 입을 통해 “우리 물고기 좀 그만 먹자, 뱃속이 온통 어항 같아”라고 말하게 했다. 그러나 여전히 그들은 서로의 뱃속을 광어, 돔이 가득한 수족관을 만들면서 여전히 끝나지 않을 듯한 갈등을 직조해 가고 있다. 왜 드라마나 영화에서 중요한 만남은 모두 일식당의 작은 룸에서 책상다리를 하고 갖는 걸까. 일식당의 작은 룸이 드라마 속에서 중요한 만남의 장소로 애용되는 이유는 누구나 생각할 수 있듯 조용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단지 조용하다는 특징은 일식당의 빈번한 등장에 대한 설명으로 충분하지 않다. 그럼 다른 곳 보다 세트를 만들기가 쉬워서일까. 하지만 카메라가 없는 실생활에서도 누군가에게 대접하거나, 그 대접을 통해 어떤 것을 얻어내거나 할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장면은 일식당 앉은뱅이 의자와 식탁이다. 물론 다른 식당에도 그런 별실은 차고 넘친다. 하지만 한 상 가득 차려 놓거나 십여차레 쟁반을 든 종업원이 들락날락하는 한식당, 음식이 나올 때마다 손님 곁에 와서 직접 덜어주거나 테이블 회전판 빙빙 돌리며 먹는 중식당, 그리고 나이프와 포크를 열심히 움직이고 음식 온도를 고려해 치열하게 썰어 먹어야 하는 양식당이 줄 수 없는 분위기가 일식당에는 존재한다. 음식은 대개 긴 얘기 후에도 먹는 데 지장이 없을 날 생선이나 야채류 등이고 종업원 한 번 들이지 않아도 불편없이 긴 회합을 마무리할 수도 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건 먹는 행위가 말하는 행위를 잠식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중국 음식이 가득 차려진 테이블 앞에서 젓가락 든 채 말하는 장면은 “중국 음식은 식으면 맛 없는데”라는 생각이 끼어들게 하고, 스테이크를 열심히 썰어 입에 가져가면서 심각한 대사를 날리면 “저렇게 먹으면서 무슨 얘기를 하나”하고 생각하게 한다. 한 상 그득한 한정식을 앞에 두고 대화가 지속되면 ‘저 많은 걸 다 먹기는 하는 거야’하면서 시선이 분산된다. 하지만 일식당은 배경으로서의 역할에 충실하다. 분위기를 압도하거나 주도하지 않고 대화의 장으로서만 기능한다. 물론 드라마의 모든 주요 만남이 일식당에서 일어나는 것은 몰취미로 읽힌다. 이제는 50개국에서 대한민국의 드라마를 본다는데, 그들에게 “대한민국 사람은 중요한 일이 있으면 일식당에서 밥 먹는다”라는 인상을 주는 건 조금 탐탁지 않지 않나. 결국 무엇을 먹으면서 얘기를 한다 해도 태도의 문제 아닐까. 일식당 착각 ○ 일식당의 ‘룸’을 잡고 기다리면 큰 대접을 했다는 생각을 버릴 것, 식상하고 상식적인 선택으로 비춰질 수도 있다. ○ 중요한 얘기를 하려고 했다면 먹는 데 품이 많이 드는 음식을 고르지 말 것. 꽃게 살을 발라 먹으면서 옛 연인의 주소나 사업 정보를 입수할 수는 없다. 조경아 음식과 문화를 비롯한 다양한 세상사에 관심이 많은 자칭‘호기심 대마왕’. 최근까지 잡지 ‘GQ’ ‘W’의 피처 디렉터로 활약하는 등, 12년째 왕성한 필력을 자랑하는 전방위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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