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엄마의다른생각]엄마는당당한‘빠순이’

입력 2008-07-11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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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 남성 아이돌 그룹의 광팬이다. 매일 그들의 소식을 찾아 읽고 그들의 근황을 궁금해 하며 그들의 노래를 MP3에 담아 듣는다. 내 블로그는 그들의 자료를 모으는 블로그이며, 때로 그들을 소재로 한 팬아트북을 구입하기도 한다. 내가 인터넷으로 그들의 동영상을 보고 있던 어느 날, 17살 난 우리 아들이 그런 나를 발견하였고 나는 아이 앞에서 그들의 팬임을 고백했다. 무슨 대단한 고백인양 그 순간에 사실 내 목소리는 많이 떨렸다. 그 그룹의 팬들은 대개 자신이 그 그룹의 팬인 것을 숨기고 다니는데, 일반인들에게 그 아이돌 그룹이 어떻게 비춰지고 있는지, 또 사람들이 ‘빠순이’를 얼마나 우습게 생각하는지 잘 알기 때문이다. 우리 아이는 물론 그런 나를 우습게 바라보진 않지만 별로 진지하게 생각하지도 않는 듯하다. 우리 아이는 랩을 좋아한다. 한때 랩 동아리에 들기도 했었고 MP3에는 500여 곡의 랩 음악이 들어차있다. 아이가 좋아하는 래퍼 중에는 아이돌 그룹과 빠순이를 비하하는 랩을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래퍼들과 아이돌 그룹은 가까울래야 가까울 수 없는 사이일 것이니. 아이와 같이 텔레비전을 보다가 서로가 좋아하는 가수가 나오면 뭔가 분위기가 어색해진다. 남의 취향을 비방하는 것은 교양에 어긋나는 짓인 것을 알고는 있지만 흔쾌히 인정하기도 쉽지는 않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늘 나는 뭔가 변명을 하기 바쁘고 아이는 왠지 모르게 나보다는 여유가 있다는 것이다. 사실 나는 아이가 좋아하는 래퍼의 CD 전체를 듣고 기겁을 한 적이 있다. 나의 가치관에서는 정말 용납이 되지 않는 가사였다. 하지만 나는 아이에게 한 번도 그런 부분에 대해 얘기한 적이 없다. 아이의 가치관에 영향을 미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그 어떤 평가의 말도 하지 않는다. 어떨 때에는 내가 먼저 아이에게 래퍼들의 공연 티켓을 끊어준다. 매우 비교육적인 발상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아이가 스스로 자신의 가치관을 만들어 나가기를 원한다. 조급해하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어른의 입장에서 가치관의 위계나 취향의 위계를 만들어 주고 싶지 않다. 내가 하기 싫은 것은 ‘그 래퍼의 가사는 이런 부분은 정말 올바르지 않아’라고 가르쳐 주는 것이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만인에게 내가 모 그룹의 ‘빠순이’임을 자랑스럽게 알리는 것이다. 윤 재 인 비주류 문화판을 기반으로 활동해온 프리랜서 전시기획자. 학교를 다니지 않는 17살 된 아이와 둘이 살고 있다. 생긴 대로 살아가도 굶어죽지 않을 방법을 모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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