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모님, 다르다
더 솔직하게 표현하고 더 화끈하게 연기하는 건 드라마 속 사모님의 달리진 면모다. 각자의 콤플렉스를 드러내며 시청자의 공감을 얻는 모습에서 사모님들의 좀 더 현실적으로 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가출한 이휘향은 갈 곳이 없어 가정부의 집을 찾는다. 고급스러운 생활을 잊고 족발에 소주를 마시며 신세를 한탄하고 취해 목청껏 운다. 이 때 입은 옷은 ‘몸빼 바지’다. “와인보다는 역시 소주”라는 대사까지 곁들인 이휘향은 이전과는 다른 모습으로 공감대를 샀다.
그동안 드라마에서 부를 과시하는 설정으로 지겹게 등장한 ‘돈 봉투’를 섣불리 내밀지 않는 것도 3명 사모님의 공통점. 좀 더 ‘쿨’ 해졌다는 방증이다. 돈으로 사람 관계에 마침표를 찍으려는 억지스러운 행동을 하지 않는다. 일단 결정하면 뒤끝 없는 모습도 마찬가지다.
마냥 고고해 보이는 장미희는 주관이 뚜렷하다. 사돈이 될 김혜자가 상견례 자리에서 “어렵게 돈 500만원 만들었으니 혼수비로 받아 달라”고 말하자 거절하지 않고 받는다.
이전 드라마에서 숱하게 등장한 빈부 격차를 과시하는 민망한 상황을 요즘 사모님들은 만들지 않는다.
일반인의 기준에서 본다면 극중 재벌 사모님들은 소위 ‘된장녀’에 가깝다. 하지만 감추지 않고 솔직하게 드러내는 모습은 오히려 웃음과 희열을 준다.
SBS 드라마국의 김영섭 책임 프로듀서(CP)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드라마 속 인물상도 변화하고 있다”며 “만약 된장녀라도 그 모습을 솔직하게 표현하면서 현실 감각을 높여야 시청자의 눈높이에 맞는다”고 분석했다.
이어 김 CP는 “그동안 사모님은 돈 봉투를 내밀거나 도도한 모습으로 피상적인 존재에 머물러 왔지만 최근에는 사모님의 아픔이나 슬픔을 찾아내 캐릭터의 진실성을 가미하는 추세”라며 “이휘향 씨의 경우 귀엽거나 매력적인 면을 충분히 갖춰 단순히 주인공의 대척점에 있는 게 아니라 서로 보완하면서 다양성을 표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현대판 사모님 3인방’
# 고은아(장미희·56세) : 예비 며느리를 피팅(fitting) 모델쯤으로 안다. 명품 숍을 찾아 디자인별로 구두를 신겨보고 고가의 구두를 9켤레나 한꺼번에 사준다. 유명 브랜드의 옷을 집으로 주문해 드레스 룸에서 예비 며느리에게 입혀보기도 한다. 신제품 품평회를 방불케 하는 적나라한 평가를 가하더니 몇 벌을 선택하고 나머지는 명품 숍으로 다시 돌려보낸다.
# 이세영(이휘향·55세) : 남편에게 “며느리는 사파이어가 잘 어울리고 나는 루비가 잘 어울린다”고 말하는 성격. 얼마 전 며느리의 친정이 힘을 발휘한 덕분에 사업권을 따냈으니, 남편에게 한 턱을 내라는 뜻. 부러울 게 없지만 자식의 일은 뜻대로 되지 않는다. 맏딸이 평범한 집안의 아들을 남편감으로 골라와 속을 썩이자 딸에게 상속 포기 각서까지 내민다.
# 소희정(오미희·55세) : 젊은 여자들의 사진을 쭉 늘어놓으며 강남의 유명 ‘마담 뚜’에게 어렵게 받아온 사진이라는 설명을 덧붙인다. 다름 아닌 며느리 후보자들. 이를 지켜보는 남편과 아들이 반길 리가 없다. 여성단체를 이끌면서 봉사활동을 한다. 소외된 곳에 교육용 컴퓨터를 보내고 친절하게 직접 ‘보도자료’까지 만들어 언론에 뿌린다.
이해리기자 gofl1024@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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