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블봤지? VS두번졌지?…맨유VS맨시티‘맨체스터더비’100년전쟁

입력 2008-05-22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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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체스터를 대표하는 진정한 축구클럽은 어디인가’라는 질문에 영국 외 대다수의 축구팬들은 자신 있게 알렉스 퍼거슨이 이끄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맨유)라고 답할 것이다. 맨유는 22일 새벽(한국시간) 첼시와의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에서 승부차기 끝에 승리를 거두고 ‘더블’을 완성했다. 그러나 영국 내에서 그렇게 용감하게 답하는 팬들을 만나기란 쉽지 않다. 그럼 무엇이 이토록 뻔한 질문에 영국인들을 주저하게 만드는 것일까. ○ 맨유와 맨시티 그 역사를 찾아서 그것은 100년 넘게 맨체스터의 진정한 주인 자리를 놓고 경쟁해온 맨체스터 더비, 즉 맨유와 맨체스터시티(맨시티)가 있기 때문이다. 이번 2007-2008시즌 17번째 챔피언이 된 맨유에 승점 32점 뒤진 9위로 시즌을 마친 맨시티가 맨체스터를 대표하는 더 위대한 클럽이라고 열변을 토하는 팬들도 있다. 이는 지난 100년간 양 클럽간의 애증관계를 살펴봐야 이해할 수 있다. 맨유가 전통적으로는 리버풀, 최근에는 아스널을 거쳐 첼시와 라이벌 관계를 형성해왔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특히 리버풀과는 2006년 맨유의 앨런 스미스가 리버풀 팬들의 공격을 받아 다리가 부러지는 등 악명 높은 여러 사례가 있다. 그러나 맨유에게 위협이 될만한 유일한 클럽은 맨시티라고 믿는 이들이 적지 않다. 이번 시즌에 맨유를 상대로 두번 모두 승리한 클럽은 맨시티가 유일하다는 사실은 이런 주장이 과장이 아니라는 걸 말해준다. 그 이전을 본다면 퍼거슨의 맨유가 EPL을 장악하기 전인 1967년부터 1993년까지 맨유는 단 한번의 리그 우승도 하지 못했다. 반면에 맨시티는 챔피언십(당시 리그 우승)을 비롯하여 FA컵, UEFA 컵위너스컵, 리그컵 우승을 하게 된다. 적어도 이 기간 동안엔 맨시티가 맨유보다 휠씬 나은 팀이었다. 1878년 뉴턴 히스(맨유의 전신) 이후 2차 세계대전까지 맨유는 전력의 기복을 보이며 별로 주목받지 못하는 팀이었다. 특히 1920-1930년대에는 강등과 승격을 반복하며 3부리그로 강등될 것을 걱정하는 처지였던 것에 비해 맨시티는 같은 기간 세번의 챔피언십 우승과 FA컵 우승으로 맨유보다 더 큰 클럽임을 인정받았다. 이런 과거의 우월성을 바탕으로 지금도 맨시티 팬들은 맨유를 ‘넝마 조각들’이라고 격하해 부르는데 이는 1945년 올드트래포드가 독일 공군의 폭격으로 파괴돼 맨시티의 구장을 빌려 써야했던 맨유의 어려운 처지를 비꼬는 데서 유래한다. ○ 매트 버스비 감독의 반전 이렇게 굴욕적 열세를 인정할 수밖에 없던 맨유가 지금의 라이벌 관계를 형성할 수 있었던 결정적 계기는 맨유 역사상 최장수 매니저로 남아 있는 전설적 영웅 알렉산더 매튜 버스비 경(약칭 매트 버스비) 때부터다. 그런데 맨유에서 가장 존경 받는 매니저인 버스비도 맨시티에서 선수생활을 한 맨시티 출신이고 당시의 경험이 버스비의 비전을 맨유에서 꽃피울 수 있게 한 기반이었다. 이 스코티시 광부의 아들은 맨유의 매니저를 수락한 이유가 맨시티로 인한 맨체스터에 대한 특별한 애착 때문이었으며, 그것이 자신을 맨유의 매니저로 이끌었다고 회고한 바 있다. 버스비는 감독으로 부임하자마자 맨유를 챔피언 리버풀에 승점 1점 뒤진 리그 2위로 끌어올린다. 1년 뒤에는 블랙풀을 4-2로 격파하며 FA컵을 들어 올리는데 당시에는 이 경기를 두고 역대 가장 위대한 결승전이라 칭했다. 