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로마시는와인]비즈니스접대때기억할이름‘바롤로’

입력 2008-06-15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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폰타나프레다‘세라룽가달바’
지난 줄거리 - 와인을 잘 몰라 스트레스를 받던 정유진은 소믈리에로 일하는 고교 동창 김은정에게 연락해 매주 한 차례 과외를 받기로 한다. 첫날 라벨에 담긴 정보를 배운 정유진은 문익점처럼 포도 접수를 밀수한 장 레옹, 돔 페리뇽 수사의 코르크 마개 발명으로 탄생한 샴페인, 백년전쟁의 원인은 와인이라는 것을 배운다. 샤블리가 굴과 잘 어울리는 이유는 중생대 바다였던 샤블리 토양에 굴 껍질이 많이 남아있기 때문이고, 스크류캡이 코르크보다 신선한 맛과 향을 담을 수 있는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열한 번째 와인 과외날. 김은정이 좋은 와인을 갖고 왔다며 한참 호들갑을 떨더니 ‘바롤로(Barolo)’라고 적힌 와인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는다. 바롤로?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름이다. 맞아! 예전에 누군가 그랬다. 비즈니스 접대할 때 모르면 바롤로를 시키라고. 그 정도로 좋은 와인이라고. “네가 와인을 열심히 공부하니까 오늘 특별히 갖고 온 거야. 바롤로는 들어봤지?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와인 중 하나니까. 얘는 ‘폰타나프레다’의 ‘세라룽가 달바(Serralunga d'Alba)’야.” “바롤로는 뭐고, 폰타나는 뭐야? 또 세라룽가는? 너무 헷갈려.” “용어가 우리말이 아니라서 그렇지 알고 나면 간단해. 바롤로는 이탈리아 지역명으로 이 곳에서 좋은 와인이 많이 나와서 바롤로 와인이라고 통칭하지. 폰타나프레다는 이 곳에서 와인을 만드는 회사고, 여기서 만든 바롤로 와인에 붙인 이름이 세라룽가 달바야.” 잔을 가볍게 돌리니 루비 빛이 감도는 짙은 레드 컬러에서 나오는 향이 강렬하다. 입 안을 가득 채우는 바디감과 목을 타고 내려갔다 코로 다시 올라오는 여운의 느낌이 절묘하다. 산도도 적당해 부담스럽지 않다. “어때? 오렌지, 장미, 스파이시한 향이 복합적으로 느껴지면서 드라이하고 부드러운 질감, 입 안에 오래 남는 여운이 근사하지 않아?” 김은정의 설명을 들으니 그런 것 같기도 한데 아직은 잘 모르겠다. “이 와인에도 재미난 스토리가 담겨있어. 이탈리아를 통일한 사보이 왕조의 비토리아 엠마뉴엘 2세와 군인의 딸 로사 베르셀라나 얘기인데. 엠마뉴엘 2세는 왕비가 죽은 뒤 베르셀라나와 결혼했어. 그런데 생각해 봐. 군인 딸을 왕실에서 순순히 받아들였겠어. 왕의 고집으로 결혼은 했지만, 새 왕비는 왕관도 쓰지 못하고, 상속 재산도 가질 수 없었어. 결국 두 사람의 아들 에밀리오 궤리에리 백작은 왕이 결혼 전 베르셀라나에게 지어준 세라룽가 달바 지역의 별장과 사냥터만 물려받았는데 이게 폰타나프레다 와인의 출발점이 돼.” “야∼ 얘기를 들으니 마치 왕관을 버리고 심슨 부인과 결혼한 윈저공 스토리가 생각나는데.” “엠마뉴엘 2세가 왕위를 버린 것은 아니지만 비슷한 부분이 있지. 하여간 궤리에리 백작은 인근 포도밭에서 나온 바롤로 와인의 맛에 반한 뒤 유일한 재산인 사냥터를 포토밭으로 개간하고, ‘미라피오리 비니탈리아니’라는 이름으로 1878년 와이너리를 세워. 전 직원이 와인 생산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와이너리 내 작은 마을까지 만들었지. 숙소, 학교, 가게, 교회까지 갖춰진 마을 말이야. 정말 대단하지 않아? 1931년 궤리에리 백작이 정치적으로 몰락하면서, 채권자인 MPS그룹에 와이너리가 인수됐고, 회사명은 현재의 폰타나프레다로 바뀌었지만 그의 정신은 여전히 녹아있지. 이제 왜 지금 마시는 게 세라룽가 달바 인지 알겠지.” 이길상 기자 juna109@donga.com 한국국제소믈리에협회 KISA 정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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