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영은이상우의행복한아침편지]하늘천따지가마솥에누룽지

입력 2008-07-14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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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초등학교 6학년 아들이 한자 공인 3급 시험에 합격을 했습니다. 지난 2월에도 시험을 봤었지만 딱 1점이 모자라서 미역국을 먹었거든요. 사실 공인 3급 시험은 고등학교 수준이라 어른들이 대부분인 시험장에 아들을 들여보냈을 땐 괜히 제 마음이 짠했지요. 아들을 시험장에 들여보내고 기다리면서 35년 전, 중학교 시절 서당에 다닐 때가 생각났습니다. 그 때 제 친구였던 은희네 외삼촌이 서당을 하셨습니다. 은희가 한자를 줄줄 외우는 것을 보니 괜히 샘이 나더군요. 그래서 아버지께 저도 한자를 배우고 싶다고 했더니 서당에 보내주셨습니다. 처음에는 부수부터 배웠는데, 부수를 떼고 주자십회훈에 천자문을 배웠지요. 그날그날 새로 배운 한자 쓰기가 끝나면 다같이 눈을 감고 양쪽 어깨를 좌우로 흔들며 하늘 천, 땅 지, 검을 현, 누를 황, 집 우, 집 주∼이렇게 소리 내서 천자문을 처음부터 배운 글자까지 외웠습니다. 선생님께서는 다같이 천자문을 외우기 전이면 항상 “느그들 머릿속에 한자를 많이 담아가라고 말하지 않겠다. 많이도 말고, 하루에 딱 한 글자씩만 담아가거라. 빨간 날짜를 빼면 1년에 300자 이상 배울 수 있고, 10년이면 3000자를 배울 수 있다”고 귀에 딱지가 앉도록 말씀하지요. 하지만 저는 한쪽 귀로 듣고 한쪽 귀로 흘려버렸고 서서히 싫증이 날 때 즈음해서는 집에 있으면 동생들을 돌보고 집안일을 하는 것보단 낫겠단 생각에 소풍가듯 서당을 드나들었습니다. 그렇게 설렁설렁 배워도 학교에서 한자 시험만은 백점을 맞았기에 저는 더 오만해졌었지요. 그런데 어느 날 다른 건 몰라도 한자시험만은 백점을 맞는 저를 시샘했던 옥이가 저를 따라 서당에 가겠다고 했습니다. 모두 그러했듯이 옥이는 부수 책부터 시작했고, 빠른 속도로 부수를 뗐습니다. 전 자잘한 책 몇 권을 떼도록 책거리를 한번도 내지 않았는데 먹고 살만했던 옥이는 부수 책 한권을 떼더니 새 언니와 함께 찰시루떡 한말을 머리에 이고 서당으로 가져와서 서당 선생님과 우리 모두를 깜짝 놀라게 했지요. 사실 대부분 부수는 책거리를 안하고 천자문과 명심보감을 떼야 집에 있는 고구마나 감자로 책거리를 대신 하는 것이 고작이었거든요. 그런데 부수 책 한권을 떼고 찰시루떡을 해 온 옥이가 고마우면서도 우습던지. 하지만 옥이는 부수를 떼고 어려운 한자가 시작되자 어렵기도 하고 매일 외우고 써야 하는 게 힘들다며 서당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서당을 그만둔 옥이는 어떻게 지내는지. 같이 서당에 다니던 옛 친구들을 만나게 된다면 그 때 그 시절로 돌아가 다같이 천자문을 외워보고 싶습니다. 서울 강동|양귀엽 행복한 아침, 왕영은 이상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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