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초34,나를잡아야육상이산다

입력 2008-05-18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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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멕시코시티올림픽은 세계육상에 한 획을 그었다. 밥 비먼(미국)은 멀리뛰기에서 8m90cm를 뛰어 이전 세계기록을 무려 55cm나 늘렸다. T. 스미스(미국)는 200m에서 19초83, L. 에반스(미국)는 400m에서 43초86만에 결승선을 통과했다. 모두 세계신기록. 100m에서는 짐 하인스(미국)가 인간 한계라고 여겨졌던 10초벽을 허물며 9초95로 우승했다. 1979년, 같은 장소에서 하계유니버시아드가 열렸다. 동아대 4학년 서말구(52·해군사관학교교수 겸 육상대표팀 감독)는 남자100m 준결승에서 10초34를 찍었다. 아시아신기록이었다. 200m에서도 한국육상사상 최초로 21초벽을 허물며 20초91을 기록했다. 9일 제37회 전국종별육상선수권대회가 열린 김천종합운동장에서 서말구를 만났다. 서말구는 “그 때까지만 해도 이렇게 오랫동안 깨지지 않는 기록이 될 줄은 몰랐다”고 했다. ○ 내 최고 기록은 10초00 서말구의 은퇴 후 단거리의 계보는 장재근으로 이어졌다. 장재근은 85년 자카르타에서 열린 제6회아시아육상선수권 200m에서 20초41을 기록하며 서말구를 넘어섰다. 하지만 100m에서는 10초35가 개인최고기록이었다. 서말구의 기록이 깨지지 않자 주변에서는 “대단하다”는 반응과 함께 “공기 저항이 적은 고지대의 덕을 봤다”는 질투어린 시선도 있었다. 멕시코시티는 해발 2000m 이상이라 산소가 희박하다. 68년 비먼의 멀리뛰기 기록이 20년 이상 깨지지 않자 나온 반응과 같았다. 하지만 서말구는 반짝 스타가 아니었다. 핸드 타임이기는 했지만 10초30의 기록은 몇 번을 세웠다. 유니버시아드 직후 캐나다에서 열린 월드컵육상에서는 10초00만에 결승선을 통과했다. 태국과 일본 심판들이 지켜봤지만 핸드 타임이라 공식기록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아시아 육상관계자들은 “서말구가 내년(1980모스크바올림픽)에 큰 사고를 칠 것”이라며 수군댔다. ○ 큰 꿈을 품어라 자신의 한국기록이 크게 보도했지만 그 흔한 스크랩 한 장 해둔 게 없다. 이미 한국을 넘어 세계를 품을 야망을 가졌기 때문이다. 서말구는 유니버시아드에서 8명이 겨루는 최종 결선에 진출하지 못하고 9위에 그쳤다. 하지만 “당시 10초10을 뛰었던 챔피언도 같이 뛴다면 충분히 잡을 수 있는 상대라고 생각했다”고 회상했다. 전지훈련이 흔치 않았던 시절, 국내 유력 기업인들은 서말구 후원회를 조직해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서말구는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굴에 들어가야 한다”며 미국의 남가주대학으로 날아가 세계적인 선수들과 함께 땀을 흘렸다. 평범한 선수는 자기보다 뛰어난 기량의 선수들과 한조에 속하면 제 기량을 내지 못한다. 심리적인 위축감 때문. 서말구는 “외국의 유명 단거리 육상선수들 곁에는 전담 심리치료사가 있을 정도”라고 귀띔했다. 하지만 서말구는 심리치료사가 필요 없는 선수였다. 아직도 육상선수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꼽는 것은 “세상을 잡아먹을 듯한” 포부와 자신감이다. ○ 아! 모스크바 1980년, 서말구는 올림픽 육상 기준기록을 통과한 3명의 아시아 선수 중 한 명이었다. 목표는 메달권 진입. 하지만 냉전의 여파가 영글어 가던 꿈을 앗아갔다. 모스크바올림픽 개막 한 달 전, 서말구는 자본주의 국가들이 올림픽 불참을 선언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정신적 공황에 빠졌다. 결국 1981년 전국체전을 끝으로 현역 선수시절을 마감했다. “마음을 추스르고 2년간만 열심히 했으면 1982뉴델리아시안게임에서는 금메달을 땄을 텐데….” 시대가 망쳐버린 현역 시절의 말미는 두고두고 한스럽다. ○ 가장 큰 스승은 노력 미국의 선진육상을 30여 년 전에 체득했지만 육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과학이전에 마음가짐”이라는 생각은 변함이 없다. 미국은 개별 선수들에게 맞춤형 주법을 교육시키는 것이 강점이다. 마이클 존슨은 단거리 선수들이 잘 쓰지 않는 업라이트 주법(상체를 꼿꼿이 세우는 주법)으로 1996애틀랜타올림픽 200m 우승을 차지했다. 서말구는 “많은 사람들이 특이한 주법의 겉모습에만 집중하지만 엄청난 노력이 필요했을 것”이라고 했다. 이어 “200m 훈련도 해야 한국선수들이 취약한 100m 막판 스퍼트를 보완할 수 있는데 젊은 선수들이 200m를 (100m보다 힘이 든다는 이유로) 기피한다”며 쓴소리를 했다. “가장 큰 스승은 노력이라는 사실을 (선수들이) 깨달아야 한다”는 말에서 후배들에 대한 애정이 묻어나왔다. 비먼의 기록은 1991년 도쿄세계선수권에서 마이크 파월에 의해 깨졌다. 하지만 비먼의 기록은 역대 2위에 올라 ‘멕시코시티의 전설’로 여전히 빛을 내고 있다. 10초34의 아성도 언젠가는 무너지겠지만 서말구라는 이름은 한국육상역사에 길이 남을 것이다. 김천=전영희 기자 setupm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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