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영은이상우의행복한아침편지]가족들의외면어찌하리오

입력 2008-07-12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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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자영업을 하는 남편과 중학교, 고등학교를 다니는 두 딸에게 생활의 도우미이자 기쁨조로 살아왔습니다. 그렇게 가족만 생각하며 평생을 살아왔던 제게, 어느 날 후배가 직장에 다녀보지 않겠냐고 권유를 해 왔습니다. 마흔 여섯 살에 재취업을 하게 된 겁니다. 저는 꿈에도 그리던 일이라 너무 기뻤지만, 남편은 반대를 했습니다. 저는 속으로 ‘그래 나 없이 뭐 사무실이고 집안이고 제대로 돌아가겠어? 이번 참에 내가 얼마나 소중한 사람이었는지 한번 느껴봐라’하며 호기를 부리고, 당당하게 첫 출근을 했습니다. 그렇게 한 달쯤 지났을 때 이쯤 되면 집으로 돌아와 달라고 가족들이 사정을 할 줄 알았는데, 어느 날 남편이 제게 그러는 겁니다. “당신이 옆에서 잔소리를 안 하니까, 일이 너무 잘 풀려∼ 당신 앞으로 꾸준히∼ 일해∼” 이러는 겁니다. 중학교 다니는 제 딸은 “엄마! 집에 왔는데 엄마가 없으니까 너무 좋아∼ 내 친구들한테 물어보니까 다들 집에 엄마가 없는 게 더 좋대! 엄마 앞으로 계속 직장 다니세요∼” 하고 대못을 박았습니다. 그러니 사회생활이 아무리 힘들어도 도무지 그만 둘 수가 없었습니다. 나이 탓일까요? 아님 못된 성깔 탓일까요? 사회생활은 매일매일이 너무 힘들고 버거워서 하루에도 몇 번씩 그만두고 싶다고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렇게 참다∼ 참다 못 해, 4개월째가 되었을 때, 저는 제가 먼저 백기를 들었습니다. 두 손 두 발 다 들고, 퇴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만두게 되는 이유야 이런 저런 말로 둘러 댈 수 있지만, 솔직히 말해 3년 4년 꾸준히 일해 온 사람들을 쫓아가기에, 저는 너무나 능력부족이었습니다. 어쨌든 그렇게 백조가 되던 날 저는 집에 돌아왔다는 기쁨으로 주변을 둘러보았습니다. 제가 일을 다닌 지난 4개월 동안 정말 집안 전체가 엉망이 되어 있었습니다. 제가 취미가 뭐냐고 물으면, 청소라고 말할 정도로, 밥은 굶어도 청소는 꼭 했습니다. 직장 다니면서 일주일에 한번이나 청소를 했을까 싶더니, 역시나 집안 꼴이 말이 아니었습니다. 본연의 임무로 돌아 와 청소기 돌리고 먼지 털고 이 방 저 방 쑤시고 돌아다니며 부산을 떨었습니다. 작은 딸 방에서 라면봉지가 수북한 쓰레기통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인스턴트 먹이지 않으려고, 조미료도 거의 쓰지 않고 요리를 했는데… 제 딸은 제가 없는 틈을 노려 라면을 왕창 끓여 먹고 있었습니다. 정말 기가 막혔습니다. 거기다 저를 제대로 가꾸지 못 했습니다. 아침 세수를 하고 가만히 제 얼굴을 들여 봤더니, 기미가 터를 잡고 있는 겁니다. 아침 7시 30분에 출근하고, 집에 돌아오면 저녁 8시가 넘으니 그동안 제 얼굴을 지켜 볼 수가 없었습니다. 왜 피부가 이렇게 됐을까 싶어서, 선크림 성분을 확인하려고 방으로 들어갔는데, 세상에! 제가 그 동안 바른 건 선크림이 아니고, 손 발 거칠어지지 말라고 바르던 바세린이었습니다. 정신없이 살다보니 그것조차 분간 못하고 마구 발랐던 겁니다. 어쨌든 그렇게 험난했던 시간들을 접고, 이제 백기 들고 돌아온 저에게 가족들은 너무나 냉담했습니다. 고등학생 딸이야 밤늦게 들어오니 제가 일을 나가든 말든 크게 영향이 없겠지만 중학생 딸은 제가 다시 돌아온 걸 영∼ 못 마땅하게 생각합니다. “엄마! 나 기말고사라 공부해야 하는데, 엄마가 있으면 집중이 안 돼. 나 시험 끝날 때만이라도 예전처럼 어디 나가 계시면 안 돼?” 이러는 겁니다. 도대체 저더러 어디에 가 있으라는 걸까요? TV에 보면 명퇴한 남자들이 가방 들고 출근해서 갈 데가 없어서, 공원에서 비둘기들과 놀다가 퇴근시간에 맞춰 집으로 들어가던데… 제 맘이 딱 그 마음입니다. 그동안 제 빈자리 좀 느껴보라고 직장을 다녔던 건데, 오히려 돌아와서 제가 더 쩔쩔매는 상황이 되었으니, 정말 너무 너무 속상합니다. 정말 요즘은 집에 있으면서도 너무 마음이 힘들 뿐입니다. 경기 평촌|김우현 행복한 아침, 왕영은 이상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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