그러나 버스비의 위대성은 그가 맨유의 노쇠해가는 스쿼드와 막대한 부채로 스타급 선수를 사올 수 없는 두가지 악조건을 극복했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그는 재능 있는 어린 선수들을 유스아카데미에서 키워 맨유를 젊고 강한 클럽으로 재탄생시켰는데 1955-1956시즌 챔피언십을 우승했을 때 맨유의 평균 나이가 22세에 불과했다. 이들이 바로 그 유명한 ‘버스비의 아이들’이다. 그러나 이것은 버스비 신화의 시작일 뿐이었다. ○ 뮌헨의 참사, 그 이후 1956-1957시즌 유러피언컵 준결승에서 레알 마드리드에 패한 버스비가 1957-1958시즌 유럽의 정상에 오를 준비를 하고 있는 와중에 운명의 시간은 다가오고 있었다. 레드스타 베오그라드를 물리치고 유러피언컵 준결승에 다시 진출한 맨유 선수단을 태운 비행기가 중간 경유지 뮌헨을 이륙하다 추락하는 사고가 나고 만 것이다. 이 사고로 22명이 현장에서 사망하는데 여기에는 버스비의 아이들 7명이 포함돼 있었다. 2주일 후에는 촉망받던 스타 던컨 에드워즈가 치료중 죽음으로써 버스비의 아이들 사망자수는 8명으로 늘어났다. 물론 버스비 자신도 생명을 위협하는 부상을 당하게 된다. 참사 후 맨유의 회장 하드맨은 “비록 맨유는 죽은 이들을 애도하고 부상당한 이들을 위해 슬퍼하지만 아직 우리를 위한 위대한 날이 오지 않았다. 맨유는 다시 일어 설 것”이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그의 예언대로 버스비의 맨유는 벤피카를 4-1로 물리치고 유러피언컵을 웸블리에서 들어올리게 되는데 이는 잉글랜드 클럽 최초의 일이었다. 많은 맨시티 서포터들은 뮌헨 대참사가 맨유에겐 대전환점이자 오늘의 성공에 촉매제가 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 전세 역전,맨유와 맨시티 대참사 생존자 중 한 사람인 보비 찰튼은 “뮌헨 이전 맨유는 맨체스터만의 클럽이었지만 그 이후에는 모든 이들의 클럽이 되었다”고 했다. 대신 맨시티는 그동안 누려온 우월적 지위를 위협받게 된다. 결국 버스비 이후 퍼거슨까지 맨유의 독주를 바라보며 맨시티는 지역 더비라는 명목만을 유지한 채 별다른 성적을 내지 못하고 있다. 맨시티 팬들은 “맨유는 이제 상업성에만 치우쳐 맨체스터라는 정체성을 상실한 거대 공룡이 됐다”고 비판하며 라이벌 의식을 곧추세울 뿐이다. 세계시장에서의 수익성은 미국의 스포츠 재벌 말콤 그레이저가 1조2000억원의 부채를 안고도 맨유를 매력적인 투자대상으로 확신하는 요인이 됐다. 그러나 이런 맨유의 세계적 성장은 맨시티 팬들에게는 비판의 호재로, 맨유 팬들에게는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 맨시티 팬들은 자주 “맨유 서포터들은 맨체스터 출신이 아니다”라고 공격하는데 이는 맨유 팬들이 가장 듣기 싫어하는 말이 됐다. 현 선더랜드 감독인 로이 킨이 남긴 ‘새우 샌드위치’ 일화는 당시 팬들과 매스컴에서 큰 반향을 일으킨 사건이었다. 킨은 “맨유 팬들이 구장에서 선수들을 응원하기보다는 새우 샌드위치를 먹는데 더 관심이 있고, 진정 축구라는 경기를 이해하고 있는지 의문이 든다”며 맨유 팬들의 각성을 촉구했었다. 지금도 맨체스터 더비에서 맨시티 서포터들은 맨유를 향해 ‘이제 새우 샌드위치 먹을 시간’이라며 야유를 퍼붓고 있다. 그러나 맨시티 팬에게 자살하고 싶은 감정을 불러올 정도라는 사건이 발생했는데 이는 태국 출신 재벌 탁신의 맨시티 인수였다. 맨유가 미국인의 손에 넘어간 것을 은근히 즐기던 맨시티 팬들은 단순히 외국인의 손에 운명이 넘어간 것보다 자신들이 맨유의 전철을 밟을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휩싸여있다. 요크(영국)=전홍석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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